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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의 신' 심권호, 우리가 몰랐던 그의 진짜 이야기 5가지

인간의 사람 2025. 12. 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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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역사상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살아있는 전설' 심권호. 그는 세계 레슬링 역사상 유일하게 두 체급을 옮겨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달성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레슬링의 신'이라 부르며 그의 완벽한 커리어를 칭송합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금빛 커리어 뒤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놀라운 반전과 인간적인 고뇌가 숨어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몰랐던 심권호의 진짜 이야기 5가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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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메달을 따자마자 체급이 사라졌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심권호는 -48kg급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모두가 그의 시대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점에 선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그의 주 체급인 -48kg급이 폐지된 것입니다.

당시 "심권호가 너무 강해서 견제하기 위해 체급을 없앴다"는 낭설이 돌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여자 레슬링 신설과 올림픽 규모 축소화가 맞물리면서 점진적으로 체급을 줄여나가는 과정에 그의 체급이 포함되었을 뿐입니다. 졸지에 그는 한 번에 6kg을 증량해 -54kg급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급격한 체중 증량으로 슬럼프에 빠졌지만,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것은 물론, 후배 하태연과의 치열한 국가대표 선발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새로운 체급마저 정복했고, 다시 한번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2. 그는 레슬링을 '훈련'이 아닌 '놀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기록을 세운 그를 사람들은 '천재'라고 불렀지만, 정작 심권호 본인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공 비결은 혹독한 훈련을 견디는 인내심이 아니라, 레슬링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는 레슬링을 땀 흘리는 '훈련'이 아닌,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재요? 저는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레슬링을 놀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미있었거든요. 놀다 보니까 어느 한순간 푹 빠져서 계속 놀았던 거예요."

레슬링이 재미있어서 계속 놀다 보니 세계 최고가 되었다는 그의 말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줍니다.

3. 전무후무한 올림픽 3연패의 꿈은 경기장 밖에서 꺾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딴 후 은퇴했던 심권호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현역 복귀를 선언합니다. 바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해 전무후무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와 공백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량은 여전했습니다. 국가대표 2차 선발전 결승까지 오르며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매트 위가 아닌 경기장 밖에서 좌절되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패배하며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것입니다. 당시 레슬링계 내부에서는 "그 정도 했으면 이제 후배에게 양보하라"는 분위기가 암암리에 존재했다는 '썰'이 파다했습니다. 훗날 그는 이 사건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제는 모든 걸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밝히며, 억울함마저 초월한 대인의 풍모를 보여주었습니다.

4. 레슬링의 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되다

은퇴 후 심권호는 방송 해설위원, 예능인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그가 돌연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평범한 직원이 된 것입니다. 그는 신도시 '보상팀'에서 근무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이후 '사회공헌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보상 논의 현장의 험악한 분위기는 그의 등장과 함께 부드럽게 풀렸고, 사회공헌 활동으로 임대주택 단지에 나타나면 '아이돌 수준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매트 위 명성이 사회 곳곳에서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5. "우리 땐 더 심했다"는 말 대신 악습을 끊었다

심권호가 운동하던 시절, 운동부의 구타와 부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그 역시 끔찍한 폭력을 겪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훗날 선배가 되었을 때,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후배들에게 절대로 대물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참아냈고, 힘을 가진 선배가 되어서는 후배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악습의 고리를 끊어냈습니다. 특히 그는 '우리 땐 더 심했다'는 말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 자체를 안타까워하며, 단순히 폭력을 대물림하지 않는 것을 넘어 그릇된 관행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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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끝나지 않은 전설의 다음 장

체급 폐지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놀이'처럼 즐기며 정점에 올랐던 천재. 하지만 경기장 밖의 역학 관계에 꿈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최고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외부 요인에 의해 좌절을 맛본 경험이,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부조리한 관행을 스스로 끊어내는 단단한 내면을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변신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의 행보는 심권호가 단지 뛰어난 운동선수를 넘어 얼마나 입체적이고 강한 인물인지 보여줍니다.

현재 그는 유소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자신의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감독직을 수락하며 그가 남긴 말은, 그의 끝나지 않은 전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미래의 유망주들을 기초부터 철저히 단련시켜야 한다. 내가 감독을 맡은 이상, 반드시 후배들이 메달을 따낼 정도로 끝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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