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감독 등

박경수 : 前 kt wiz 1군 코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5. 6. 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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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는 1984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현재는 kt wiz에서 활약 중이다. 178cm의 키와 80kg의 체격을 가진 그는 우투우타의 2루수 및 유격수 포지션을 맡았으며, 2003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후 2015년부터 kt wiz로 이적해 꾸준히 활약해왔고, 2025년 시즌부터는 kt wiz의 1군 QC코치 및 주루코치로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병역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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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장곡은 서문탁의 《My Life》이며,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응원가는 노라조의 《우리동네 HERO》(20192024)와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20162017, 2022~2024)이다. 이 곡들은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팬들에게 각인된 응원가로,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열정적인 모습과 잘 어울린다.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형, 그리고 아내 김수진과 두 딸 박은서, 박은아가 있으며, 종교는 불교이다. 현재는 리코스포츠에이전시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며, 현역 시절부터 보여줬던 자기관리와 절제된 생활 습관으로 팀과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박경수

박경수: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이자 前 kt wiz의 1군 QC코치·주루코치

 

1. 개요

 

박경수(朴慶洙, 1984년 3월 11일 ~ )는 대한민국의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現 kt wiz의 1군 QC(Quality Control)코치 및 1루 주루코치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내야수였으며, 특히 2루수로서 오랜 기간 KBO 리그에서 활약했다. 고교 시절부터 “서울권 최대어”, “차세대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 LG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kt wiz 이적 후 비로소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팀의 창단 첫 통합우승의 주역이자 덕아웃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 KBO 준플레이오프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으며, 2025 시즌부터 kt wiz의 QC코치 및 주루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

 

성남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공수주를 두루 겸비한 야수로 이름을 알렸으며, 당시 "기본만 해도 박진만, 잘하면 이종범"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고교 시절 서울권 내 최고 수준의 야수 자원으로 평가받으며, 2003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4억 3천만원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부터 ‘제2의 유지현’, ‘유지현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LG의 미래 내야진을 이끌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프로 시절

 

LG 트윈스 시절 (2003~2013)

 

LG 트윈스 입단 후 첫해인 2003년부터 1군 무대에 데뷔하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기대했던 ‘유망주의 성공 스토리’는 쉽게 펼쳐지지 않았다. 당시 팀의 암흑기와 맞물리며 주전 경쟁과 부상, 타격 부진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팔꿈치, 어깨 탈구, 손목 인대, 햄스트링 등 크고 작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으며, 이로 인해 LG 팬들 사이에서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상징 같은 존재로 남았다. 하지만 선구안 하나만큼은 빼어났고, 공을 보는 능력으로 살아남으며, 여러 차례 기회를 부여받았다.


LG 시절의 최고 성적은 2010년의 타율 0.260, 출루율 0.381, 장타율 0.390, OPS 0.771로, 타율보다는 선구안과 장타력에 비해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2010년을 끝으로도 크게 도약하지 못했고, 2013년 공익근무요원 복무 후 2014년 복귀했지만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며 LG에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kt wiz 시절 (2015~2024)

 

2015년, FA 자격을 취득한 박경수는 당시 창단 2년차 신생팀이었던 kt wiz로 이적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kt 이적 후 그는 마침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매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2루수로 자리매김했다. 변화구 대처 능력이 뛰어나며 실투를 놓치지 않고 장타로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줬으며, 리그 2루수 중 최다 홈런(누적 160홈런, 이 중 117홈런이 kt 소속으로 기록)을 기록하며 2루수 최다 홈런 타이틀을 보유했다.

 

수비에서도 여전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kt의 내야를 지탱했다. 주 포지션은 2루수였지만 유격수, 3루수, 1루수 등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했으며, 특히 107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은 KBO 리그 2루수 부문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21년은 그의 선수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kt의 창단 첫 통합 우승에 기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특히 3차전 결승 솔로 홈런)으로 부상으로 시리즈 도중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박경수가 오랜 시간 꿈꿔온 가을야구의 무대에서 이룬 값진 결실이었다.

 

2024년, 준플레이오프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21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박경수는 진로에 대해 고민했지만, 구단과의 논의 끝에 2025년 kt wiz의 QC코치로 선임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25년 5월 13일, 팀 타선이 극도의 부진에 빠지자 이종범 코치가 타격 보강에 집중하게 되면서 박경수는 1루 주루코치로 보직을 변경해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박경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대기만성형’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성남고 시절부터 공수주를 겸비한 재능으로 주목받았으며, 강한 멘탈과 뛰어난 선구안을 무기로 삼았다. 그러나 LG 시절에는 잦은 부상과 타격 부진으로 인해 자신의 잠재력을 다 펼치지 못했다. 반면, kt wiz 이적 후에는 변화구 대처 능력을 기반으로 한 장타력과 베테랑으로서의 노련미를 발휘하며 팀의 중심 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비에서는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능력을 갖췄으며, 특히 2루수로서의 안정적인 포구와 병살 처리, 정확한 송구로 팀 내야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수준급 수비 지표를 유지하며 ‘에이징 커브’의 벽을 넘어섰다.

 

주루에서는 느린 발이 약점이었지만, 뛰어난 주루 센스로 이를 보완했으며, LG 시절에는 홈 스틸을 성공시킨 기록도 남아 있다.

5. 주요 기록 및 성적

 

박경수의 KBO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KBO 통산(20시즌):


2,043경기 / 1,396안타 / 161홈런 / 719타점 / 78도루 / 타율 .249 / 출루율 .350 / 장타율 .388 / OPS .738 / 누적 WAR 29.53

한국시리즈 MVP (2021년)

KBO 2루수 최다 홈런(160홈런)

KBO 2루수 연속 무실책 1위(107경기)

6. 여담

 

박경수는 순한 성격과 친화력으로 유명해 ‘똥개’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kt로 이적 후 주장 시절에는 ‘개주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성격은 유순하지만, 학창시절에는 군기반장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박경수의 아버지가 야구장에 온 팬에게 박경수의 사인볼을 전해주며 인연을 만들어준 일화, 아내에게 ‘2AM의 이노래’를 개사해 ‘줄 수 있는 게 쏘나타 밖에 없다’고 프로포즈했던 에피소드 등 훈훈한 가족 이야기도 유명하다.


KBO 사회공헌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LG 시절에는 팀이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릴 때 최동수가 주도한 특타에 유일하게 참여했던 성실함의 상징이었다.


오랜 기간 가을야구를 밟지 못하다가 18년차 시즌에 첫 가을야구를 경험하고, 이듬해 한국시리즈 우승과 MVP를 거머쥐었던 극적인 커리어는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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