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람(鄭우람), 한화 이글스의 투수로 활동 중인 대한민국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이다. 1985년 6월 1일 부산광역시 사하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39세이다. 국적은 대한민국이며, 학력은 하단초에서 대동중을 거쳐 경남상업고를 졸업한 후 서남대에 입학했다. 신체적으로는 키 181cm에 몸무게 82kg, 혈액형은 A형이다. 정우람은 좌투좌타의 투수로서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4년 SK 와이번스에서 프로 입단을 하였다. 이후 2016년부터는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투수로서의 경력은 중간계투에서 시작해 마무리 투수로 변신한 후 다시 중간계투로 돌아왔다. 정우람은 2024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잔류군 투수코치로서 활동 중이며, 정우람의 연봉은 2024년 기준으로 1억 원으로, 이전보다 80% 감소했다.
정우람(鄭우람)은 현재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 중인 구원 투수로, 정우람의 선수 경력은 인상적인 성과와 깊은 여정을 담고 있다. 1985년 6월 1일 부산광역시 사하구에서 태어난 정우람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정우람이 중학교 시절 장원준과 동기였다는 사실은 정우람의 야구 커리어에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체구가 작아 야구를 포기할까 고민했으나, 결국 야구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웠다. 고등학교 시절 부산상고에서 경남상고로 전학하면서 정우람의 야구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0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순천효천고 에이스 김수화와의 맞대결에서 완투패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에 2차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지명된 정우람은 예상보다 높은 순위에 지명된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회상했다.
SK 와이번스 시절의 정우람은 중간계투에서 시작하여 마무리 투수로서 자리 잡은 후, 다시 중간계투로 돌아오는 등 투수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였다. 정우람의 전문성과 꾸준한 성장은 SK 와이번스의 중요한 자원으로서 정우람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2016년부터 한화 이글스에 합류한 정우람은 팀의 구원 투수로서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정우람의 투구는 한화 이글스의 수비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2024년부터는 한화 이글스의 잔류군 투수코치로서 선수들에게 조언과 훈련을 제공하며, 정우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선수들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정우람은 국가대표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연금점수 45점을 획득했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여 연금점수 10점을 추가로 획득했다. 정우람의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은 대한민국 야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성과는 정우람이 야구계에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미 상근예비역으로 병역을 마친 정우람은 예술체육요원으로서의 병역특례를 통해 국가대표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우람: KBO 리그 통산 세이브 및 지도자 경력
정우람은 KBO 리그에서 통산 197세이브를 기록하며 역대 6위에 랭크되고 있다. 현재 KBO 리그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 중에서는 오승환(400세이브)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정우람의 투수 경력과 기록은 KBO 리정우람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업적이다.
지도자 경력
2024 시즌부터 정우람은 플레잉 코치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정우람의 보직은 잔류군 투수코치로, 현역 선수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투수들에게 귀중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정우람의 투구 스타일은 상당히 독특하다. 정우람의 패스트볼은 평균 구속이 138km/h로 KBO 리그 평균보다 낮지만, 높은 회전수와 뛰어난 커맨드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투구를 한다. 이로 인해 많은 타자들이 정우람의 패스트볼에 헛스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우람의 체인지업은 KBO 리그 최정상급으로 평가받으며, 수싸움에서 강점을 보인다.
정우람의 패스트볼은 비교적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수직 무브먼트와 회전력 덕분에 타자들에게 어려움을 준다. 정우람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은 투구 동작에서 구별이 어려워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어한다. 정우람은 기교파 투수로서 알려져 있지만, 높은 K/9과 낮은 HR/9을 기록하며 실질적인 탈삼진형 투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내구성 및 혹사 논란
정우람은 뛰어난 내구성으로 주목받는다. 과거에는 과도한 투구로 인한 혹사 논란이 있었으나, 정우람은 유연성과 관리로 이를 극복해왔다. 2008년까지는 소화 이닝 수보다 출장 경기 수가 많았으며, 2012시즌까지 531경기를 출전했다. 이러한 기록은 투수로서의 체력과 지속적인 성과를 보여준다.
특히 2021년 6월 18일, 정우람은 KBO 리그 최초로 900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6월 30일에는 902경기 출장으로 류택현의 기록을 넘어서며 역대 투수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다. 2022년에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2023년에는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정우람의 경력은 단순한 통산 기록을 넘어서, 정우람의 끊임없는 노력과 뛰어난 관리, 그리고 헌신적인 경기 운영으로 KBO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2024년에는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하며 아시아 단일리그 투수 최다경기 출장 신기록을 수립했다. 정우람의 경력과 성과는 많은 후배들에게 큰 영감을 주며, 한국 야구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정우람은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에서 오랜 기간 동안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로, 정우람의 경력은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들로 가득 차 있다. 2004년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프로야구에 데뷔한 정우람은 초기에는 적은 출전 기회를 가지고 있었으나, 곧 정우람의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5년, 정우람은 59경기에 출전하여 1.69의 평균자책점(ERA)으로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는 그 해의 5위 홀드 기록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정우람의 첫 번째 두드러진 해는 2008년으로, 이 해에는 85경기에 출전하여 77⅔이닝 동안 2.09의 ERA를 기록하며 리그 1위의 홀드와 승리 수치를 기록했다. 이로써 정우람은 리정우람의 핵심 불펜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정우람의 커리어는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꾸준한 성과를 이어갔다. 2009년에는 62경기에서 3.38의 ERA를 기록하며 여전히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하였고, 2010년에는 75경기에서 8승 4패, 3.53의 ERA를 기록하여 다시 한 번 리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에는 68경기에서 1.81의 ERA를 기록하며 25홀드로 리그 1위를 차지, 정우람의 경력 중 가장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이 해의 성적은 그에게 4.18의 스탯 워스(스탯-승리 기여도)를 안겨주었고, 이는 정우람의 커리어 전반에 걸쳐 최고의 성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
2012년에는 53경기에서 2.20의 ERA를 기록하며 또 다른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 후 군 복무를 통해 2013년을 보내게 된다. 군 복무 후 2014년 한화 이글스에 합류한 정우람은 다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2015년에는 61경기에서 3.33의 ERA와 85탈삼진을 기록하였다. 이후 2016년에는 56경기에서 2.75의 ERA로 리그 3위의 홀드를 기록, 2017년에는 5승 3패와 35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 1위에 오르는 등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이어갔다.
