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일 동안,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김준혁의 퇴계 이황에 대한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오늘, 김 당선인은 공식적으로 성균관을 찾아 그의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김 당선인은 자신의 SNS를 통해 "어제 최종수 성균관장을 예방해 성균관과 유림 어른들께 누를 끼치게 된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한 "오랫동안 전해 오던 구비문학을 토대로 퇴계 이황 선생님을 소개하려던 <변방의 역사>의 일부 기술 내용으로, 결과적으로 지난 선거 기간에 성균관과 유림 어른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고 사과했습니다.
이러한 사과는 단순히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김 당선인을 가장 먼저 방문해 주고, 유림들에게 사과의 의미를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김 당선인은 퇴계 이황 선생의 위패가 안치된 비천당을 찾아 "그 뜻을 되새기며 정치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그가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반성하고, 정치활동에서의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더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과 성숙한 자세는 언제나 필수적입니다. 김 당선인의 이러한 행동은 우리에게 그것을 상기시켜줍니다.
한편,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김준혁은 그의 다채로운 경력과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1969년 3월 7일에 경기도 평택시에서 태어난 그는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또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김준혁 교수는 중앙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의 학벌은 그의 학문적 역량을 입증합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략기획위원회, 정당혁신추진위원회, 소통위원회, 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에서는 문화유산콘텐츠발전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의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은 수원시의 환경운동센터 대표와 수원시 학예연구사, 또한 수원좋은도시포럼 연구원장 등의 활동을 통해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더불어, 김준혁 교수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중앙사학회의 총무이사로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국사 전공자로서, 나는 역사 속에서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과거의 흐름을 읽어내는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내가 그간에 연구한 것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평택에서의 시절은 미군의 영향 아래에서 보냈습니다. 미군 부대가 있는 주변에서 자란 경험은 제게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근무지가 자주 옮겨지며 저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백령도에서의 생활은 전혀 다른 섬의 문화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역사와 문학에 대한 호기심은 어린 시절부터 저를 이끌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저는 책을 통해 세계를 넓혀가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지식을 찾았습니다. 수원에서의 학창 시절은 정조 임금과 수원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키워주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 운동권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더욱 깊게 키웠습니다. 특히 학생운동을 통해 많은 동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대학 졸업 후에는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와 시민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민운동을 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정조 임금의 삶과 업적입니다. 정조 임금은 조선 후기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그의 통치 시기에는 많은 변화와 혁신이 있었습니다. 특히 수원화성과 같은 건축물은 그의 지혜와 통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나는 정조 임금의 삶과 행적을 연구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보다 깊은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대학원에서의 공부와 연구는 나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에서의 수업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곳에서 범우고라는 책을 통해 정조 임금의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나는 학계에 끼워진 새로운 시각과 연구를 통해 정조 임금의 의미와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정치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조 임금의 정신과 가치를 현대 사회에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수원과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조 임금의 유산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
정조시대의 흔적을 찾아가며, 나는 수원시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나갔습니다. 내가 임명된 수원시 학예사로서, 화성 복원과 관련된 일에 전념했습니다. 이를 통해 행궁의 옛 영광을 되찾고, 주변 지역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기여했습니다.
내가 학예사로 일하면서 주도한 것 중 하나는 <무예 24기> 상설 공연입니다. 이를 통해 전통 예술의 장을 만들고, 수원의 문화를 홍보하는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체계화하여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이외에도 행궁 복원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현대로 되살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문화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나는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공직생활은 항상 원활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움과 논란 속에서도 나는 내 실력으로 인정받으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정치 무대에서도 나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성공을 거두며 국회 입성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나는 수원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이며, 정조 임금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와 사회를 더욱 번영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조선의 정조 임금을 연구하고 그가 건설한 수원화성을 알리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대중 강의를 통해 깊은 지식을 전하고, 정조의 리더십을 표방하는 책인 '리더라면 정조처럼'으로 유명하다.
교육가 가문에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어린 시절 파장초등학교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를 목격하며 어린이들의 안전과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신영복 선생과의 인연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범민족대회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을 접하고 그의 사상에 공감하며, '더불어숲학교'에 참여하며 더욱 깊은 우정을 쌓았다.
정치적으로는 더불어시민당의 공천관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정당혁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수원시의 발전을 위해 최근 '수원을 앞으로 수원은 앞으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며 시민들과의 소통과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인 길은 항상 순탄하지 않았다. 지방선거에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도 그는 많은 후보들을 누르고 결선까지 진출했으나, 결국 이재준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과 노력은 더불어시민당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