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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92 ★ 최원호.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Araboza

시사맨 2024. 4. 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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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의 No.92인 최원호는 1973년 3월 13일에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51세입니다. 그의 출신 학교는 숭의초, 상인천중, 인천고를 거쳐 단국대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단국대 대학원에서는 체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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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으로는 183cm에 88kg로, 포지션은 투수이며, 우투우타입니다. 프로야구 입단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시작하여, 이후 LG 트윈스에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활약했습니다.

 

지도자로서는 LG 트윈스 2군 재활코치와 투수코치로 활동한 뒤, 한화 이글스에서 2군 감독으로 일했으며, 2020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감독대행을 맡았습니다. 이후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으로 활약한 뒤, 2023년부터는 한화 이글스의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불펜코치로 활약했으며, 전력분석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해설위원으로는 XTM 야구 해설위원과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최원호의 계약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이며, 연봉은 2023년에는 3억원이었습니다. 그는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하였으며,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자 대한민국의 야구인인 최원호는 현역 시절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그의 선수 경력은 현대 유니콘스와 LG 트윈스에서 투수로 뛰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는 안정된 밸런스에서 나오는 140km/h 초중반대 속구를 던졌으며, 주로 4, 5선발로 활약했습니다.

 

인천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 출신으로, 그는 야구 황금세대의 선두주자 급 동기들과 함께 활약했습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대륙간컵 야구국가대표 등 다양한 대회에서 활약했으며,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습니다.

 

1998년에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5선발로 뛰며 10승 5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LG 트윈스로 이적하여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습니다.

최원호는 현역 시절과 함께 한화 이글스에서도 감독으로 활약하며 야구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2000년, LG 트윈스에 이적한 최원호는 선수로서의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해는 부진한 시즌이었고, 2001년에는 전적으로 이탈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는 다시 1군에 복귀하였습니다. 승패는 좋지 않았지만 꾸준한 로테이션 역할을 해냈고, 특히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호투하여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의 한 에피소드가 그의 선수 생활에 그림자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고 강판당한 이상훈을 구원했으나, 그 다음 타석에서 마해영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았습니다. 이때의 모습은 그의 야구 선수 생활에서 가장 큰 상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는 평범한 성적을 보였으나, 2005년에는 팀의 유일한 10승 투수로서 뛰어나게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2006년에는 부상으로 시즌을 이탈해야 했고, 2007년과 2008년에도 부상과 성적 하락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08년에는 FA 신청을 했으나 이는 팀 내 FA 신청자 수 조작을 위한 전략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는 감독의 전략 변화와 유망주의 부재로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군에서 던진 뒤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최원호는 그의 야구 선수 생활 동안 수많은 상처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 때 LG 트윈스의 에이스로서 빛났던 그의 모습은 팬들에게 여전히 기억됩니다.

2014년, XTM에서 야구 해설위원을 맡게 된 최원호. 그는 해설자로서 평이 나쁘지 않았다. 피칭연구소장 출신으로 야구 분석에 자신 있으며,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다른 스타 플레이어 출신 해설자들에 비해 겸손한 성품이 장점이었으며, 어설픈 선수 출신들과 비교해도 깊이 있는 해설을 보여줬다. 최고의 해설자로 자주 거론되진 않지만, 불호 여론도 거의 없었고, 무난하면서도 좋은 해설자로 평가 받았다.

 

2015년부터는 중계권 계약이 종료된 XTM에서 SBS Sports로 옮겼다. SBS에서는 이종열과 함께 3인 중계체제로 활동했고, 이순철과도 공동 해설을 맡기도 했다. 이때의 공동 해설은 흥미로운데, 최원호와 이종열의 관계가 약간 어색하다는 점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줬다. 둘의 관계는 야구 팬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됐다.

 

2015년 4월 1일, 홍성흔의 통산 600볼넷 기록에 대해 자학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SBS의 기록원이 조사한 결과, 홍성흔을 상대로 한 볼넷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최원호의 자학은 사실이 아니었다.

1998년에 10승을 거둬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선발되며 병역 특례를 받은 최원호. 하지만 그 후로는 2005년의 13승을 제외하고 매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였다. 파워피처가 아닌 맞춰잡는 스타일로, 한 때는 LG 8성 선발로 활약했으며, 피칭 연구소장 출신으로 야구 이론을 연구하며 전파해왔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구시대적인 야구관을 부정하고, 학술 활동을 통해 이를 뒷받침했다. 또한 한국 야구계의 대표적인 학구파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한국 시리즈에서 마지막 패전투수로 21년 동안 이름을 남겼으나, 이를 마친 고우석의 블론으로 기록을 끝냈다. 현역 시절에는 1군 개막전 엔트리에 한 번도 포함되지 못한 적이 없었고, 은퇴 후에도 처음에는 2군에서 보직을 맡았기 때문에 1군 개막전에는 갈 일이 없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어 처음으로 1군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직설적인 타입인지 아니면 인터뷰를 잘 못하는지는 논란이다. 이재원 언급을 비롯해 인터뷰에서 잘못된 인상을 준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그의 학구파적인 접근과 야구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그를 한국 야구계의 중요한 인물로 만들고 있다.

 

역대 기록에 따르면, 1996년에 현대 팀에서 12경기를 소화하며 15⅔ 이닝을 던졌고, 1998년에 39경기에 등판하여 151이닝 동안 10승 5패를 기록했습니다. 이어서 2000년에 LG 팀으로 이적하여 19경기에 출전하여 77⅓ 이닝을 던졌고, 2005년에는 27경기에 등판하여 163⅔ 이닝을 던지며 13승을 거두었습니다. 총 14시즌 동안 309경기에 나서며 1201⅓ 이닝을 소화하며 67승 73패의 전적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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