윤재옥 원내대표는 대구 달서구 을 출신으로, 1961년 9월 10일에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 포두리 북동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동 현대아파트와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 사계절타운아파트에서 거주하고 계십니다. 현재 국민의힘 당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당 내 대표와 함께 원내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대구 달서구 을을 대표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 그리고 국민의힘 등에서 주요 역할을 맡으며 활동해왔습니다. 현재는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여러 위원회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윤재옥은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 출신이자 현 정치인으로, 달서구 을 제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민의힘 원내대표로서 국정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생애를 살펴보면, 1961년 9월 10일에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 포두리 북동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시로 이주하여 대구내당초등학교, 대구 영남중학교, 1980년 오성고등학교(14회)를 졸업하였으며,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하여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어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경찰 생활에서는 항상 최선두로 진급하여 경찰대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로 인정받았습니다. 경찰대 출신 1호로 여러 계급에 진급하며 경찰 생활을 이어갔으며, 서울지방경찰청 예하 기동대 소대장으로 전환 복무하면서 병역을 완료했습니다.
경찰 생활 이후에는 다양한 경찰 간부직을 역임하였으며, 경기지방경찰청장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경찰청장 자리를 놓치고 2010년 9월에 경찰복을 벗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1년에는 한양대학교 특임교수로 임용되어 교육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3년 4월 7일에 열린 의총에서, 윤재옥은 총 투표수 109표 중 65표를 얻어 국민의힘의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4월 13일에는 새로운 원내대표단을 구성하면서 이양수 의원을 원내수석부대표로, 전주혜 의원을 원내대변인으로 새로 선임하였습니다.
김기현 대표의 사퇴 이후,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된 윤재옥은 단 8일 만에 '한동훈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윤재옥의 합리적인 리더십을 잘 보여주었으며, 그는 중진 의원 연석회의부터 비상 의원총회,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그리고 상임고문 간담회까지 열어 당내 의견 수렴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당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당이 더 큰 혼란에 빠질 뻔한 상황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윤재옥은 온건하면서도 대응력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거야에 대해 침착하면서도 이니셔티브를 내주지 않는, 노련한 협상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22대 총선 선거구 획정 협상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당의 이익을 보호하였습니다.
그의 역량은 2024년 2월 18일의 당선에서도 빛을 발하였습니다. 이후에는 당 대패에 직면하며 당내 책임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윤재옥은 지도부를 대신하여 당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22대 총선 국민의힘-국민의미래 당선자 총회에서는 신임 원내대표 경선을 치르기로 결정되어,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으로서의 소임은 5월 10일쯤까지만 주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윤재옥 의원은 여러 측면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광온 전 원내대표와는 당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석에서 서로 격의 없이 지냈습니다. 특히, 매주 월요일 정기적으로 오찬을 가졌으며, 그들 간의 인간적인 교감이 많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2023년 9월 2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총사퇴한 것에 대해 윤재옥 의원이 무거운 마음을 가졌음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는 그들이 공적으로는 카운터파트너였으며, 인간적으로도 서로 많은 교감을 나눴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스캠 코인 논란의 정점에 있는 위너즈 본사에 국민의힘 원내대표 명의로 축하화환을 보낸 정황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화환이 윤재옥 의원이 직접 보낸 것인지는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그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의 인격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