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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No.29 김광현.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Araboza

인간의 사람 2024. 5. 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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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의 No.29, 김광현은 1988년 7월 22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35세입니다.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 청라국제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력은 덕성초(안산리틀)를 거쳐 안산중앙중학교를 졸업하고 안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188cm의 키와 85kg의 몸무게를 가지고 있으며 혈액형은 B형이며 발 길이는 285m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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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투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투타는 좌투좌타입니다. 프로 입단은 2007년에 SK 와이번스에서 1차 지명을 받았으며 그 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거쳐 현재는 SSG 랜더스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김광현은 인천광역시 홍보대사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병역은 예술체육요원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에서 복무했습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151억 원의 계약을 통해 SSG 랜더스에 소속되어 있으며 2024년에는 10억 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의 등장곡은 오프스프링의 "Why don't you get a job?"이며 소속사는 브랜뉴스포츠입니다. 가족으로는 배우자인 이상희와의 결혼으로 딸 김민주와 아들 김민재가 있으며 부모는 아버지 김인갑과 어머니 전재향입니다. MBTI는 INTJ입니다.

SSG 랜더스의 소속 좌완 투수는 2007년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하여 5개의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한 선수입니다. 그는 2008 시즌에 MVP와 골든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했으며, 안산공고 시절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또한 프로에 와서는 역대 5번의 우승 때마다 투수진의 핵심 선수로 뛰었으며, 특히 2010년과 2018년, 2022년의 우승 순간에는 그가 마운드에서 경기를 끝냈을 정도입니다.

 

2019년 12월 18일, 최대 11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여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KBO에서 MLB로 직행한 이후, 역대 11번째로 MLB에서 승리 투수가 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2 시즌을 앞두고 친정인 SSG 랜더스로 4년 151억의 계약을 체결하여 KBO 역대 최고 대우를 받으며 복귀했습니다.

 

김광현은 2014 시즌에 KBO 사랑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주목할 만한 투수였습니다. 그 해에는 28경기에 나서며 173⅔이닝을 던지며 13승 9패를 기록했으며, 이는 뇌경색 이후 이어져 온 부진에서 벗어나면서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한 것입니다. 더불어 시즌 종료 이후에는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수술비를 기부하고, 백혈병 투병 어린이 팬을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등 꾸준한 선행을 베풀어 인정받아 사랑의 골든글러브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김광현은 메이저 리그로의 진출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SK가 포스팅을 신청한 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200만 달러로 응찰했지만, 김광현의 기대와는 다른 금액이었기에 계약에 실패했습니다. 이에 대한 팬들의 여론은 분분했으며, 샌디에이고가 김광현을 호구로 여기고 노예계약을 제시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결국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시도는 희망적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5년 뒤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하여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그의 야구 인생에서 한 장면일 뿐이었지만, 그의 열정과 노력은 여전히 팬들에게 감동과 존경을 불러일으킵니다.

 

2015 시즌은 김광현에게 여러 의미로 특별한 시즌으로 기록됐습니다. 이전 시즌보다 더 많은 등판을 했으며, 개인 최다 등판기록을 세우며 성장의 흔적을 보여주었습니다. 30경기에 176⅔이닝을 등판하며 14승 6패를 기록했으며, 평균자책 3.72와 160개의 탈삼진을 올려 10시즌 이후 가장 많은 탈삼진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사사구도 전년도 대비 크게 줄어들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2015 시즌은 그의 성적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김광현은 시즌 전에 볼넷을 줄이고자 노력하면서 홈런을 맞겠다는 인터뷰를 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성장을 추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2016 시즌에는 SK 역사상 2번째로 통산 100승을 달성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아쉬운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팀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을 보여주며 1차 FA 후에도 국내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김광현이 자신의 소속팀과 함께 전설로 남기를 희망하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2017 시즌에는 팔꿈치 통증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그동안의 재활과정에 최선을 다하며 다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장발을 하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팬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고, 그의 결의와 인내심은 그의 야구 선수로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2018 시즌은 김광현에게 놀라운 성과와 새로운 도전의 해였습니다. 이전의 부상으로 투구수에 제한이 있었지만, 그는 토종 선발 중 sWAR에서 1위, kWAR에서 2위를 기록하여 눈에 띄었습니다. 이는 그가 복귀 시즌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투수로서의 능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그는 2010년의 한국시리즈와 같이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2019 시즌에는 김광현은 더 큰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메이저 리그로의 도전을 선언하고, 이를 위해 훌륭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그의 열망과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응원과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그의 결정에는 지지하는 이들과 구단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 대립도 있었지만, 김광현의 의지와 열정은 끝내 구단의 결정을 이끌었습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협상을 거쳐 2019년 12월에 김광현은 메이저 리그로의 입단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는 그의 야구 선수로서의 새로운 도전이자, 한국 야구의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쉽지 않을 것이며, 성공을 위해서는 더욱더 힘든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결단력과 열정은 그를 위대한 선수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김광현의 메이저 리그 도전은 한국 야구의 미래를 대표하는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성공은 한국 야구 선수들에게도 큰 자부심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가 이루어낸다면, 그것은 단순히 한 선수의 성공이 아니라 한 나라의 야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될 것입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역사는 한때의 스포츠 전설과 현재의 도전으로 가득합니다. 드류 로빈슨이 이끌던 2019년의 팀은 한창이던 성적을 보여주었지만, 2020년에는 한국 야구계의 자랑 김광현이 카디널스의 등번호 33번을 달고 메이저 리그에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2022년에는 브렌던 도노반이 팀에 합류하며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카디널스가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김광현의 카디널스에서의 두 시즌 동안의 활약은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MLB에서 2년 동안 10승을 거뒀고, 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22년 3월 8일, 김광현은 역대 최고액인 4년 151억의 계약으로 친정팀 SSG 랜더스로 복귀했습니다. 이는 김광현의 야구 경력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김광현은 SSG 랜더스에서 활약을 이어가면서 시즌 내내 팀을 이끌었고, 결국 KBO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에 기여하여 그의 커리어 최초로 최동원 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에는 전년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약간의 실망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다시 팀을 이끌며 반등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가을야구에서는 예전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김광현은 국제대회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의 국가대표 통산 성적은 굉장히 인상적이며, 대표팀 역사상 최다 선발 등판과 최다 이닝 소화, 그리고 다양한 기록들을 세우며 한국 야구의 자랑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활약은 야구팬들에게 큰 자부심과 감동을 주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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