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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 제1·2대 조국혁신당 원내대표. 그에 대해서 알아보자.Araboza

시사맨 2024. 5. 14.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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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는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1962년 9월 10일에 태어났다. 현재는 60대이며,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프라이어팰리스와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삼성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학력 면에서는 대전산성국민학교를 시작으로 대전동산중학교와 서대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에는 경찰대학과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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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한 후, 황운하는 경찰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통령경호실에서 근무하며 경찰대학 총동문회장, 서울용산경찰서 형사과장, 경찰청 수사국 수사권조정팀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그 후에는 대전서부경찰서장,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 경찰수사연수원장, 대전지방경찰청 제1부장 직무대리 등을 역임했다. 더불어 대전지방경찰청장과 경찰인재개발원장을 맡기도 했다.

 

정치에 뛰어든 황운하는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대전 중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부대표로 활약했다. 이후에는 조국혁신당에서 원내대표와 대전광역시당 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종교로는 개신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현재는 비례대표 지역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황운하는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 출신으로, 34년간 경찰에서 활약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경찰대학을 1기로 졸업한 그는 1987년 종암경찰서에서 경찰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후에는 대전중부경찰서장, 서울송파경찰서장 등 다양한 지위를 맡았다. 그의 주요 활약은 경찰 수사권의 부여에 관한 의견으로, 경찰관으로서 경찰청 수사기획관,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를 추진해왔다. 그 결과, 그의 주장은 20대 국회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황운하는 1962년 9월 10일에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태어나 대전산성초등학교부터 경찰대학까지 교육을 받았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경찰의 경력을 쌓으며 1985년부터 1987년까지 경찰공무원으로 복무하였다. 그 후에는 대전중부경찰서장,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 형사과장, 경찰청 수사국 수사기획관, 경찰수사연수원장 등의 역할을 맡았다. 2017년에는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울산지방경찰청장과 대전지방경찰청장을 역임했다.

 

그는 경찰 공무원 출신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21대 국회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선출되어 대전 중구 선거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경찰 공무원 출신이자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을 병행하는 동안, 울산광역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그는 경찰 직을 유지한 채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999년 6월, 서울성동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황운하는 여섯 명의 경찰관이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에 파견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파견된 경찰관 중 원대로의 복귀를 요청한 것은 5명뿐이었다. 이는 검찰로의 파견이 단순한 관행이 아닌, 법적인 절차와 이윤에 따라 불법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황운하는 이 불법적인 관행을 깨기 위해 복귀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 조치는 경찰서 한 곳의 형사과장의 작은 결정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당시의 경찰청장 김광식은 모든 파견된 경찰관에게 원대로 복귀할 것을 명령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한 경찰 조직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관 간의 관계에서 법적인 절차와 윤리를 요구하는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황운하의 행동은 조직 내에서의 정직한 의사소통과 법적인 원칙을 유지하는 데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황운하는 가정폭력 사건과 법조브로커 오다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두드러진 역할을 하였다.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처벌의 미비함을 경찰로서 경험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에서 법률안을 발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법조브로커 오다리 사건에서는 법조인들과의 불법적인 연결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황운하의 뛰어난 리더십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양한 정치적인 간섭과 비난에 직면했다. 특히, 이택순 경찰청장에 대한 항명 사건에서는 황운하가 이택순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경찰 내부의 갈등과 감정을 더욱 야기시켰다. 결국 황운하는 징계를 받게 되었지만, 그의 노력과 행동은 국가의 법치주의와 공정한 사회 구축을 위한 중요한 예시로 남았다.

2008년, 대전 중구 유천동에서 발생한 성매매 집결지 문제는 대전시의 안전과 도덕적 가치를 위해 긴급한 해결이 요구되었다. 황운하 중부경찰서장과 이은권 중구청장, 그리고 한승길 남부소방서장은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를 방문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경찰, 구청, 소방서의 공조로 합동 단속반을 구성하는 등 강력한 대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대전 중부경찰서는 유천동 성매매업소를 완전히 해체하기로 결심하고 종합정비대책을 발표했다. 입구에 방범순찰대를 배치하고 출입자를 철저히 검문하는 등의 단속을 강화했고, 건물주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성매매업소 종사자들에 대한 보호 및 지원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몇 달 후에는 유천동의 성매매업소가 일제히 문을 닫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황운하 중부경찰서장과 이은권 중구청장, 그리고 한승길 남부소방서장 등의 노고와 협력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발생한 여러 사건들에서도 황운하는 용감하고 원칙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선관위 디도스 사건과 윤우진 세무서장 사건 등에서도 황운하는 정확하고 공정한 수사를 지휘하여 사건의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하였다.

 

결국, 황운하의 뛰어난 지도력과 원칙적인 태도는 대전시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으며, 그의 노력과 역량은 대전시민들에게 큰 신뢰와 존경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황운하의 모범적인 행동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황운하가 정치 무대에 등장한 이래, 그의 경력은 어디에서나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의 출신이 경찰이었던 만큼, 그의 정치 경력은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과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황운하는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2012년 조희팔 사건에서는 황운하가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를 이끌며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 간의 갈등이 발생하며 사건의 진행이 복잡해졌습니다. 또한, 강신명 경찰청장을 비판하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으며, 공천과 관련된 논란, 그리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다방면에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활동은 대중의 눈길을 끌기는 하였으나, 그의 결정과 행동에 대한 평가는 상반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정의롭고 용감한 경찰로 기억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고 비판하였습니다.

 

이 모순된 평가들은 황운하가 어떤 인물인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복잡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고 했던, 혹은 지키지 못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게 합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떤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걸까요? 그들의 행동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걸까요? 이러한 고민은 황운하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합니다.

황운하의 정치적 이력은 매우 다채롭고 논란적입니다. 특히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동안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돌연적으로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는 등의 결정 변동은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줬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그는 민주당을 탈당하고 조국혁신당에 입당하며 새로운 정치적 진영을 찾았습니다.

 

황운하가 조국혁신당에서 성공적으로 당선되고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등의 이정표는 그의 정치적인 적응력과 능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당내에서도 지지를 받아 원내대표로 선출된 것은 그의 인물적인 매력과 리더십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활동에는 논란과 비판도 결코 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경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법 집행과 질서 유지에 대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등, 그의 결정과 행동에 대한 평가는 상반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양천구 입양아 학대 사건과 같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도 논란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측면들은 황운하가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인 경력은 분명히 우리가 정치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정치의 복잡성과 도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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