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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 대한민국 제21대 후반기 국회의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Araboza

시사맨 2024. 5. 23.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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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는 대한민국의 제21대 국회의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2022년 7월 4일부터 재임 중입니다. 그는 경기도 연백군 연안읍 출신으로, 현재는 황해남도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김진표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 거주하며, 서울 강남구 도곡동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에 거주지를 두고 있습니다. 그의 본관은 김녕 김씨로, 학력으로는 수원 서호국민학교, 수원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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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의 경력은 매우 다채롭습니다. 그는 제1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재정경제부차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에는 제11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과 제48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을 지내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국회에서도 다선 의원으로 활동하며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왔으며,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지방재정특별위원장, 국회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장 등 중요한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김진표는 국회에서의 입법 활동 외에도 여러 사회적 이슈와 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왔습니다. 특히 그는 국정기획자문위원장,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국정 운영과 외교 문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그의 개인적인 삶에서는 신중희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개신교 침례회를 신앙으로 삼고 있습니다. 김진표는 그동안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국회: 제21대 후반기 국회의장 김진표

김진표는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이자,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서 국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정치적 여정은 경기도 수원 지역구에서 5선에 성공한 것을 포함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부총리, 장관, 차관 등 여러 고위직을 역임하며 국가 경제정책에 깊이 관여한 경력을 통해 두드러집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김진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에게 중용되었으며, 각 정부에서 다양한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제 정책은 종종 진보 성향 인사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IMF 이후 민주당 정부를 경제적으로 우클릭시킨 주범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법인세 인하와 노동유연성 강화 등 정책은 진보 진영 내에서 분란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로 인해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이는 진보 정당과 민주당 내부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김진표는 동성애나 낙태에 대해 부정적인 문화적 보수주의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표는 진성 민주당원으로서 단 한 번도 민주당계 정당을 떠난 적이 없는 일관된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2014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을 때 진행된 후보 성향 조사에서도 그는 진보 5~보수 5 척도 중 진보 1로 평가받았습니다. 김진표는 오랜 정치 경력과 경제 정책 주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국회를 이끌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김진표: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국회

 

김진표 국회의장은 경제관료 출신의 정치인으로, 제21대 국회 후반기 의장직을 맡아 국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경력은 다양한 고위직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으며, 그가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197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1973년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면서 그의 공직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재무부와 재정경제부에서 주요 세제 및 조세 정책을 담당하며, 2001년 재정경제부차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김진표는 참여정부에서 제11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역임하며, 경제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정책은 법인세 인하와 노동유연성 강화 등으로 진보 진영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으나, 경제 성장과 안정에 기여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으로서 교육 정책의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경제와 교육, 두 분야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김진표는 경기 수원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하며 지역구 주민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국방위원회, 지식경제위원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등 여러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특히 국회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김진표 의장은 그의 폭넓은 경험과 깊이 있는 정책적 식견을 바탕으로, 국회의 신뢰와 역량을 강화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국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김진표: 생애와 경력

 

김진표는 1947년 5월 4일 경기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4 후퇴 당시 아버지의 손을 잡고 피난길에 올라 경기도 수원시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이산가족이 되어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다. 수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진표는 매산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서호국민학교로 전학해 1960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수원중학교와 서울의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하여 1971년에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김진표는 대학 졸업 후 공직에 입문하여 1973년 제13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그의 공직 생활은 대전지방국세청에서 소비세과장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국세청 세무공무원교육원 교관을 거쳐 재무부 세제국에서 근무했다. 이 시기에는 김영룡 전 국방부차관, 서영택 전 국세청장, 하동선 전 경제기획원 차관보 등과 함께 전두환 정부가 추진한 세제 개혁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1983년에는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강원도 영월군을 관할하는 영월세무서장을 맡았다.

 

공직 생활 동안 김진표는 다양한 고위직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1988년에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1년 재정경제부차관으로 임명된 후 2002년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2002년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2003년에는 참여정부의 제11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으로 임명되어 경제정책을 총괄하였으며, 이후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국회의원,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국정 운영에 기여하였다. 2022년에는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어 국회를 이끌고 있다.

