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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 피겨계의 여왕. 그녀에 대해 알아보자

시사맨 2024. 7. 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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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1990년 9월 5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유명 피겨 스케이팅 선수입니다. 김연아는 경주 김씨 출신으로, 신체는 164cm이며 혈액형은 O형입니다. 김연아는 신흥초등학교, 도장중학교, 수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과정을 영구수료하며 학문적 배경도 갖추었습니다. 김연아의 가족 구성원으로는 아버지 김현석, 어머니 박미희, 언니 김애라가 있으며, 2022년 10월 22일에는 가수 고우림과 결혼하였습니다. 김연아는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스텔라입니다. 현재 올댓스포츠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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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201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2016년에는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훈하였습니다. 김연아의 업적은 국내외에서 많은 찬사를 받으며, 피겨 스케이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연아는 1996년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접한 이후, 류종현 코치의 권유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김연아는 국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재능을 확실히 입증했습니다. 특히 12살의 나이에 트리플 점프 5종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의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김연아의 출발점은 매우 화려했지만, 김연아는 부상과 훈련비 부담, 어려운 환경 등으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김연아의 시니어 데뷔 초기, 김연아는 국제 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원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06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과 2007년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 세계 신기록 등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했습니다. 이는 당시 남나리 선수의 부상과 경기 부진으로 인한 후원 기업들의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김연아는 이러한 역경을 딛고 성과를 이어갔으며, 결국 시니어 2년 차부터 안정적인 후원을 받으며 훈련 환경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는 은퇴 후에도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연아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수차례 신기록을 세우며 피겨 스케이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의 '죽음의 무도'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등은 김연아의 전설적인 커리어를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특히 올림픽 2연패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김연아의 업적은 많은 피겨 팬과 전문가들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의 전설로 남아, 김연아의 기록과 성과는 스포츠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연아: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의 경기 기록 및 성과

 

 2008-09 시즌

 

2008-09 시즌의 김연아는 기술적 우수성과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피겨 스케이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시즌이었습니다. 이 시즌 동안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은 ‘죽음의 무도’(Carmen)였으며, 프리 스케이팅은 ‘세헤라자데’(Scheherazade)였습니다. 쇼트 프로그램의 점프 구성은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3F+3T), 트리플 러츠(3Lz), 더블 악셀(2A)으로, 프리 스케이팅은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3F+3T), 더블 악셀+더블 토룹+더블 룹(2A+2T+2Lo),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2A+3T), 트리플 러츠(3Lz), 트리플 살코(3S)로 구성되었습니다.

 

2008년 Skate America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점프 난도에 대한 실수를 보였지만, 더블 악셀의 랜딩에서 스텝 아웃을 기록하고도 69.50점을 받으며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한국 시간으로 일요일 아침이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경기를 시청했고,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하루 종일 검색어 순위에서 높은 위치를 유지했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룹을 싱글 처리하고, 플라잉 컴비네이션 스핀 중 싯 자세에서 엣지 흔들림으로 감점을 받았으나, 쇼트에서의 점수 차이가 커서 무난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 Cup of China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클린 연기를 했으나, 트리플 플립에서 롱엣지(e) 판정을 받았고, 트리플 러츠의 랜딩 때 날이 박혀 휘청거리며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아 점수가 낮아졌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플립의 롱엣지가 아닌 어텐션(!) 판정을 받았고,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더블 룹(3Lz+2T+2Lo)에서 첫 점프 후 스텝 아웃을 하여 단독 트리플 러츠로 수행했으나, 후반부 단독 트리플 러츠에 컴비네이션 점프를 연결해 점수를 만회하였고 무난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컵 오브 차이나에서 모두 우승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고양시에서 열린 대회에서 자국에서 열린 첫 국제 대회라는 부담감 속에서도 쇼트에서 트리플 러츠를 싱글 러츠로 처리하는 실수를 보였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후반부의 트리플 러츠를 싱글 러츠로 처리하고, 트리플 살코에서 회전수 부족으로 넘어지는 등의 실수를 보였으나, 아사다 마오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다만,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에서 회전수 부족과 트리플 러츠 롱엣지 판정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2009 사대륙선수권에서는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쇼트 프로그램에서 클린 연기를 펼쳐 72.24점을 받아, 2년 전 본인의 71.95점을 경신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룹에서 넘어지고,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더블 룹(3Lz+2T+2Lo)에서 러츠와 룹에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았으며, 구성 점수에서 60점이라는 박한 평가를 받았으나, 무리 없이 최종 우승하였습니다. 쇼트와 프리 모두 트리플 플립에서 어텐션(!) 마크를 받았습니다.