2018년에는 57경기에서 1.54의 ERA로 다시 한 번 리그 최상위권의 성적을 보였으며, 이는 정우람의 통산 기록 중 가장 뛰어난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러나 2019년에는 4.80의 ERA를 기록하며 다소 하락세를 보였고, 그 뒤로는 계속해서 변화무쌍한 성적을 기록하며 2020년에는 4.80의 ERA와 1.29의 WHIP를 기록하였다.
정우람의 통산 기록을 살펴보면, 정우람은 KBO 리그에서 1004경기에 출전하며 64승 47패, 197세이브, 145홀드를 기록하여 통산 ERA 3.18, WHIP 1.20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성적들은 정우람의 오랜 경력과 리그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증명하며, 정우람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독보적인 선수로 남게 되었다. 정우람의 뛰어난 기량과 꾸준한 성과는 후배 선수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으며,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선수로서의 명성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정우람, 한국 프로야구의 대명사적 투수는 정우람의 커리어와 개인적 이야기들로 인해 다채로운 별명과 에피소드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2010년을 기점으로 정우람의 머리숱이 급격히 줄어들며, 팬들 사이에서는 그를 '탈모람', '민머리요정'(약칭 '민요') 등의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당시 정우람은 겨우 20대 중반의 젊은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우람의 급격한 탈모는 주목을 받았고, 이로 인해 '일구일모'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일구일모'는 '공 하나에 머리카락 하나'라는 뜻으로, 정우람의 머리카락이 공을 던질 때마다 떨어진다는 농담이 담긴 표현이다. 이와 같은 별명들은 정우람의 개인적 특징과 정우람의 유머 감각을 반영하며,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정우람의 별명은 이후 한화 이글스 시절에 '대머리독수리'로 바뀌었다. 이는 팀의 마스코트인 독수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팀 내 다른 탈모 투수들과는 달리 정우람에게만 붙은 별명이다. 이에 대해 정우람은 2018년 11월 스포티비와의 인터뷰에서 '대장독수리'라는 별명을 원한다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정우람의 탈모 문제는 2017년 한용덕 감독의 취임식에서 더욱 두드러졌으며, 이 모습에 많은 팬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해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뛰어난 투혼을 발휘하며 세이브왕에 오른 정우람의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모습은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2020년 말에서 2021년 초 사이에는 정우람이 머리 이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증가한 머리숱에 팬들은 놀라워하며, '심어조'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겼다. 이는 정우람의 탈모와 관련된 농담에서 발전한 것이며,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모습은 팬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정우람의 몸 관리와 자기관리로 인해 프로생활 내내 큰 부상 없이 1군에서 활약하며 정우람의 체형이 크게 변하지 않은 점도 주목받았다.
정우람의 경력 중 눈에 띄는 부분은 정우람의 역할 변화이다. 정우람은 프로 데뷔 이래 선발로 등판한 적이 없으며, 2008년까지는 1이닝 이상 등판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이후에는 중요한 상황에서 등판하며 핵심 불펜으로 활약하였다. 2012년부터는 마무리투수로 변신하여 1이닝을 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러한 역할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우람은 꾸준히 1군에서 활약하며 정우람의 기량을 발휘했다. 특히 129홀드를 달성한 후 2021년 10월 6일에는 130홀드를 기록하며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고, 통산 197세이브로 역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정우람은 KBO 리그에서 단 두 명만이 달성한 통산 100홀드-100세이브 투수 중 하나로, 다른 한 명은 정대현이다. 정우람은 또한 한화 이글스에서 투수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며, 팀의 불펜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우람의 기술적 영향력으로 인해 팀의 불펜 투구폼이 '정우람화'되는 현상도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대동중학교 출신으로 두산 베어스의 장원준과 동기이며, 절친한 친구인 정대훈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KIA 타이거즈의 김원섭과는 여러 전적들로 인해 엮여 있으며, 2016년 KIA 타이거즈의 김기태 감독이 급박한 상황에서 김원섭을 대타로 바꾸는 기행을 저질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우람은 개인적인 버킷리스트의 일환으로 아내와 함께 2023년 시흥에서 붕어빵 장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붕어빵을 팔았으나, 예상과 달리 유동인구가 적어 적자를 기록하며 아쉬운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개인적 에피소드들은 정우람이 야구 외에도 다채로운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우람은 정우람의 유머 감각, 커리어의 다양한 면모,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KBO 리정우람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