 김진표: 귀국 후 재무부 경력

 

김진표는 1988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후 재무부 세제국에서 과장 직위를 맡았다. 그의 경력은 1992년 공직 입문 19년 만에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면서 한국조세연구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진표의 관료 인생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진표는 1993년 재무부 본부로 복귀해 세제실 심의관을 맡았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금융실명제 시행을 추진할 때 실무를 담당했다. 이후 그는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을 역임하면서 부동산 실명제 추진단 부단장을 겸임했다. 1995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자 대외경제국 심의관을 맡았고, 1996년에는 이사관(2급)으로 승진해 공보관을 맡았다. 이 시기에는 나웅배와 한승수 재정경제원장관의 비서실장과 은행보험심의관을 역임하였고, 1997년 한보 사태를 수습하는 업무를 맡았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김진표는 1998년 3월 인사에서 세제실 재산소비세심의관을 맡게 되었으며, 이후 세제총괄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8년 연말에는 공직 입문 25년 만에 관리관(1급)으로 승진했고, 2000년 10월 ASEM 정상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된 ASEM 준비기획단 사업추진본부장을 맡았다. 1999년 1월에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으로 임명되어 정부의 조세 실무를 총괄하였다.

 

김진표는 2001년 4월 1일 제8대 재정경제부차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차관직에 외청장을 거치지 않고 임명된 이례적인 사례로, 김대중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2002년 1월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같은 해 7월에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에게 김진표를 중용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김진표는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역임했다. 이 시기에 그는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를 수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경력은 경제와 재정 분야에서의 깊은 경험과 폭넓은 전문성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중요한 경제 정책을 주도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김진표: 정치 활동

 

김진표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을 역임하며 교육 정책과 인적 자원 개발에 힘썼다.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아 당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면서 당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여 출마하지 못했다.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의원직을 유지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 5월, 김진표는 정세균 등의 지원을 받아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같은 해 12월까지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 내에서 다양한 위원회 활동을 통해 입법 활동에 기여했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경선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남경필 후보에게 단 1% 차이로 밀려 낙선했다. 2014년 7월 열린 재보궐선거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박광온 후보를 지원하여 당선되도록 도왔다.

 

2015년 3월, 김진표는 문재인 당대표 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아 당의 정책 방향 설정과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대한민국 정당사상 최초로 열린 정책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아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능한 경제정당, 정책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새롭게 신설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원래의 지역구는 박광온이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가져갔기 때문에, 김진표는 새로운 선거구로 옮겨 출마하였다.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선거 공동대책위원장과 일자리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으며,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위원장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설계하고 발표하였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 출마를 고려했으나, 불출마를 선언하고 전해철 후보를 지지하였다. 2018년 7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예비경선 컷오프를 통과해 이해찬, 송영길과 경쟁했으나 최종적으로 3위로 낙선하였다. 2018년 9월, 이해찬 당대표에 의해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자문기구인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2019년 11월부터 김진표는 문재인 정부의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보 진영 내에서 그의 지명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그는 직접 고사의 의사를 밝혔다. 대신 정세균 전 의장이 국무총리로 지명되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김진표는 단수공천을 받아 5선에 도전해 무난히 당선되었다. 제21대 국회에서 최고령 당선자로서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박병석 의원이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김진표는 국회의원의 근무 환경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의원실에 월 1회 주 4일 근무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연차를 모두 소모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김진표는 정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당내외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의 경력은 경제, 교육,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김진표: 새로운 역할과 부동산 정책 입장

 

2020년, 이낙연 민주당 대표 체제 하에서 김진표는 당 대표 직속 국가경제자문회의 초대 의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그의 경제적 전문성과 경험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김진표는 이 역할을 통해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 현안을 다루기 시작했다.

