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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 -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동 중인 그에 대해 알아보자.Araboza

인간의 사람 2024. 4.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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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 중인 신태용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신태용으로, 1969년 5월 26일에 태어났으며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동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신체 사이즈는 키 175cm, 몸무게 72kg, 혈액형은 A형입니다. 축구 선수로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선수 시절에는 천안-성남 일화 천마와 퀸즈랜드 로어 FC에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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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서의 경력은 2009년에 성남 일화 천마에서 감독 대행으로 시작하여 이후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동 팀의 감독을 맡았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도 2014년에 감독 대행으로 활동하였으며,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수석 코치로 활동했습니다. 이후에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과 U-20 대표팀을 지휘하였으며, 2017년부터 2018년까지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축구 경험과 지식은 해설자로서도 활용되어 JTBC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배우자인 차영주씨와 아들 신재원, 신재혁씨가 있습니다. 종교는 불교를 믿으며, 학력은 대구공업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를 거쳐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주발은 오른발이며 등번호는 7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레전드: 선수에서 감독으로

 

대한민국 축구계의 한 획을 그은 선수 출신 감독, 신태용. 그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도자로서 기록에 이름을 남겼다. 그 후 2020년부터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성남 일화 천마에서 활약한 그는 K리그 최초로 60-60 클럽을 달성한 스타였으며,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린다. 은퇴 이후 감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성남 일화 감독으로 출발하여 여러 성과를 이뤘다. 이를 통해 그의 관운(官運)이 상당히 좋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감독 경력은 다양한 성과와 경험을 쌓았다. 2015 아시안컵 준우승,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성과 등이 그것이다. 그는 뛰어난 감독실력으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을 이끌어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경기에서는 약진하다가도 아쉽게 조기 탈락했다. 이에 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파울루 벤투를 선임했다.

 

신태용 감독은 그의 감독생활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계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 그의 경험과 역량은 이제 인도네시아 축구에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다.

신태용: K리그의 전설

 

신태용은 K리그에 남긴 발자취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현역 시절은 윤상철이나 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이자 K리그의 레전드로 기억된다. 성남 일화 천마에서 활약한 그는 15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며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았다.

 

그는 1992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은 후,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당시의 일화 감독은 박종환으로, 그는 박남열과의 호화 콤비로 맹활약했다.

 

1995년에는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하고, 리그 MVP도 수상했다. 또한, 1995-96 시즌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화 천마는 명문 구단으로 부상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성남 일화 천마는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하여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그의 활약으로 성남은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되기도 했다.

 

2003년에는 K리그 최초로 60득점 60도움을 기록하며 두 번의 명예를 동시에 안았다. 이는 그가 미드필더로서의 뛰어난 공격력과 지도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태용은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여덟 명 중 한 명으로,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100골에 도달한 선수 중 하나이다. 그의 통산 기록은 401경기 99골 68도움으로, K리그의 레전드로 기억될 만하다.

 

 

신태용: 코치로의 새로운 도전

 

2005년, 신태용은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했다. 그러나 단 한 경기를 치른 후 발목 부상으로 인해 그해 9월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곧바로 퀸즐랜드 로어 FC의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의 감독 시절에는 알게 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를 성남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오그네노브스키를 선발 수비수 겸 주장으로 중용했다.

 

2006년, 파리나 감독이 퀸즐랜드에 새로 부임했을 때, 언어 문제와 지도 방향에 이견이 있었지만 현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2016년 리우 올림픽 16강 조별 리그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파리나 감독이 피지 축구 올림픽 대표팀을 맡았고, 그 결과 한국이 8-0으로 대승했다.

 

신태용의 코칭 경력은 그의 현역 시절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이었다. 그는 선수로서의 지식과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퀸즐랜드 로어 FC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끌었다. 그의 코칭은 성남 감독으로의 재임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경험이었다.

신태용: 대표팀에서의 아쉬움

 

신태용은 탁월한 K리그 선수로서 레전드급의 위상을 구축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그의 활약이 미흡한 측면이 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하며 단 3골을 기록한 것은 그가 대표팀에서의 성과가 그리 빛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1996 AFC 아시안컵에서의 8강 탈락 후, 그의 대표팀 명단에 이름이 더 이상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차범근 감독 시절에도 뽑혔으나 월드컵 최종예선부터는 제외되었고, 그 후 허정무와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에도 대표팀으로의 복귀를 이루지 못했다. 이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한국 축구의 플레이 메이커로 고정되어 있던 홍명보와의 궁합 문제도 대표팀에서의 출전을 제한한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신태용은 뛰어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기본기나 퍼스트 터치 등의 부분에서 논란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태용은 대표팀에서의 활약에서는 그의 K리그에서의 위상과는 다른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축구 인생은 대표팀에서의 성과보다도 그가 K리그에서 세운 탁월한 기록과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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