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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 대한민국 제19·20·22대 국회의원. 그녀에 대해 알아보자.Araboza

시사맨 2024. 5.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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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는 대한민국의 기자, 정치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72년 11월 8일에 출생한 그는 현재 51세로, 부산직할시 영도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벽진 이씨로, 현재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거주하며, 새터마을죽전힐스테이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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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적으로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불어불문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노스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경제법무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이언주는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제29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정치 경력으로는 제19대, 제20대, 그리고 현재 제22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민주통합당,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 다양한 정당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외에도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 르노삼성자동차 법무팀장, S-OIL 법무총괄 상무 등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언주는 사회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대한여성변호사회 상임이사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학에서 객원교수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신명 레아라는 성공회 신자이며, 배우자로는 최원재씨와 아들 최민성씨가 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용인시 정을 지역구로 하는 제2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언주는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으로, 제19대와 제20대 경기 광명시 을 지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정치인이다.

 

1972년 부산 출신으로, 어린 시절 싱가포르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글로벌 문화를 경험했다. 대학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대학생 시절에는 사회상황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선배들의 영향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알바로 생계를 이어나가면서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위기를 넘겼다. 이후 2000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으며, 국제거래와 투자전문 변호사로 활약했다.

 

그 후 르노삼성자동차의 법무팀장으로 임명되어 기업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또한, 200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의 한국 합작회사 에스오일의 법무총괄 상무로 임명되어 국내 주요 대기업 임원 중에서 가장 어린 인물로 알려졌다.

정치적으로는 2012년 제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선출되어 경기 광명시 을 지역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어 2016년 제20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재선되었다. 그러나 2017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2020년에는 미래통합당 창당에 참여하여 보수로 전향하였다.

 

그의 정치 경력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하여 부산 남구 을에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의 박재호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한동안 국민의힘 소속이었으나 2024년 1월 18일에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으며, 이후 2024년 2월 16일에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여 약 7년 만에 본래 정당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22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용인시 정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로써 3선 고지에 오르게 되었다.

 

이언주는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시절을 통해 꾸준한 정치 활동을 펼쳤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은 당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중도 우파 성향의 전문직 여성인 이언주를 전격 영입하여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자 했다. 이 양성된 정치 전문가를 영입하는 계획은 한명숙 대표 체제의 당에서 새로운 전략으로 섰다. 또한, 이언주가 당시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관하여 조언을 받았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영향력도 컸다.

 

이러한 전략은 당내에서도 지지를 얻었고, 이언주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전략 공천을 받아 경기도 광명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손학규의 후방 지원을 받아 당선되었으며, 이후에는 민주당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당내에서 젊은 차세대 여성 정치인으로 주목받게 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재선을 확보하고,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조직본부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불편한 관계와 당 내 정치적 이견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게 되었다.

 

이언주는 스스로를 김종인 계파로 정체화하지는 않았지만, 당내에서 친문계를 강력히 비판하며 탈당을 결정한 바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이견으로 인해 그는 당 내에서 이슈가 되었고, 이후 2024년에 더불어민주당에 재입당하여 용인시 정 지역구에서 후보로 출마하여 세 번째 고지에 오르게 되었다.

 

2017년 4월 5일, 이언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하며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이는 그가 초선 의원 시절부터 당내에서 주류와는 다른 입장을 취해왔고, 주류 계파와의 접점이 거의 없었으며 강경한 우파 성향을 보였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때의 결정은 개인적인 신념과 안철수 후보가 제시한 새로운 정치 모델에 대한 기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안철수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으며, 당시 안철수의 새로운 정치 이념에 대한 기대와 믿음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안철수는 CEO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고, 이언주 본인 또한 S-OIL 상무로 일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안철수의 경제적인 성향과 사고방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의 실망스러운 행보로 인해 이언주는 내부에서도 공분을 사게 되었다. 그녀는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여 김동철 원내대표의 선출에 따라 원내 수석부대표로 선임되었다.

