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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 前 야구 선수 및 前 NC 다이노스의 1군 주루코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4. 10. 3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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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李鍾旭)은 1980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중랑구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구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이종욱은 면목초등학교, 홍은중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에서 체육학을 전공하며 야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999년 프로야구에 입단한 이종욱은 현대 유니콘스에서 시작해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에서 뛰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종욱의 신체 조건은 176cm의 신장과 78kg의 체중을 갖추고 있으며, 포지션은 중견수와 좌익수, 우익수로 다양하게 활약했습니다. 이종욱의 프로 커리어는 특히 두산 베어스 시절에 빛났습니다. 이종욱은 팀의 주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NC 다이노스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팀의 성과에 기여했습니다. 이종욱의 뛰어난 좌투좌타 능력과 빠른 발, 정확한 타격은 팀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현역 시절 동안 이종욱은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도 군 복무를 마치며 프로 선수로서의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이종욱은 2007년에 양유정과 결혼하여 한 딸 이예소를 두고 있습니다. 이종욱의 가족은 이종욱이 야구 외적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종욱은 NC 다이노스에서 1군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하며 후배 선수들의 성장과 팀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종욱의 MBTI는 ESFP로,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동료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이종욱의 인생과 경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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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욱: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코치

 

이종욱(李鍾旭)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 야구 선수로, 외야수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KBO 리그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에 입단한 후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에서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특히 두산에서 정수근, 정수빈과 함께 리드오프 중견수의 계보를 이어갔으며, 허슬두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종욱의 뛰어난 주력과 공격적인 플레이는 두산의 간판 선수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린 이종욱은 2018년까지 선수로서 340도루를 기록하며 KBO 리그 11위의 성과를 달성했다.

 

은퇴 후 이종욱은 NC 다이노스의 2군 작전·주루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2020 시즌에는 1군 주루 코치로 승격되어 팀의 도루 기록을 꾸준히 상위권으로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종욱의 지도 아래 NC 다이노스는 2020 시즌 통합 우승을 거머쥐며, 선수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한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이종욱은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팀의 주루 파트를 책임지며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전술적인 발전을 이끌어냈다.

 

이종욱은 선수 시절 동안 뛰어난 수비력과 주루 센스, 타격 능력을 발휘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종욱의 빠른 발과 뛰어난 베이스러닝은 팬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을 남겼으며, 이종욱의 허슬 플레이는 팀의 전반적인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록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이후에는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성적이 다소 하락했지만, 이종욱은 여전히 KBO 리그에서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종욱의 야구 인생은 허슬 플레이와 함께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종욱: 연도별 성적 및 기록

 

이종욱은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기억되는 선수이며, 이종욱의 연도별 성적과 기록은 이종욱이 선수로서 남긴 업적을 잘 보여준다.

 

이종욱의 역대 기록은 2003년 현대에서의 1군 기록이 없던 시기를 시작으로, 2004년에는 군복무 중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활동했다. 이후 2006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시작한 이종욱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의 13시즌 동안 총 1,446경기에 출전해 5,081타수에서 .291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이종욱은 1,478안타, 225 2루타, 51 3루타, 41 홈런, 543 타점, 843 득점, 340 도루를 달성하며 KBO 통산 성적에서도 빼어난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07년과 2011년에는 각각 .316과 .303의 타율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2007년에는 147안타를 기록하여 리그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종욱의 통산 출루율은 .356, 장타율은 .379에 이른다.

 

이종욱은 선수로서의 여정을 통해 여러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종욱은 후배들에게 “그냥 하자, 하면 끝난다”라고 말하며, 성취를 이루기 위한 기본적인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에는 “급한 마음을 버리니 성적이 따라왔다”라고 전하며, 선수의 마음가짐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이종욱은 또한 “영원히 선수 이종욱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야구 인생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종욱은 팀워크와 개인의 조화를 강조하며, “팀 플레이도, 개인 플레이도 모두 중요한 것이 야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종욱이 코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종욱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이종욱은 코칭 과정에서도 “투수가 힘들어 할 때 타자들이 도와주고, 타자가 타격감을 놓칠 때는 투수들이 힘을 내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종욱은 현대 유니콘스, 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에서 모두 등번호 39번을 달았으며, 이는 이종욱의 상징적인 숫자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종욱의 별명인 '종박'은 태국 영화 ‘옹박’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팬들이 이종욱의 외모에서 느낀 유사성에서 비롯되었다. 이종욱의 경력은 이종욱이 단순한 선수에 그치지 않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종욱의 선수 시절의 성적과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이종욱: 야구의 열정과 우정

 

이종욱은 이종욱의 뛰어난 야구 실력과 더불어 유머러스한 별명으로도 기억된다. 특히, 이종욱은 "예소애비"라는 별명으로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이는 이종욱의 딸 예소가 “아빠, 안타 쳤어? 못 쳤어?”라고 물어보는 모습에서 유래되었으며, 팬들은 이종욱이 활약할 때마다 “예소야, 너희 아빠 안타 쳤다!”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따뜻한 소통은 이종욱의 인기 비결 중 하나였다.

 

대학 시절 이종욱은 뛰어난 연습량으로 유명했다. 후배인 손승락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종욱은 새벽까지 개인 스윙 연습에 몰두해 항상 늦게 빨래를 내놓아 같은 방을 쓰던 손승락이 애를 태웠다고 한다. 손승락도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였지만, 이종욱의 연습량은 그를 뛰어넘었다.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은 이종욱의 뛰어난 성적을 이끌어냈으며,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종욱은 경기가 좋지 않은 날에는 팬들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차로 서둘러 떠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는 팬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감정 때문이었다. 반면, 성적이 좋은 날에는 사진과 사인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으며, 특히 출근길에는 팬 서비스에 최선을 다했다.

 

이종욱은 원래 축구를 좋아했으나,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축구부가 없었던 탓에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즐기며 야구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이종욱의 열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종욱은 모교의 야구부 코치와 통화 중 야구 장비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3,000만 원어치의 야구 배트와 글러브를 기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종욱의 후배 사랑은 이종욱의 인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종욱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양준혁에 이어 두 번째로 위키백과의 ‘알찬 글’로 선정된 바 있으며, 이후 양준혁 문서가 선정 취소되면서 한국 야구 선수 중 유일한 알찬 글로 남았다. 이종욱의 타격 준비 자세는 독특한데, 타석에 들어서면서 홈플레이트를 세 번 건드리는 방식은 많은 팬들에게 인상 깊게 남았다.

 

NC 다이노스에 합류한 후에는 팀의 센터라인 수비를 확실히 안정시키며, 비록 개인 성적은 좋지 않았던 날도 있었지만, 이종욱의 리더십은 팀의 상위권 진입에 큰 기여를 했다. 이종욱은 한국시리즈에서 네 번의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은퇴할 때까지 우승 반지를 끼지 못했으나,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특히 2020년, NC의 주루코치로 재직 중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그토록 원했던 우승 반지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이종욱과 손시헌의 관계는 깊은 우정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해왔고, 각자의 길을 걸으며도 서로를 지지해왔다. 이종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되었을 때 손시헌은 그를 두산 베어스의 테스트로 안내했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우정이 더욱 깊어졌다. 손시헌은 이종욱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야수이자 최고의 1번 타자"로 칭하며, 이종욱의 은퇴 후에도 코치로서의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종욱의 선수 생활 은퇴식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손시헌의 은퇴 소식과 함께 동반 은퇴식이 계획되었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이 행사는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이다. 이종욱의 여정은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 속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이종욱의 노력과 우정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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