 

2009 세계선수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클린 연기를 하여 76.12점을 기록, 한 달 전 자신의 기록을 깨고 또 한 번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였습니다. 이로써 쇼트 75점을 넘은 최초의 여자 선수, 쇼트 프로그램 구성 점수에서 최초로 8점대를 받은 여자 선수가 되었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플립에서 어텐션 판정, 트리플 살코를 싱글로 처리하는 등의 실수를 보였으나, 131.5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였습니다. 총점에서는 207.71점을 기록하며 첫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였고, 총점 200점을 돌파한 최초의 여자 싱글 선수가 되었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 마지막 체인지 풋 컴비네이션 스핀은 0점 처리되었고, 이는 브라이언 오서의 프로그램 구성 오류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2009-10 시즌

 

2009-10 시즌에는 김연아가 자신의 기량을 더욱 발전시키며 새로운 기술적 도전에 나섰습니다. 쇼트 프로그램은 ‘제임스 본드 메들리 007’(James Bond Medley)였으며, 프리 스케이팅은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George Gershwin’s Piano Concerto in F Major)로 구성되었습니다. 쇼트 프로그램의 점프 구성은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3Lz+3T), 트리플 플립(3F), 더블 악셀(2A)으로, 프리 스케이팅은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3Lz+3T), 트리플 플립(3F), 더블 악셀+더블 토룹+더블 룹(2A+2T+2Lo),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2A+3T), 트리플 살코(3S), 트리플 러츠(3Lz)로 구성되었습니다.

 

2009년 트로피 에릭 봉파르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아사다 마오와 맞붙어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3Lz+3T)으로 가산점 +2점을 받으며 76.08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세계 신기록에 불과 0.04점 모자란 점수였으며,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플립 도입 도중 스케이트 날에 무언가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 도약을 하지 않아 0점 처리된 것을 제외하고 깔끔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점수는 133.95점으로, 2년 전 자신이 세웠던 133.70점을 경신하며 프리 부문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총점 210.03점으로 역시 지난 세계선수권에서의 207.71점을 스스로 경신하며 총점 부문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총점 210점을 넘은 최초의 여자 싱글 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2위인 아사다 마오와는 36.04점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76.28점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며,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에서 역대 최고 가산점인 2.2점을 받았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압박감을 느낀 탓인지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에서 연결 트리플 토룹 다운그레이드를 받았고, 트리플 플립에서 넘어지며, 트리플 러츠를 싱글로 처리하는 등의 실수를 보였으나 레이첼 플랫에게 밀려 2위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에는 무리가 없어, 1순위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2009-1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플립을 싱글로 처리하고,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에서 연결 트리플 토룹이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심판진들이 가산점을 1.6점을 주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외 언론에서 판정에 대한 논란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에서 연결 토룹을 더블 토룹으로

 

 다운그레이드 받았으나, 후반부의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살코에서 클린 연기를 펼쳤습니다. 최종 점수는 195.10점으로 4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쇼트와 프리 스케이팅에서 각각 80점대와 115점대를 기록하며, 총점 195.10점으로 4위에 머물렀습니다.

 

2010 사대륙선수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78.79점으로 세계 신기록을 기록하며 선두를 유지하였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경기가 다소 흐름이 있었으나 실수를 만회하며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의 기술 구성 요소 점수에서 57.11점을 기록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총점 212.71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2010 올림픽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78.50점을 기록하며 선두를 유지하였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150.06점을 기록하여 총점 228.56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올림픽 역사상 최고 점수로,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스케이팅에서 모두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의 새로운 전설로 자리잡았습니다.

김연아의 2010-2014 시즌: 세계선수권과 그 이후

 

김연아는 2010-2014 시즌 동안 국제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자신의 경력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이 시기의 성과는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했으며, 국내외 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김연아의 2010 세계선수권 대회부터 2014 종합선수권 대회까지의 주요 경기를 자세히 살펴보겠다.

 

 1. 2010 세계선수권

 

2010 세계선수권 대회는 김연아에게 도전과 성취의 의미가 깊은 대회였다. 2010년 3월, 올림픽을 마치고 불과 한 달 후, 김연아는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다. 레이백 스핀 도입에서 미끄러지고 스파이럴 시퀀스에서 엣지 체인지 오류로 레벨 1을 받았으며, 트리플 플립 랜딩에서 다운그레이드 처리를 받았다. 그 결과, 쇼트 프로그램에서 60.30점으로 7위에 머물렀다. 김연아는 당시 "왼쪽 다리와 스케이트 날이 흔들렸다"며 원인을 설명했다.

