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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 : 제20-22대 국회의원.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4. 10. 1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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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朴柱民, 1973년 11월 21일 출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으로, 현재 제2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주민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은평구 갑 지역위원장과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주민은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로 경력을 쌓았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무차장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등 다양한 직책을 수행해왔다. 박주민은 봉화중학교와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주민은 군 복무로 공군 제15혼성비행단에서 중위로 복무하며, 학사장교로 전역하였다. 이러한 경험들은 박주민의 정치적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박주민은 20대, 21대, 22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특히 검찰개혁특별위원장과 의료대란대책특별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이슈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가족으로는 배우자 강영구와 2018년생 딸 박솔이 있다. 박주민의 별명으로는 "거지갑", "박주발의", "박주렁주렁" 등이 있으며, 이러한 별명들은 박주민의 정치적 행보와 개성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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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민: 서울의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박주민은 1973년 11월 21일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 태어났다. 박주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업에 있어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중학교 시절인 서울 봉화중학교 재학 중 열심히 공부한 결과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중국어과에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우수한 학습 성과를 거두는 학생들이 많아 한동안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에 박주민은 심기일전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고, 자신의 외모를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학업에 몰두한 결과 재수를 통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하게 된다. 원래 법학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박주민은 오히려 경영학과에 관심이 많았으나, 높은 시험 성적 덕분에 법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대학 진학 후 박주민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박주민은 대학 재학 중 21세기 진보학생연합에서 활동하며 법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졸업 후에는 학사장교에 지원하여 1998년 공군 헌병 소위로 임관한 뒤, 제15특수임무비행단과 제16전투비행단에서 복무하였다. 2001년 중위로 만기전역하며 군 복무를 마친 박주민은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6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변호사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인권 변호사 시절

 

박주민의 변호사 시절은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한 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박주민은 여러 중요한 사건에 참여하며 그 공적을 인정받았다. 2006년에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지 주민에 대한 법률 지원을 시작으로, 2007년 한미 FTA 반대 농민 저지와 관련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담당하였다. 2008년에는 광우병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헌법소송을 제기하며, 2009년 용산 참사 대책위 활동가들의 형사변론을 맡았다.

 

2011년에는 국정원 패킷 감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2013년에는 밀양 송전탑 반대 활동과 관련하여 법률 지원을 제공하였다. 박주민은 이러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인권과 법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며,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정계 입문

 

2016년 1월, 박주민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게 된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당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다. 같은 해 3월 20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갑 지역에 전략공천이 확정되었고, 박주민은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박주민의 당선은 은평구 지역 내에서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하다는 점과 세월호 피해자 가족협의회의 법률대리인으로서의 활동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박주민은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었고, 적극적인 선거 유세를 통해 54.9%의 득표율로 당선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20대 국회와 정치적 입지

 

박주민은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일 중독"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열정적으로 일하였다. 박주민은 인권 변호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한 법안을 발의하며, 대한민국 정치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았다. 박주민은 국회의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였으며, 대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박주민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적이며, 민주당 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 출신으로 지역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은 박주민의 대권 도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박주민은 정치적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처럼,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쌓아가며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박주민은 서울의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박주민의 열정과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앞으로의 정치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정치적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박주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박주민: 진보적 정치인의 여정

 

박주민 의원은 한국 정치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박주민의 이력과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인상 깊은 기억을 남기고 있다. 2019년, 박주민은 디젤매니아 유저에 의해 유포된 가짜 뉴스의 피해자로 지목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박주민이 정치인으로서의 신뢰성과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치 경력과 활동

 

박주민 의원은 헌정 사상 두 번째로 외고 출신 국회의원으로, 정치적 배경이 상당히 독특하다. 박주민은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되기 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경력 덕분에 민주당 내에서 진보파로 분류된다. 박주민은 "평등과 연대의 가치 위에 생태, 평화, 여성주의 등의 새로운 가치를 결합하고, 신자유주의 물결에 맞서 진보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박 의원은 독특한 외모로도 유명하다. '박주렁주렁'이라는 별명은 박주민이 공식석상에서 여러 개의 배지를 달고 등장하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 박주민은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눈에 띄는 스타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이는 박주민의 개성을 강조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참여

 

박주민의 정치 활동은 단순히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도 이어진다. 박 의원은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황제 보석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이는 박주민이 법조인으로서의 전문성을 활용해 정치적 이슈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군형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개인적 이야기와 인간적인 면모

 

박주민 의원의 개인적 이야기 또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박주민은 2018년 결혼 11년 만에 첫 아이를 얻었으며, 아이의 이름은 '박솔'로 지었다. 아이에 대한 애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박주민은, 부인인 강영구와의 인연도 흥미롭다. 두 사람은 같은 법조계에서 만나 서로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었다.

 

박주민은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를 활용하여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시민들과 함께하는 선거운동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벚꽃이 만개한 거리에서 시민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선거일에는 저를 찍어주세요"라고 외친 장면은 박주민이 대중과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박주민 의원은 진보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주민의 정치적 여정은 단순히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인물 중 하나로, 박주민의 활동은 한국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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