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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모 : 송골매로 유명한 가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5. 6. 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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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모는 1954년 4월 27일 경기도 인천시 북구(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기업인입니다. 본관은 능성 구씨이며,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배우자 박미순씨와 아들 구교현군을 두고 있습니다.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전자전기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의 음악 경력은 1978년 블랙테트라에서 시작하여 1979년까지 활동했으며, 이후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전설적인 밴드 송골매의 멤버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의 종교는 개신교(장로회 / 예장통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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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모는 '구두창', '단신대두', '짱구'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송골매 활동 이후에도 꾸준히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가수 활동 외에도 기업인으로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구창모는 1978년 TBC 해변가요제에 홍익대학교 밴드 '블랙테트라'의 2기 멤버로 출전하며 데뷔한 대한민국의 가수입니다. 1980년 배철수가 이끄는 밴드 송골매에 가입하여 전성기를 누렸으며,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로 많은 10대 소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구창모

구창모 - 생애 및 주요 활동

 

1954년 4월 27일 인천에서 태어난 구창모는 어린 시절 미군 기지촌에서 가난하게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배재고등학교(88회)와 홍익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78년 블랙테트라 2기 멤버로 TBC 해변가요제에서 '구름과 나'로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송골매의 리드 보컬로 활동했습니다. 송골매 탈퇴 후에는 솔로 가수로 전향하여 '희나리',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문을 열어'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희나리'의 번안곡인 '기허풍우(幾許風雨)'는 홍콩 영화 《영웅본색》에 삽입되기도 했습니다.

 

1991년 카자흐스탄 가요제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키르기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10년간 사업을 했으며, 현재는 건축회사 엠엔아이의 사장으로 재직하면서도 방송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송골매와 배철수, 그리고 가창력

 

구창모는 19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배철수와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배철수는 구창모의 미성에 큰 충격을 받았고, 훗날 송골매 2집을 준비하면서 그를 영입했습니다. 구창모가 합류한 송골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다시 한 번' 등의 곡이 크게 히트하며 1980년대 조용필 다음 가는 국민 밴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배철수의 독특한 캐릭터와 담백한 창법, 그리고 구창모의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미성이 조화를 이루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가 세 편이나 제작될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솔로 활동에 대한 꿈과 음악적 마찰, 그리고 과도한 스케줄로 인한 목 상태 악화로 1985년 송골매를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했습니다. 배철수는 송골매가 오래가는 밴드가 되기를 원했기에 구창모의 탈퇴를 안타까워했지만, 시간이 지나 화해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창모의 방송 복귀 역시 배철수의 도움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더 늦기 전에 송골매 기념 공연을 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라고 합니다.

구창모의 트레이드 마크는 비음 섞인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입니다. 타고난 하이톤을 바탕으로 비음을 적절히 활용하고 안정적으로 고음역대를 소화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확한 발음과 음정, 박자감은 물론 뛰어난 리듬감으로 펑키한 곡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습니다. 라이브가 상당히 안정적이며,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너가 없던 시대에 비교적 안정적인 발성과 테크닉으로 기복 없이 공연을 소화했습니다. 그의 대표곡들을 직접 불러보면 기본 키가 높고 특유의 미성과 리듬감을 살리기가 어려워 그의 가창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팝적인 세련된 감각과 여린 미성 보컬에게는 드문 파워까지 갖춘 보컬로, 하드록, 펑크, 발라드,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조용필을 제외하면 미성의 젊은 보컬들 중에서 최강'이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80년대 초반 미성 보컬리스트의 정점에 섰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한 혹사로 인해 목 상태가 점점 나빠졌고, 리즈 시절의 시원시원한 하이톤 보이스를 점차 잃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과거와 같은 파워풀한 보컬은 들을 수 없지만, 여전히 듣기 좋은 가창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록 보컬로 시작해 아이돌적인 인기를 얻다가 발라드 가수로 전향하고,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에 힘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후배 이승철과 비슷한 케이스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기타 정보 및 에피소드

 

구창모는 자신과 동명이인인 야구선수 구창모와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의 주선으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래퍼 창모, 야구선수 구창모와 이름, 한자, 심지어 항렬까지 같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능성 구씨 29대손의 항렬자가 '○모(謨)'이기 때문입니다. 2023년 기준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안 외모를 자랑하며, 곱상하고 온실 속 화초 같은 모습이 여전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가수 이승재와는 이종사촌 관계입니다. 가창력이 뛰어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같은 히트곡을 직접 작곡했을 정도로 뛰어난 작곡 재능도 겸비했습니다. 2000년에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설립하여 사이버 3인조 혼성그룹 TG를 제작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배재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풍류로는 전교에서 손꼽혔으나 학내 중창단에서는 떨어진 이력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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