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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34 최형우.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Araboza

시사맨 2024. 5. 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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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는 1984년 1월 18일에 대한민국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전주진북초학교, 전주동중학교, 그리고 전주고등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2002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프로 야구 선수로 데뷔하였으며, 그 후 2006년과 2007년에는 병역 의무를 경찰 야구단에서 이행하였습니다. 그 후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다시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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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는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타이거즈에서는 주전 우익수로 뛰면서 팀의 공격력을 견인해왔습니다. 그는 좌익수와 지명타자로도 출전한 경험이 있으며, 가끔씩 포수와 1루수로도 나와 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최형우는 높은 수준의 타격 실력과 꾸준한 활약으로 야구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응원가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풍문으로 들었소"를 사용하고 있으며, KIA 타이거즈 시절에는 유정석의 "최강공룡합체 다이노코어"와 Bon Jovi의 "This is Our House"가 그의 등장곡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최형우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약 22억원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현재는 스포츠 인텔리전스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83년 12월(음력)에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난 최형우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주진북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한 그는 전주고등학교에서 특이한 포지션인 스위치 포수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수비 능력은 부족했고, 타격은 꽤 괜찮았지만 계약금은 5000만원에 불과한 2차 6순위로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전주고등학교에서 재학 중에는 2년 선배인 박정권에게 매일 맞았다고 하며, 그 당시의 경험을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군대를 경찰청으로 간 박정권을 선임으로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에는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제춘모의 광주동성고에 패했습니다.

 

그의 KBO 리그에서의 활약은 꽤 눈에 띄었지만, 국가대표팀과의 인연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2017 WBC에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연습경기에서도 무안타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대호와 김태균의 광탈 후에 의문의 승리자로 등장하며 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최형우의 KBO 수상 경력

 

2008년에는 KBO 신인왕에 빛나는 등 주목받았다.

 

2011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함께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문)를 수상했고, 홈런, 타점, 장타율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이스턴 올스타(베스트10)에 선정되었다.

 

2012년과 2013년, 그리고 2014년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며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문)를 수상했다.

 

2015년에는 드림 올스타(베스트12)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에는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문)뿐만 아니라 타율, 타점, 최다안타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드림 올스타(베스트12)에 다시 한 번 선정되었다.

 

2017년에는 또 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문)와 출루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나눔 올스타(베스트12)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에는 골든글러브(지명타자 부문)와 타율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나눔 올스타(베스트12)에 다시 한 번 이름을 올렸다.

최형우의 역대 KBO 기록

 

연도별로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4경기에 출전하여 .400의 타율을 기록했다.

 

- 2003년: 1군 경기 기록이 없음.

 

- 2004년: 2경기 출전으로 타율이 .000에 그쳤다.

 

- 2005년: 1군 경기 기록이 없음.

 

- 2008년: 12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6, 홈런 19개를 기록하며 성장했다.

 

- 2009년: 11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4, 홈런 23개를 치며 향상되었다.

 

- 2010년: 12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9, 홈런 24개를 치며 안정된 활약을 펼쳤다.

 

- 2011년: 13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40, 홈런 30개를 치며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

 

- 2012년: 12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1, 홈런 14개를 치며 기록을 남겼다.

 

- 2013년: 12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05, 홈런 29개를 치며 탁월한 활약을 보였다.

 

- 2014년: 11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56, 홈런 31개를 치며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

 

- 2015년: 14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18, 홈런 33개를 치며 탁월한 활약을 펼쳤다.

 

- 2016년: 13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76, 홈런 31개를 치며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 2017년: KIA 타이거즈로 옮겨 14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42, 홈런 26개를 기록하며 높은 기대를 충족시켰다.

 

- 2018년: 14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39, 홈런 25개를 치며 안정된 활약을 보였다.

 

- 2019년: 13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00을 기록했다.

 

- 2020년: 14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54, 홈런 28개를 기록하여 높은 성과를 거뒀다.

 

- 2021년: 10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33에 그쳤다.

 

- 2022년: 13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4를 기록했다.

 

- 2023년: 12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02를 기록했다.