 

그러나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강력한 회복을 보여주었다. 트리플 살코에서 넘어지고 더블 악셀을 A(반바퀴)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3Lz+3T와 3F에서 높은 가산점을 받아 프리 스케이팅에서 130.49점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총점 190.79점으로 아사다 마오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는 김연아의 첫 세계선수권 은메달로, 김연아의 뛰어난 회복력과 경기력을 보여주는 대회였다.

 2. 2011 세계선수권

 

2011 세계선수권 대회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대회였다.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대회 개최지와 일정이 변경되었고, 김연아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에 참여한 후, 대회가 러시아 모스크바로 옮겨진 소식을 접했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기 위해 평창 올림픽 위원회의 배려로 일정을 조정하였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발레곡 '지젤'에 맞춰 연기했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에서 스텝 아웃을 하였으나, 나머지 요소는 깔끔하게 수행하여 쇼트 1위를 차지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 구성을 포함하지 못하고 대체된 구성으로 점수를 만회했지만, 결국 안도 미키에게 1점 차로 역전당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에서 김연아는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한국의 전통 음악을 바탕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3. 2013 세계선수권

 

2013 세계선수권 대회는 김연아의 경력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의 성적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으며, 김연아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69.97점으로 1위에 올랐고, 프리 스케이팅에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148.34점을 기록하였다. 총합 218.31점으로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부문 사상 최고 점수를 경신하며 1위를 차지했다. 김연아의 연기는 관객과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김연아의 뛰어난 기량과 안정된 수행력은 대회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4. 2014 종합선수권

 

2014 종합선수권 대회는 김연아의 국내 대회 출전이자 올림픽을 앞두고 중요한 시험대였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80.60점을 기록하며 여자 싱글 최초로 80점을 넘어섰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거의 완벽한 경기를 펼쳐 147.26점을 기록하였다. 총합 227.86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김연아는 더블 악셀의 비거리와 점프 높이에서 변화가 있었으나, 전반적인 성과는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었다.

 

김연아의 2010-2014 시즌 동안의 성과는 김연아의 경기력과 회복력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김연아의 전성기와 국제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기여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인생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김연아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판정 논란과 그 여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또 한 번의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김연아는 2013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여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으며, 올림픽을 앞두고는 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금메달에 대한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난 후, 김연아의 금메달이 도둑맞았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판정 논란의 시작

 

소치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기술 점수(TES) 39.03점과 구성 점수(PCS) 35.89점을 받아 총 74.92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점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개정된 규칙에 따라 쇼트와 프리에서 스파이럴이 채점 항목에서 제외된 후, 역대 최고 점수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각종 방송사와 언론은 김연아에게 지나치게 낮은 점수가 주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점프 가산점과 스텝 레벨 판정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되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는 뛰어난 연기를 펼쳤으나, 평가 점수는 144.19점으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5점 뒤진 점수를 받았습니다. 최종 합계 219.11점으로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빼앗겼다는 이 났습니다. 이 판정은 국제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판정의 의혹과 국제적 반응

 

김연아의 판정에 대한 논란은 심판의 배경과 관련된 여러 의혹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적의 심판이 과거 승부 조작을 했다는 전력이 있었고, 또 다른 심판은 러시아 빙상연맹 협회장의 아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BBC는 "김연아가 금메달을 받지 못한 것이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NBC는 "이 판정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을 트위터에 올리며 간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프랑스 언론과 ESPN 등도 이 판정이 러시아의 홈 어드밴티지에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뉴욕타임즈는 김연아의 프로그램이 단조롭다고 평가하며 소트니코바의 점수가 더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김연아의 연기가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적 표현 모두에서 우수했음을 인정하며, 점수의 불합리가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김연아의 반응과 은퇴

 

경기 후 김연아는 외부의 시선에는 웃으며 인터뷰를 진행했으나, 백스테이지에서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그동안의 힘든 시간이 터져 나왔다고 밝히며, 선수 생활의 끝에 대한 후련함과 고단함을 표현했습니다.

 

소치 올림픽 이후 김연아는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하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김연아는 끝까지 클린 연기를 선보였으며, 자신이 원했던 목표를 이루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선수 생활 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은퇴한 김연아의 업적은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판정 논란은 국제적인 스포츠 공정성 문제를 다시 한 번 부각시켰습니다. 김연아의 금메달 도둑맞은 사건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과 불만을 안기며, 이후 올림픽 및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의 판정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연아의 업적과 그가 남긴 유산은 피겨 스케이팅 팬들과 선수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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