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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44 오재일. 그에 대해 알아보자.Araboza

인간의 사람 2024. 4. 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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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일은 1986년 10월 29일에 경기도 구리시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37세입니다. 학력은 인창초(구리리틀) - 구리인창중 - 야탑고 출신이며,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신체적으로는 188cm에 98kg이며, 혈액형은 B형입니다. 그의 포지션은 1루수이고, 투타는 좌투좌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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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현대 유니콘스로 프로 입단한 오재일은 그 후에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를 거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군 복무는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이루어졌으며, 2006년 11월 27일부터 2008년 11월 10일까지 소속되었습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와 5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으며, 2024년에는 5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오재일의 등장곡은 이문세의 "봄바람"이며, 응원가는 허니크루의 "자작곡"입니다.

 

가정적으로는 2014년 12월에 아내인 진민혜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2016년에는 딸인 오승아가 태어났습니다. MBTI 유형은 EXXJ와 ISFP로 나와 있으며, 소속사는 리코스포츠에이전시입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좌투좌타 내야수로 활약하는 선수는 현대 유니콘스와 히어로즈 시절에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받았으나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시즌 중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새로운 활약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팀의 중심 선수로서 상당한 활약을 펼쳤으며, 2020년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4년 50억원의 계약으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두산에서는 포텐셜을 터뜨린 선수로서, 삼성에서는 베테랑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 큰 역할을 해내는 해결사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경기 상황에서 필요한 한 방을 치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의 존재는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현지 팬들은 그를 통틀어 '해결사'로 칭하며 그의 모든 출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의 경력은 야탑고 시절 동기인 윤석민과 함께 맹활약하여 황금사자기에서 팀을 첫 결승에 올려놓음으로써 주목받았습니다. 그리고 2005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되어 프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입단 후 2군에서의 활약을 거쳐 2006년말에는 군 복무를 위해 상무 피닉스 야구단으로 입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상무에서도 제법 준수한 활약을 펼치면서 이숭용의 뒤를 이을 차세대 1루수로 주목받았습니다.

 

휴복 후에는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하여 2009년부터 히어로즈 소속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군에서의 활약은 좋지 않았고, 2군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1년에는 수비에서 일부 문제가 발생하면서 1군과 2군을 오가며 활동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는 2011시즌에 타율 0.230, 1홈런, 11타점의 성적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선수는 이숭용의 은퇴로 빈자리가 생긴 10번을 이어받아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숭용의 의지를 반영하여 등번호를 선택한 이 선수는 자신의 옛 모습을 닮아 선수 중에서 가장 애착을 가졌다고 합니다.

 

특히,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어 맹타를 치며 기대를 받았으나 그 후에는 삽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에서 연장 12회초에서 결승 2루타를 작렬하여 팀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등, 팀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선수는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된 후에도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최준석의 백업으로 시작하여 이적 후에는 두산 베어스의 1루수 자리를 굳건히 책임지며 팀에 기여했습니다. 매년 20홈런 이상을 치는 장타력과 우수한 수비력으로 두산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2년 7월 9일, 이성열과의 반대급부로 두산 베어스로 전격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는 최준석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해야 했기 때문에 1루수 자원이 부족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로써 내년 시즌 최준석의 빈자리를 채울 요원이 필요했고, 그 요원이 바로 오재일이었습니다.

 

이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 팬들은 오재영이 아닌가 싶어 멘붕에 빠지며, 두산 프런트의 트레이드 능력에 분노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두산 유니폼을 입은 오재일의 모습을 보며 분위기가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이적 후 첫 경기에서는 안정적인 수비와 득점에 기여하며 팀에 도움을 주었고, 그 이후의 경기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7월 16일까지의 스탯은 두산과 넥센 팬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후의 경기에서도 홈런을 작렬하며 팀에 기여하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일부 경기에서는 물러났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팀을 위해 뛰었지만, 결국 팀은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오재일은 이적 후 팀에 큰 기여를 하였으나 마지막까지 원하는 결과를 이뤄내지는 못했습니다.

 

2013년 시즌에는 2군에서 출발한 오재일이 빠르게 1군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6월 21일 한화전에서 뜬금없는 투런포를 터뜨리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약으로 이성열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6월 22일에는 10회 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결승 안타를 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이어서 6월 26일에는 KIA 타이거즈전에서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냈지만,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6월 19일부터 28일까지는 11타점을 만들며 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오재일은 두산 팬들의 높은 기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성적은 부진하며 7월 이후에는 선발 출장도 적었습니다. 팬들은 오재일이 선발로 출장할 때 팀의 수비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후, 8월 1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중요한 2루타를 작렬하며 팀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9월 5일에는 멋진 점프 캐치로 이닝을 마감하며 팀의 경기를 뒷받침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대타, 대수비, 그리고 선발로 출장하여 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결정적인 홈런을 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시리즈 전체적으로는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총 22타수로 활약했으며, 이를 통해 그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재일의 시즌은 기록을 통해 자리를 잡아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4월 30일 경기에서는 홍성흔의 부상으로 1루수로 선발 출장하였으나, 타격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현수에게 레슨을 받고 안타를 친 모습은 주목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해설위원은 오재일이 김현수에게 레슨을 받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에도 안타를 치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7월 10일 경기에서는 솔로 홈런을 포함한 4안타를 치며 다시 타격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8회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2점을 내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7월부터는 타격에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특히 7월 4일 홍성흔 부상 후에는 홈런을 4개나 기록하며 빛나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후에도 맹활약을 이어가며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특히 9월부터는 102타수 34안타 12홈런의 화려한 기록을 세워내며 팀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오재일의 활약은 두산 베어스의 우승으로 가는 길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함께 우승 반지를 챙긴 동료들과 함께, 그의 힘찬 활약은 팀의 우승에 큰 공을 헌납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그동안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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