 

KBO 통산 기록은 2065경기에 출전하여 .312의 타율과 373개의 홈런을 치며 KBO 리그 역사에 길이 남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형우: 리그를 풍미한 강타자

 

최형우는 타석에 들어서면 볼카운트에 관계없이 풀스윙을 선보이며 우측으로 가는 타구를 많이 친다. 상대팀은 이를 감안하여 주자가 없을 때에는 항상 시프트를 도입한다. 그러나 최형우는 시프트를 하건 말건 항상 풀스윙을 하며 우측으로 공을 보내려 하며, 좌측으로 가는 타구는 그의 배트가 밀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타격은 풀타임 20홈런 이상을 보장하는 파워와 매년 타율 3할을 넘길 수 있는 컨택, 통산 출루율 4할을 넘는 선구안을 가지고 있다. 주루능력은 느린 편이지만 주루센스가 괜찮아서 주루사는 적은 드물다. 게다가 그는 꾸준함과 내구성도 갖추고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리그에서 가장 많은 안타와 홈런, 타점을 기록하며 홍성흔과 함께 3시즌 연속으로 타율 0.330을 기록한 단 둘 뿐인 선수이다. 이러한 기록은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자로 남을 만한 성과를 보여준다.

 

2022시즌까지 8227타석을 치르며 기록한 타율/출루율/장타율/OPS는 0.312/0.402/0.535/0.937로, 통산기록은 각각 리그 역대 12위, 8위, 3위, 4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성적이다. 또한 홈런왕 1회를 포함해 시즌 30홈런을 4번이나 넘기며 역대 통산 2루타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최형우가 대활약하기 시작한 시기에는 이대호가 리그를 지배하던 시기였고, 그 이후에는 박병호가 대각성 해버려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다. 이에도 불구하고 최형우는 꾸준한 성적을 보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자로 남았다.

 

2020년에는 지명타자로 전업하며 파워가 회복되고 타격 능력이 상향된 모습을 보여 .354/.433/.590 wRC+ 168.4를 기록하며 타격왕과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부상을 겪으며 노쇠화가 심화되었지만, 여전히 선구안을 유지하여 건재함을 과시했다. 2023년 시즌 초반에는 3할 타율, 4할 출루율, 5할 장타율을 보여주며 건재함을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다.

최형우: 수비의 근절과 성장

 

최형우는 삼성에 재입단하면서 외야수로 전향한 선수로, 초창기의 수비 능력은 막말로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였다. 특히 2008 시즌에서는 우익수로서는 수비를 무리없이 했지만, 좌익수로 이동한 후에는 갑자기 최하위권의 수비가 되었다. 간단한 플라이조차 흔들거리며 잡고, 펜스플레이로 상대 2루타를 3루타로, 안타를 2루타로 만들어주는 낙구판단 능력과 수비 센스를 보여준 적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이는 그의 송구 능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원래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2루 송구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 큰 이유였다. 그의 능력은 어깨 자체는 좋았지만, 원래 발이 느려서 외야수로서 공을 따라가기도 힘들었고, 외야 수비 경험이 적어서 타구 판단도 나빴다. 하지만 타격에서의 커리어하이를 찍은 2011 시즌 이후로는 수비도 점차 발전하였다.

 

최형우가 외야수로 전향한 이유 중 하나는 타격에서의 능력을 더욱 발휘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에는 그의 타격 능력을 필요로 하는 타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타격에 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수비는 계속된 과제였고, 연차가 쌓일수록 수비가 안정적으로 발전해왔다. 더불어 야구장 내에서 방심하는 모습이 거의 없는 선수로, 뜬공 수비 후 대처나 상대의 추가 진루에 있어 충실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최형우가 외야수로 전향한 후에는 지명타자로 출전하면서도 간간히 좌익수로 출전했지만, 그의 실책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는 그의 수비 노력과 성장을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로, 더불어 타격에서의 성과를 통해 그가 선수로서 계속 발전해왔음을 시사한다.

 

최형우는 수비에서의 노력과 성장을 통해 그의 포수 출신으로부터 이끌어낸 자신의 외야수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야구 선수로서의 성장은 야구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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