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임동원 : 前 국정원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5. 6. 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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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선생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통일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1934년 평안북도 위원군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 13기로 임관하여 소장까지 지냈으며, 육군본부 전략기획처장 등 주요 군 보직을 역임했습니다. 군 복무 중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철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소양을 넓혔습니다. 군 전역 후에는 외무부 본부대사, 주나이지리아 및 주호주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하며 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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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경력은 외교안보연구원장, 통일원차관으로 이어지며 남북 관계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했습니다. 특히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시작으로 제25대 및 제27대 통일부 장관, 그리고 제24대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며 햇볕정책의 기틀을 마련하고 남북 관계 개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활약하며 실제적인 통일 논의를 이끌었으며,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역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임동원

임동원 선생은 현재 사단법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재단법인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고문, 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 고문,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그의 신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8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장으로 참여하는 등 여전히 대한민국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임동원: 군인, 외교관, 그리고 햇볕정책의 설계자

 

임동원 선생은 대한민국의 격동적인 현대사를 관통하며 군인, 외교관, 그리고 통일정책의 핵심 설계자로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1934년 평안북도 위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 중 월남하여 국민방위군에 잠시 몸담았다가 육군사관학교 13기로 입교했습니다. 육사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직업군인의 길을 걸으며 전방 소대장, 육군사관학교 교수사관 등을 지냈습니다. 특히 중령 시절 특전사 초대 특전교육대장, 대령 시절 합동참모본부 군사력소요과장/전략기획과장, 연대장, 준장 시절 육군본부 전략기획처장을 역임하며 군 내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합동참모본부 근무 시절에는 율곡사업의 기획 실무를 맡아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1980년 10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임동원 선생은 전두환 정부에서 주나이지리아 특명전권대사, 주호주 특명전권대사 등을 지내며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외교안보연구원장(현 국립외교원장),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통일원차관(현 통일부차관) 등을 역임하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체결을 이끌어내는 등 북방정책의 대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1992년 9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발생한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 이동복의 대통령 훈령 조작 사건의 여파로 통일원차관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평양에서 열리던 회담을 파탄내기 위해 안기부가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멋대로 조작하여 대표단에 전달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편, 군 시절 그는 이종찬등과 함께 사조직인 청죽회를 결성했으나, 문민정부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군부 내 사조직 숙청 기조에 따라 하나회와 다름없이 숙청되어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핵심 인사: 햇볕정책의 설계자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임동원 선생은 1995년 김대중전 대통령이 창립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정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남북 화해 협력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외교안보 분야의 폭넓은 시야를 높이 평가하여 삼고초려 끝에 그를 영입했다고 전해집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후, 임동원 선생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에 이어서 통일부장관을 역임하며 남북대화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2000년에는 국가정보원장으로 부임하여 그해 6월 역사적인 2000 남북정상회담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하는 등 햇볕정책의 핵심 추진자로서 활약했습니다. 당시 임동원 원장은 북한 당국이 요구했던 김일성 안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여 결국 북한 측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일화는 그의 강직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는 다시 통일부장관으로 복귀했으나, 2001년 8월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방명록' 사건으로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면서 경질되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역량과 대북 포용 정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듬해인 2002년 그를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역으로 다시 임명했습니다. 제2연평해전과 북한의 NPT 탈퇴 등 대북 포용 정책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국민의 정부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대북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3년 1월에는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통일 원로로서 현재와 미래

 

임동원 선생은 참여정부시기인 2005년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으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된 후 특별사면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았습니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원로자문단장을 맡아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깊은 통찰과 조언을 제공했습니다. 현재 그는 민주당계 진영 내부에서 정세현, 이종석등 후배 통일부장관들과 함께 대북·통일 정책에 관한 대표적인 원로 인사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회고록 <피스메이커>가 있으며, 이 책은 영어, 일본어판으로도 번역 출간되어 그의 통일 철학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2020년에는 국립외교원 2층의 외빈 접견용 공간이 그의 이름을 딴 **'임동원 외빈 접견실'**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재 국립외교원 청사가 1990년대 초 임동원 선생의 외교안보연구원장 재직 시절 건립되었고,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으로서 햇볕정책을 진두지휘한 공적을 기리기 위한 취지입니다. 이는 반기문 강의실에 이어 국립외교원에서 특정 인물의 이름을 딴 두 번째 사례로, 대한민국 외교안보통일 분야에서 임동원 선생의 위상과 공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현재 그는 사단법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재단법인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고문, 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 고문,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그의 신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임동원 선생은 군인, 외교관, 관료, 정치인을 넘나들며 대한민국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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