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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관심을 받는 영수회담 성사여부.. 영수회담이 대체 뭐길래?! 영수회담의 의미와 역사, 역대 정권들의 영수회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4. 4. 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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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이 실현될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한 사진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영수회담은 정치사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그 용어 자체가 '우리나라 정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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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의 '영수'란 집단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데요, 예전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영수회담은 여전히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수회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김영삼,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 등이 각자의 임기 동안 영수회담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려 8번의 영수회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는 어떨까요? 지난 4월 18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기자들에게 "그 길(영수회담)은 열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정치 상황과 대한민국의 안보를 고려할 때, 윤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이 쏠립니다.

영수회담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제1야당 대표(옛 총재) 간의 회담을 일반적으로 의미합니다. 이 용어에서 '영수'는 어떤 집단에서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나타내며, 따라서 영수회담은 국가나 정치단체의 최고 우두머리가 서로 만나 의제를 논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경우, '영수회담'은 보통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의 양자회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분리되어 있어도 여전히 대통령이 정치적 중요성에서 우위를 차지하므로, 일반적으로 이 두 인물 간의 회담을 영수회담이라고 합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 등에서는 종종 다양한 형태의 대표 회담을 주최했는데, 이 때는 대통령과 여러 정당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 국정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의 회담만이 영수회담으로 부르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정치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야당 대표들과 회담하여 국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전통적으로 존재해왔습니다. 이러한 회담은 주로 청와대에서 열리며, 때에 따라 식사를 함께 하면서 논의하기도 하고, 차담회 형식으로 회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본 한국의 영수회담은 다양한 정치적 상황과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기

- 1965년 7월 20일: 박정희 대통령과 박순천 민중당 대표 간의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 1970년 8월 29일: 박정희 대통령과 유진산 신민당 총재 간에 2회의 회담이 이뤄졌습니다.

- 1975년 5월 21일: 박정희 대통령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 간의 회담이 있었습니다.

- 1977년 5월 27일: 박정희 대통령과 이철승 신민당 총재 간에 회담이 진행되었습니다.

최규하 정부 시기

- 1980년 2월 18일: 최규하 대통령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 간의 회담이 열렸습니다.

전두환 정부 시기

-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간의 영수회담이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부 시기

- 1988년 8월 31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간의 회담이 열렸습니다.

- 1990년 1월 11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간에 두 번째 영수회담이 이뤄졌습니다.

문민정부 시기

- 1994년 3월 11일: 김영삼 대통령과 이기택 민주당 대표 간의 영수회담이 있었습니다.

- 1996년 4월 18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표 간에 두 번째 영수회담이 이뤄졌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기

- 1998년 2월 27일: 김대중 대통령과 조순 한나라당 총재 간의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 1998년 11월 10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간에 7회의 회담이 이뤄졌습니다.

참여정부 시기

- 2005년 9월 7일: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간의 영수회담이 열렸습니다.

- 2007년 2월 9일: 노무현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간의 두 번째 영수회담이 이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기

- 2008년 5월 20일: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간의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 2008년 9월 25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통합민주당 대표 간에 두 번째 영수회담이 이뤄졌습니다.

- 2011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 간의 세 번째 영수회담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영수회담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다자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

- 2018년 4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간의 영수회담이 열렸습니다.

윤석열 정부

- 현재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차례 영수회담을 제안받았지만 범죄 피의자와의 면담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회담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총선 결과로 인해 여당과의 협치를 위해 영수회담에 응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영수회담은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였으며, 각 회담은 그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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