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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흥 : 제40·41대 대한체육회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5. 5. 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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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흥은 1955년 1월 26일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서 태어난 체육계 인물로, 대한민국 스포츠 행정의 중심에서 오랜 기간 활약해왔다. 현재는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에 거주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서담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제40·41대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그 임기는 2016년 10월 6일부터 2025년 1월 31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다. 불교를 신앙으로 삼고 있으며, 법명은 보승이다. 구자곡초등학교, 보문중학교,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에 제적되었고, 용인대학교에서 체육학 명예박사, 동국대학교에서 철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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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요 경력은 국제 및 국내 체육계를 포괄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제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고, 국제수영연맹 집행위원과 아시아수영연맹 부회장 등으로 활약했다. 국내에서는 제30회 런던 올림픽과 제16회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장을 맡았으며,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 체육발전위원회 위원장,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또한 대한수영연맹 회장, 대한카누연맹 회장, 대한근대5종연맹 고문 등 여러 종목 단체에서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기흥은 스포츠 외에도 사회적 공헌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 청소년을 위한 나눔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체육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왔다.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으로서 선수들의 안전을 도모했고, 국제경기대회지원위원회 위원으로서 국내 스포츠 행정의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그의 활동은 단순한 체육회장의 역할을 넘어서, 국내 체육 시스템의 구조적 안정과 국제 스포츠 외교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 온 인물로 평가된다.

이기흥은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기업인 출신 체육 행정가로서 수십 년간 스포츠와 불교,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1955년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서 태어난 그는,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하고 제적된 바 있다. 학력 논란은 오래도록 그를 따라다닌 이슈였으며, 명예 박사 학위 두 개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는 정식 학력으로 인정받지 않는다. 젊은 시절 이민우 총재의 비서진으로 잠시 정치권에 몸담은 그는, 이후 1989년 우성산업개발을 창업해 기업가로 변신했고, 이 경험은 그가 체육계의 조직 운영에서 드러내는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리더십의 기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2004년 대한카누연맹 회장으로 체육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그는, 이후 대한수영연맹 회장,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 그리고 2016년 대한체육회장에 선출되며 정점에 올랐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 신도회장직을 두 차례 역임하고, 불교리더스포럼 상임대표로 활동하면서 불교계와 체육계 양쪽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체육 행정가로서의 경력은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비리 의혹, 그리고 지속적인 논란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는 체육회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정부와 거리를 두려 했으나, 이는 종종 독선적인 행보로 비춰졌고, 선수단이나 체육회 내부에서도 갈등을 낳았다. 2024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기흥 회장에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직무를 정지시켰고, 이는 사실상 정부 차원의 불신임이었다. 이에 반발한 이기흥은 기자회견을 통해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본인에 대한 비리 수사 및 각종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였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우려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썼지만, 체육회 노조와 일부 선수들의 반발, 그리고 체육회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여론 속에서 이 같은 주장은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문체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출근을 강행하고, 회장직 3선에 도전하는 등 전면전을 펼쳤다. 그러나 2025년 1월 14일, 유승민 후보에게 패배하며 사실상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곧바로 IOC 위원직에서도 사퇴하면서 조용히 무대를 떠났다.

그의 퇴장은 체육계는 물론 정치, 종교계에 걸쳐 있던 영향력의 쇠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장기간 체육회를 이끌며 여러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대한민국 대표단의 얼굴 역할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불투명한 운영, 정실 인사, 그리고 종교계와의 유착 등 다양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대한체육회 사유화 논란과 태광그룹 골프 접대 의혹, 조계종 신도회와의 연결 고리 등은 체육계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해치는 요소로 지적되었으며, 국정감사에서도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다. 낙선 이후에는 문체부, 국회, 그리고 체육회 내부 모두에게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사실상 고립되었고, 과거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에 대한 재조명도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그래도 김택규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의 퇴장은 체육계가 권위주의와 불투명성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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