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은 1953년 4월 23일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바둑기사이자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의 본관은 창녕 조씨이며, 혈액형은 A형이다. 서울삼선국민학교와 신메이중학교를 졸업했으며, 목포대학교에서 체육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가족으로는 아내 정미화와 1남 2녀를 두고 있다.
조훈현은 1962년 한국기원, 1966년 일본기원에 입단하여 바둑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단급은 9단이며, '전신(戰神)'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1161회의 우승 기록으로 한국 바둑기사 중 최다 우승 횟수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세계 바둑계 최초 전관왕, 세계 최초 바둑 국제기전 그랜드슬램, 바둑기사 최다 연속 우승 기록 등 수많은 대기록을 세우며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바둑계에서의 업적 외에도 조훈현은 정치 활동도 했다.2제20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활동했으며, 현재는 무소속이다. 그는 오랜 시간 쌓아온 바둑 실력과 뛰어난 기록으로 대한민국 바둑사에 큰 획을 그었다.



조훈현은 대한민국의 바둑기사이자 전 정치인으로, 1953년 4월 23일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했다. 그는 9세 7개월의 나이에 프로에 입문하며 최연소 기록을 세웠고,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63년에는 세계 최초 국제 전화 대국에 참여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세고에 겐사쿠 9단 문하에서 수학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세고에 9단은 생전에 소수의 정예 제자만을 길렀는데, 조훈현은 우칭위엔 9단 등과 함께 그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유퀴즈에서 밝힌 회고에 따르면, 처음 만났을 때 세고에 9단이 예의상 석 점을 깔고 지도기를 두었는데도 조훈현이 이기자 바로 제자로 받아주겠다고 하여 내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기타니 미노루 9단 문하로 갈 예정이었으나 세고에 9단이 조훈현의 재능을 높이 사면서 극적으로 스승을 바꾸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일본 기원에서 데뷔하여 13세라는 일본 타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스승의 "사람이 되어야 바둑도 된다"는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성장한 조훈현은 일본기원에서 후지사와 슈코, 아베 등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바둑 기풍을 흡수하고 친목을 다졌다.



조훈현의 바둑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는 1989년 제1회 응씨배 세계 프로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우승은 당시 변방으로 취급받던 한국 바둑의 위상을 세계 바둑계에 단숨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우승으로 20세기 최후의 국가 주도 카 퍼레이드를 경험하고, 한국 바둑을 창시한 조남철 9단과 함께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1976년 공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한 조훈현은 군 복무 기간 동안 체력 보강과 함께 더욱 견고해진 실력으로 국내 바둑계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1974년 최고위전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1976년 국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1980년 서봉수 9단의 명인 타이틀까지 빼앗으며 '전관왕'을 달성했다.



이후 15년간 조훈현과 서봉수가 양강 구도를 이루는 '조-서 시대'가 펼쳐졌다. 이 시기에 조훈현은 한국기원 최초의 '입신'(9단의 별칭)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바둑은 가벼운 행마로 '제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나, 훗날 이창호 9단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스타일을 일신, '전신(戰神)'이라는 별명처럼 화력 위주의 강한 싸움을 주무기로 하는 바둑으로 변화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2002년 만 50세의 나이로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세계 최초로 세계대회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등 꾸준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조훈현은 바둑계에서의 업적 외에도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도전을 했다. 2016년 새누리당으로부터 비례대표 제의를 받아들여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가장 큰 목표는 '바둑 진흥법' 제정이었으며, 여러 난관 속에서도 이 법안이 2018년 3월 30일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숙원을 이루었다. 비록 정치 활동 중 논란에 휩싸이거나 정치적 무지를 드러내는 사건도 있었지만, 바둑계 발전에 기여하려는 그의 의지는 분명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는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를 떠나 다시 프로 바둑기사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꾸준히 대국에 참여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2021년 농심 신라면배 특별대국에서 녜웨이핑의 제자인 창하오를 비롯한 강자들을 연파하며 4전 전승을 기록했고, 2023년 영자배 바둑대사대회에서 우승하며 통산 161번째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2024년에는 제1회 농심백산수배 시니어 세계바둑 최강전에도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마샤오춘 9단을 꺾는 등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조훈현은 '조국수', '쿤켄', '조엄살'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금연초 모델을 할 정도로 지독한 골초였으나 금연에 성공한 일화도 있다. 또한 바둑계 통산 최다 타이틀(161회)과 세계 통산 최다승(1953승)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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