 

또한,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에서는 후보자들 중 꼴찌를 기록하며 3.9%의 득표율을 받았다. 그 후, 2017년 9월에는 정운천 의원 등과 함께 '국민통합포럼'을 창설하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이언주 의원의 바른미래당 시절에 대해 조심스럽게 살펴보겠습니다.

 

바른미래당 출범 이후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언주 의원은 국민의당 전당대회 때 러닝메이트로 참여한 김관영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은 우파로 알려져 있었고, 바른미래당 가입 이후에도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 및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의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며 노동 문제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외에도 문재인 정부의 NAP(노동시간 단축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내세우고,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친안계로 분류되었으나 안철수를 비판하며 친안계와의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2018년부터는 우파 성향이 강한 유튜브 채널 등에 출연하여 보수적인 발언을 펼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박정희를 극찬하는 발언을 통해 보수의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은 당 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당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이언주에 대한 징계 절차가 밟혔고, 그 결과로 바른미래당의 당원권이 1년 정지되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 후 이언주 의원은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행보는 정치적인 혼란을 야기시키며 당 내부에서도 갈등을 촉발시켰습니다. 이에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은 이언주의 탈당을 유감으로 여기며 당을 떠날 때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2019년 4월 23일, 이언주 의원은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입당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여러 방면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그의 행보는 정치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언주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인 이념과 입장을 재정립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언주의 정치적 기복

 

2019년 11월 12일, 이언주 의원은 '자유와 민주 4.0'이란 이름의 신당을 창당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미래를향한전진 4.0'으로 명명되었고, 2020년 1월 19일에는 공식적으로 창당되었다. 신당에 참여한 김원성과 양주상은 언론에서 이언주계 정치인으로 불렸다.

 

그 후, 2020년 2월 17일에는 보수대통합을 명분으로 미래를향한전진 4.0을 이끌고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는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 지역구 공천을 노렸으나 지역구 현역 의원인 김무성에게 견제당했다. 결국 다른 지역에서 공천을 받았지만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에서 엇갈리는 결과를 보였고, 미래통합당에서의 영향력이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

 

2020년 4월 23일,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재보궐선거를 위해 부산시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후보 경선에서 3위로 물러났다.

 

그 후, 2021년 10월 12일에는 홍준표 예비후보의 희망캠프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위촉되었고, 국민의힘 소속으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2024년 1월 18일, 지속적인 정부여당과의 갈등으로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이후 이재명 대표로부터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을 권유 받았고, 2024년 2월 16일에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을 선언했다.

 

이렇듯 이언주는 정치적으로 여러 번의 계파 이동과 당적 변경을 거듭하며 그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에 대응하며, 그녀의 정치적 기복은 그 자체로 주목할만한 소재가 될 것이다.

 

이언주의 정치적 변화와 그녀의 친박에 대한 평가는 현 정치 상황에서 많은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그녀가 이후 바른미래당과 국민의힘을 거치며 보수 진영으로 이동한 것은 그녀의 정치적 스탠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합니다. 이전에는 탄핵 심판 중인 헌법재판관들에게 박근혜 탄핵을 강력히 지지하며 안티 박근혜 성향을 드러냈지만, 현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강경 보수 세력에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정치적 변화는 명백합니다.

친박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김문수와 같이 완전한 강경친박으로의 전환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경우파 활동을 통해 온건 친박 세력과 가까워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20년에는 바른미래당의 유승민과 안철수를 비판하면서 강경한 친박 행보를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녀의 정치적 색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언주의 경제적 견해는 자유시장 경제를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자유경제 체제를 수호하고, 경쟁을 공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보수'를 주창하며, 기존 기득권세력을 교체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녀의 강경 보수 시절은 홍준표와의 비교를 통해 명확히 드러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던 그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칭찬하고, 문재인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검찰독재나 윤석열 탄핵을 언급하며 강경 반윤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더불어민주당에 다시 복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언주의 정치적 변화와 관련된 논란은 그녀의 정치적 입지와 태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그녀의 삭발 행위와 이에 대한 여론의 엇갈림은 그녀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언주의 정치적 진화와 관련된 논란은 그녀가 현재의 정치적 입지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한 깊은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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