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 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및 손담비의 남편 ,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이규혁은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1978년 3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리라초등학교와 신사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체육교육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왔다. 177cm의 키와 71kg의 체중을 가진 그는 500m와 1,000m를 주종목으로 하며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 선수로 활약했다. 소속팀은 알펜시아이며, 오랜 시간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가족으로는 아버지 이익환, 어머니 이인숙, 그리고 남동생 이규현이 있으며, 2022년 5월 13일 가수 겸 배우 손담비와 결혼해 슬하에 딸 이해이를 두고 있다. 이규혁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거주하며, 달리, 뭉크, 에곤이라는 세 마리의 반려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결혼 이후로는 가정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새로운 가족과의 행복한 일상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서 이규혁은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왔다. 특히 빠른 속도와 정확한 경기 운영 능력으로 국내외 대회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의 이름은 여전히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은퇴 이후에도 대한민국 스케이팅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스포츠 외교와 해설, 후진 양성 등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규혁: 스케이트 위의 전설, 그러나 불운한 챔피언의 초상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역사에서 이규혁이라는 이름은 그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가 아니라, 한국 빙상계의 거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내려간 인물이었다. 1992년 중학생의 나이로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무려 20년 이상을 태극마크를 달고 빙판 위를 질주했던 그는 ‘모태 스케이터’라는 별명에 걸맞게, 선수생활의 모든 순간을 얼음 위에서 보냈다. 피겨 스케이팅 코치였던 어머니 이인숙 씨의 배 속에서부터 스케이트를 탔다던 유명한 일화는 그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에피소드였다.



이규혁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7년, 한국 선수 최초로 1,000m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세계 무대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는 메달과의 인연이 끝내 닿지 않았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의 아쉬운 성적은 그의 커리어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메달을 놓치며 그의 이름은 늘 ‘무관의 챔피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언급되었다. 0.05초 차이로 메달을 놓친 토리노의 아픔은 그를 더욱 깊은 슬럼프로 몰아넣었고, 그 시절의 이규혁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도전해야만 했던 자신이 너무 슬펐다"며 눈물을 보였던 인터뷰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이규혁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선수 생활의 최전성기를 맞이하며 스프린트 세계선수권 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에릭 하이든, 이고리 젤레좁스키, 제러미 워더스푼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 기록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이 세계 무대에서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이었다. 특히 당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규혁의 업적은 더욱 빛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혁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올림픽 메달의 부재’였다. 6번의 올림픽 출전이라는 대기록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한 번도 손에 쥐지 못했던 그는 김동문-라경민과 함께 한국 스포츠계의 ‘불운의 아이콘’으로 회자되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후배 모태범과 이상화의 금메달 획득을 응원하며 뒷자리를 지켰고, 후배들에게 전수한 노하우가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부흥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무관의 챔피언’이라는 그의 서사는 더욱 씁쓸한 울림을 주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이규혁 선수로서의 마지막 무대였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국 팬들은 마지막 기적을 바라며 그의 레이스를 응원했다. 결과는 500m 18위, 1,000m 21위. 그가 올림픽 무대에서 남긴 마지막 기록이었다. 하지만 기록 이상의 무게감, 끝까지 도전하며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그의 모습은 팬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규혁의 은퇴 후 행보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2014년, 예능 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해 ‘혁구’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쾌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이어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전무이사로서의 직함과 장시호와의 친분은 의혹의 불씨가 되었고, 결국 그는 검찰 조사와 국회 청문회에까지 출석해야 했다. 처음엔 장시호를 모른다고 발언했던 그가 이후 중학교 후배라며 말을 바꾸는 과정에서 불거진 거짓말 논란은 여론의 차가운 시선을 불러왔다. 장시호와의 20년 지기 우정, 함께 골프를 치며 시간을 보내던 일화, 그리고 그의 집과 장시호의 사무실 간 거리까지, 그를 둘러싼 의혹들은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994년 일본 오비히로 대회 이후 불거진 성폭력 사건 의혹은 이규혁의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당시 대한빙상연맹이 이를 묵인했다는 의혹과 함께, 스포츠토토 빙상단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과거의 그림자는 그를 끝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규혁이 세운 빙상계의 위상과 업적은 단연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논란들이 그의 커리어를 따라다니며 팬들 사이에 씁쓸함을 남겼다.



한때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며 네덜란드에 팬클럽까지 존재했던 이규혁. 하지만 그는 끝내 올림픽 메달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무관의 챔피언", "불운의 아이콘"이라는 다소 아쉬운 타이틀을 남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한국 빙속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그의 도전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결코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남긴 기록과 기억은 후배들의 가슴 속에서, 그리고 한국 빙상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이규혁, 그는 분명히 빙판 위의 레전드였다.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 조금은 부족했던, 그래서 더 안타까운 ‘영원한 챔피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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