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또는 최배달로 잘 알려진 오야마 마스타츠는 1923년 6월 4일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태어난 무도가입니다. 일본으로 귀화한 후 '오야마 마스타츠'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1994년 4월 26일 일본 도쿄에서 향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주 최씨이며, 키는 173cm이고, 체중은 85kg입니다. 와세다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했지만 중퇴했습니다.
그의 배우자는 오야마 치야코와 홍순호이며,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습니다. 자녀로는 삼녀 오야마 키쿠코, 장남 최광범, 차남 최광수, 삼남 최광화가 있습니다.
최배달은 1953년부터 1994년까지 무도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는 극진공수도를 창시한 인물로,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 등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의 무도는 단순히 격투 기술을 넘어 정신 수련의 경지를 강조했습니다.






최영의, 또는 최배달로 잘 알려진 오야마 마스타츠는 1923년 6월 4일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난 한국계 일본인 무도가입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야마 마스타츠'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1964년 실전무도를 표방하는 극진공수도를 창시했습니다.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았다는 일화로 유명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격투 만화 '공수도 바보 일대'가 큰 인기를 끌면서 대중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의 무도는 기술을 넘어 정신 수련을 중요시했으며, 오늘날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무도가 중 한 명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최영의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소년 시절, 공부에 관심 없는 문제아였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파일럿이 되기 위해 항공정비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도와 가라테 등 다양한 무술을 수련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의 재일 한국인 사회에서 이념 갈등을 겪으며 실전 가라테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후 미군과의 잦은 싸움으로 경찰의 감시를 받자, 스승의 제안에 따라 두 차례에 걸쳐 입산수도를 하며 극한의 수련을 거쳤습니다. 1947년 전일본공수도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뒤, 기존 가라테의 약한 규율에 반발해 '도장 깨기'를 시도하며 자신의 무술을 증명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소와 싸우는 이벤트를 벌였는데, 이는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며 그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만화 '공수도 바보 일대'의 흥행으로 최영의는 일본 내에서 초유명 인사가 되었고, 그의 극진공수도는 단순한 무술 도장을 넘어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만화에 과장된 묘사가 포함되면서 '총알을 잡는' 등의 허황된 일화가 퍼져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술의 실용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말년에는 극심한 관절염에 시달렸지만, 사망 직전까지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4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무술 철학과 정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그는 한국인 부인과 일본인 부인 사이에서 각각 자녀를 둔 중혼자였으며, 한국에 있는 아들들은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극진공수도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태권도의 정착을 위해 생전에 한국 진출을 보류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바람의 파이터' 등 여러 대중문화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