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범수 : 가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5. 3. 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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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는 1979년 1월 26일, 경상남도 창원군 구산면(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광산 김씨 본관을 가지고 있으며, 신체는 165.1cm에 60kg, 혈액형은 A형이고 왼손잡이다. 또한, MBTI는 INFJ이며,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남동생 김영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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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양동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양강중학교, 강서공업고등학교(정보통신과)를 거쳐 숭실대학교 글로벌미래교육원 콘서바토리(실용음악전공)를 중퇴했다. 이후 서울예술대학에서 실용음악과 전문학사를 취득하고, 중부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및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았다. 병역은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으며(2006년 4월 3일 ~ 2008년 3월 28일), 종교는 개신교(예장통합)이다.

 

1999년 1집 앨범 'A Promise'로 데뷔한 김범수는 현재 영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공식 홈페이지와 X(구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다음 카페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뛰어난 가창력과 감성적인 보이스로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가수 중 한 명이다.

 

김범수: 대한민국의 가수

 

1. 음악적 시작

 

김범수는 학창 시절 친구 허석의 전도로 다니게 된 교회에서 찬양을 하며 처음으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노래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없었고,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경험이 그의 음악 인생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후 그는 숭실대학교 평생교육원(콘서바토리) 실용음악 전공에 입학하였으나 체계적인 교육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퇴하고 서울예술대학교로 진학하였다. 이곳에서 박선주를 사사하며 음악적 기초를 탄탄히 다졌고, 동기로는 조정치, 포스티노, 주니퍼 등이 있었다.

2. 가수로서의 데뷔와 성장

 

김범수의 공식적인 첫 녹음 참여는 R.ef 4집의 수록곡 "늘"이었다. 그가 연습생으로 있던 회사가 R.ef의 소속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후 1999년, 데뷔곡 "약속"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2집 타이틀곡 "하루"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소속사의 전략에 따라 얼굴 없는 가수 콘셉트를 유지해야 했고, 음악 방송에도 출연할 수 없었다.

 

2003년 발표한 3집의 타이틀곡 "보고 싶다"는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며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 곡의 성공으로 김범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발라드 가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가슴에 지는 태양"(2004), "슬픔 활용법"(2008), "지나간다"(2010), "끝사랑"(2011) 등의 곡들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는데, 2001년 해외판 싱글 "Hello Good Bye Hello"가 뉴욕 지역 판매 차트 8위, 빌보드 핫 세일즈 5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BSK라는 예명을 사용했으며,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 활동한 탓에 미국에서는 한국 가수가 아닌 현지 가수로 오해받는 경우도 많았다.

3. 얼굴 없는 가수에서 국민 가수로

 

김범수는 데뷔 초 외모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신비주의 콘셉트를 유지해야 했다. 이는 대중들에게 '못생겨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오히려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2003년 4월, KBS2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하며 신비주의를 해소했다. 이후 그는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버스 광고까지 직접 투자하며 얼굴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그의 뛰어난 가창력이 다시금 조명받았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능력과 압도적인 보컬 실력으로 프로그램 내내 주목받았고, 그의 음악적 역량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4. 해외 활동과 사회적 기여

 

2012년 10월 20일, 김범수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겟올라잇 콘서트를 개최했으며, 이는 아시아 가수 최초로 전석 매진을 기록한 공연이었다. 또한 2014년에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콘서트를 열며 한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그는 또한 사회적 기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3년 홍명보 자선 축구대회의 테마송 "Higher"를 발표했으며, 수익금 전액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단순한 가수를 넘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5. 보컬 스타일과 음악적 특성

 

김범수는 정석적인 발성법을 구사하는 가수로 평가받는다. 그는 성대를 얇게 붙여 단단하고 알맹이 있는 소리를 내며, 고음에서도 강한 성량을 유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의 보컬 트레이너였던 박선주는 그가 비강과 인두강을 울리는 발성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김범수의 발성 스타일은 김연우, 이적, 김건모 등의 가수들과 유사한 면이 있으며, 성악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정석적인 창법을 구사한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능력을 지닌 가수로도 유명하다. 발라드뿐만 아니라 록, 재즈, 일렉트로닉, 어쿠스틱, 라틴, 댄스, 가스펠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위화감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 2019년 The Classic콘서트에서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Nessun Dorma"를 완벽한 성악 발성으로 불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6. 대표곡과 대중적 평가

 

김범수의 대표곡 중 가장 큰 히트를 기록한 곡은 단연 "보고 싶다"이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그의 음악 커리어 속에서 이를 뛰어넘는 곡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종종 아쉬운 부분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그의 독보적인 음색과 가창력은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2015년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MC를 맡으며 방송 활동의 폭을 넓혔고,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다. 2017년에는 쇼미더머니 6에서 넉살을 위한 피처링을 맡아 힙합 장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12월, 그는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1인 기획사 영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독립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MAKE20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지속하고 있으며, 한국 음악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7. 맺음말

 

김범수는 단순한 발라드 가수를 넘어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과 발성 기법은 국내 최고 수준이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능력 또한 그를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만든다. 비록 "보고 싶다"를 뛰어넘는 히트곡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평가되지만, 그의 음악적 성취와 기여는 이를 충분히 보완할 만큼 강력하다. 앞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이어가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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