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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 아사카와 다쿠미

시사맨 2024. 4. 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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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와 다쿠미는 1891년 1월 15일에 태어나고, 1931년 4월 2일에 40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임업기사이자 도예 연구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업적으로는 잣나무 종자의 노천매장 발아촉진법을 개발한 것과 조선의 소반과 조선도자명고를 저술했습니다.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도예학자로서, 후세 다쓰지와 함께 조선에 도움을 주었고, 그의 활약으로 인해 추앙받는 인물로 남았습니다.

 

 

 

일본의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소학교와 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아키타현의 대관 영림서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경성부 남대문공립심상소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던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浅川伯教)의 권유로 1914년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산림과에서 임업기사로 활약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다쿠미는 '오엽송 노천매장법'이라는 획기적인 양묘법을 고안하여 조선의 소나무들의 양묘 기간을 1년으로 단축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광릉수목원과 국립산림과학원 정원에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의 업무로 인해 조선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조선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며, 특히 조선 도자기와 민예품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와의 만남은 그에게 공예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조선 민예의 이론을 정립하고 전파하는 데 야나기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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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도 그는 수집한 물품을 한국 정부에 기증하여 한국 연구가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마치 한국인의 흙이 된 것으로 기억되는 아사카와 다쿠미는 식목일 행사를 준비하던 중 과로로 요절했습니다. 유언에 따라 그는 조선식 장례로 묻히기를 바라며 이문리에 묻혔다가 나중에는 망우리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의 무덤은 산림청에 의해 주기적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의 공예가가 예술품으로 대접받지 않는 시대였지만, 아사카와 다쿠미는 한국 공예를 잘 정리하여 후세의 연구를 돕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조선 문화의 독창성을 인정하고,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대중들에게는 이상한 인물로 여겨졌지만, 지식인들과 총독부 고위 관료 중 일부는 그를 높이 평가하고 존경했습니다. 그의 삶과 인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숭배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인물로 여겼습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1891년 1월 15일에 태어나고, 1931년 4월 2일에 40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임업기사이자 도예 연구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업적으로는 잣나무 종자의 노천매장 발아촉진법을 개발한 것과 조선의 소반과 조선도자명고를 저술했습니다. 그는 조선 공예품을 사랑하는 한편, 조선과 그 땅의 사람들까지도 아끼는 인물로 기억되었습니다.

 

출생지인 일본의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소학교와 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아키타현의 대관 영림서에서 일했습니다. 1914년에는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산림과에서 임업기사로 활약했죠.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오엽송 노천매장법'이라는 획기적인 양묘법을 고안하여 조선의 소나무들의 양묘 기간을 1년으로 단축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광릉수목원과 국립산림과학원 정원에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 보존되어 있죠.

 

그의 업무로 인해 조선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조선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며, 특히 조선 도자기와 민예품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와의 만남을 통해 조선 민예의 이론을 정립하고 전파하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그는 수집한 물품을 한국 정부에 기증하여 한국 연구가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아사카와는 조선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조선에서 사는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말을 쓰는 것을 다짐했죠. 그는 개인적으로도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조선 사람들에게 월급의 절반을 나눠주었고, 많은 조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졸업시켰습니다.

 

아사카와의 이야기는 2012년에 일본 핑크영화계에서 유명한 다카하시 반메이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줄거리가 약간 루즈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볼만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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