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남 완도·해남·진도 당선인은 18일 차기 국무총리 인선과 관련하여 "윤석열 대통령이 제게 추천하라고 하면 여당 내에서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어떨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이재오 당시 정무장관이 제게 '야당에서 총리를 추천해보라'고 해서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을 추천해 성공적인 총리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윤 대통령에게 국무총리에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대통령 비서실장에 장제원 전 의원을 추천한 것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분을 추천했다"고 평가했지만, "과연 국회에서 인준될까 그게 의심스럽다"고 했습니다.
박 당선인은 최근 대통령실의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설'에 대해서는 "비공식 라인에서 흘려서 간보기, 떠보기한다"고 비판하며, 전제 조건으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간 영수회담을 꼽았습니다.
또한 박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일본 오사카에서 개인일정을 소화하며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중요한 시기여서 협치가 긴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 데 대해선 "제안을 받은 것 같다. 전화도 문자도 안 받지만, 수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제2대 특임장관인 이재오는 1945년 1월 11일에 강원도 명주군 묵호읍 부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관은 재령 이씨이며, 현재 자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재오는 남산(南山) 호를 가지고 있으며, 추영례와의 사이에는 세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학력으로는 영양 석보국민학교, 영양 석보중학교, 영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앙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군 복무 시절에는 육군 제5보병사단에서 병장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정치 경력으로는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국회 후반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대한민국 제2대 특임장관으로 활약하였습니다. 현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및 국민의힘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사회운동가인 이재오는 5선 국회의원 출신입니다. 운동권과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민중당 출신이었지만 낙선 이후 신한국당에 입당하였습니다. 이후 국회의원에도 당선되어 MB정부에서 실세로 활약했으며, 친이계 좌장을 지냈습니다. 초기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인물로, 이재오는 그의 운동가로서의 역사와 정치적 경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재오는 MB 시절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로, 그의 정책적 입장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입니다. 특히 MB 시절의 대운하와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한 입장으로 인해 진보 진영에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과거 운동권 활동과 개혁적인 성향, 그리고 친박 세력과의 적대적인 입장 때문에 일부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이재오는 국민의힘 상임고문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는 1945년 강원도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민주화운동과 군복무, 교사로의 경험 등으로 다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도 힘썼습니다.
1988년에 민중의당에 입당한 후, 이후로 정치 무대에서 그 활약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1990년에는 민중당의 창당 멤버로서 활약하셨고, 이후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그리고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셨으나 낙선하셨습니다.
그 뒤, 1994년에는 중앙대학교 정경대학으로 복학하시고 1996년에는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후 국회의원으로서의 경력을 쌓으시면서, 여러 차례의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하셨고,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셨습니다.
특히 2000년대에는 한나라당의 주요 인물로서 대표적인 개혁파 정치인으로 활동하셨고, 이회창과 이명박을 지지하고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당 내에서 박근혜와의 관계는 긴장을 빚었으며, 이에 대한 비판도 진행하셨습니다. 이런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정치적 활동을 지속하셨고, 다수의 선거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되어, 국회에서의 활동을 통해 더욱 친밀해졌습니다. 이에 관련된 경험과 이야기들은 여러 차례 언급되었는데, 이를 통해 그들 간의 인연과 협력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 경력에 더해 이재오 의원께서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서도 활약하셨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으로 내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서 재선에 성공하셨고, 정치 무대에서의 활약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박계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친박계의 불통과 권위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비박계의 김무성 대표가 무공천을 선언하여 은평구 을에 대한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고, 여론조사에서도 이재오 의원의 승리가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강병원 후보와의 단일화로 인해 분위기가 변화하며, 본 선거에서 밀려 6선 도전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고 중도 신당 창당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2017년 1월에는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하였습니다.
대선 후보로 등록된 후에는 복면을 쓰고 나와서 대선 후보간의 복면 토론을 제안하였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정책 공약을 제시하였습니다. 토론에서는 통일관을 내세우며 이재오 특유의 노련미를 뽐내었지만, 개표 결과는 낙선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재오 의원은 이미 정계에서 은퇴해도 무방한 나이에 이르렀지만, 그의 정치적 활동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 5일, 정영진과 최욱의 불금쇼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매우 적대적인 기자 주진우와 만나 약 1시간 반가량 설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채널A의 시사 프로그램 '외부자들'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봉주와 두 차례에 걸쳐 치열한 토론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첫 번째 토론에서는 의리에 대한 언급에 대해 "없는 사람들끼리 의리라도 있어야 되지 않나"라고 반박하였고, 두 번째 토론에서는 김백준과 국정원 특수활동비유용건을 두고 격렬한 대립을 보였습니다.
2018년 2월 12일, 보수 통합을 명목으로 늘푸른한국당을 해체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한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하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또한 2018년 12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였습니다.
2019년 9월에는 전광훈 목사가 출범시킨 문재인 하야범국민투쟁본부에서 총괄본부장직을 맡아 10월에 개천절 집회를 기획하였습니다. 이 집회에서는 날을 세우면서도 참가자들에게 질서있는 비폭력 평화집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유한국당 대표인 황교안에게는 여전히 친이 계열의 입장을 보이며 대립을 보였습니다.
2019년 12월 23일에는 소설가 이문열과 함께 국민통합연대를 출범시켰는데, 이 자리에는 친이, 비박, 친홍 계열 정치인들도 참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재오는 개인적 친분 때문에 온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후에는 전광훈 목사의 집회에도 참석하였습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대참패 이후에는 몇몇 보수 인사들과 함께 성명을 내고, 미래통합당의 자진 해산과 중도실용 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윤석열의 대통령 후보 선출에 반대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2022년 1월 24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에는 친윤 성향이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정부와 여당의 불통으로 인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명단에서 제외되는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2023년 7월에는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84년에 초판이 출간된 '한국학생운동사'는 귀중한 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1945년부터 1979년까지의 학생운동 역사를 직접 활동한 운동권 출신이 쓴 최초의 책으로, 학생운동사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의미가 크기 때문에 꾸준한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행정구역 개편과 이원집정부제에 관심이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은 여러 차례 독특한 행정제도 개편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정치인은 전국을 50여 개의 광역시로 개편하자는 제안과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한 개헌 제안을 종종 내놓았습니다. 이 정치인이 창립한 정당인 '늘푸른한국당'에서 이러한 정책 제안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명박과 이재오가 같은 경주 이씨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재령 이씨가 분적한 성씨이며 이재오의 항렬은 학계에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재오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언급하며,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재오는 민중당 사무총장 시절에는 민중당의 지지자였던 유명가수 민해경을 섭외하여 자금 모금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했습니다. 민해경은 무료로 출연하고 수익은 민중당에 기부되었습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는 6.3 항쟁에서 함께 했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함께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재오는 정적인 관계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한번은 청와대에서 여당 원내대표와 함께 만나, 노 전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에게 양보를 요청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이재오를 칭찬하며 정치적 유연성을 인정했습니다.
이재오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를 끊었다가 다시 연결하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자신의 정당인 늘푸른한국당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이재오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고 정책을 제안함으로써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