 

김진표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 "부동산시장 안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장에 공급 물량을 늘려야 한다"며,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시점에서 민주당 내에서는 투기세력을 잡아야 한다는 규제파와 시장친화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공급확대파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김진표는 공급확대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목소리를 냈다. 이낙연 체제에서 공급확대파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 2021년 3월 9일 당대표직에서 조기 사퇴한 후, 후임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전 대표 체제에서도 김진표는 부동산 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어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는 그의 정책적 입지와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김진표는 이번 국회의원 임기가 마지막일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원혜영, 이해찬, 진영 등 주요 인사들이 불출마 선언을 통해 정계에서 은퇴한 상황이다. 김진표 또한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당선되어 임기를 마친 후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여겨진다.

 국회의장 선출과 후반기 활동

 

2022년 5월 24일, 김진표는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공식 선출되었다. 2022년 7월 4일, 본회의에서 총 투표수 275표 중 255표를 얻어 제21대 국회의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1979년 이후 43년 만에 3부 요인과 국무총리가 모두 직업 공무원 출신인 상황이 되었다.

 

김진표는 국회의장 수락 연설에서 “국회 개원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고, 국민의 명령이다. 여야 지도부는 국민의 명령을 지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며, 민생경제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이후 김영주 의원과 정진석 의원을 국회 부의장으로 선출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7월 6일, 김진표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를 국회사무총장으로 내정했다. 이어서 8월 4일, 낸시 펠로시 미 연방 하원의장과 양자 회담을 가지며, 한미동맹 70주년 축하결의안 채택을 제안하고, 첨단기술-공급망 협력, 북핵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국제 활동과 법안 발의

 

펠로시 의장과의 회담 후, 김진표는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순방하며 폴란드의 대규모 한국산 방산 장비 도입 계약 및 폴란드 신공항 사업 등에 대한 협력을 논의했다. 2023년 7월 28일에는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하여 12월 28일 수정 가결되었다.

 

2023년 9월 21일, 김진표는 국회의장으로서 이재명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과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안 표결을 관리 및 진행하였다. 표결 전 고성 및 항의가 이어지자 의원들을 제지하며 차분한 진행을 유도했다.

 

 정계 은퇴와 후속 계획

 

김진표는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계 은퇴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지역구인 수원시 무 지역구는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물려받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4월 제22대 총선 직후에는 법제사법위원회를 법제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분리하여 행정처리를 원활하게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그의 마지막 정치개혁 시도로 여겨지며, 정치계와 당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김진표는 그의 경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다양한 정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경제 및 부동산 정책에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회의장으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의 은퇴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김진표: 경제정책에서의 업적과 정치적 신뢰

 

김진표는 대한민국 경제정책과 정치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경력은 문민정부부터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최근의 민주당 지도부까지 다양하다. 다음은 그의 주요 업적과 정치적 신뢰에 관한 내용이다.

 

 금융실명제 도입과 경제정책 기여

문민정부 시절, 김진표는 금융실명제 도입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비서실장도 모르게 비밀리에 추진한 금융실명제는 홍재형 등과 함께 관료로서 실무를 담당한 김진표의 노력 덕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금융시스템의 투명성과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국민의정부 시절, 김진표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으로서 부동산 실명제 도입의 실무를 총괄했다. 금융실명제에 이어 실명제 도입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경제정책의 일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2002년 재정경제부 차관으로서 대한민국 경제성장률 10.1% 달성에 기여하며 그의 경제정책 역량을 입증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활약

참여정부 시절 김진표는 경제부총리로서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를 1년 만에 수습했다. 이는 국민의정부 시절 경기부양 목적으로 과다발급된 신용카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또한, 주5일제 도입을 추진하여 노동 환경 개선에 기여했다.

 

교육부총리 재임 시절, 김진표는 NEIS(학교정보화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는 교육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립학교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 중요한 업적이다.

 정치적 신뢰와 인간관계

김진표는 온화한 성품으로 동료 의원들과의 관계가 좋으며, 팬들에게는 "진표살"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고소, 고발을 잘 하지 않는 성격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김진표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매우 친밀한 사이로, 2019년 정세균 전 의장이 김진표 의원을 총리로 추천했으나, 김진표 의원이 총리직을 고사하자 정세균 전 의장을 대신 추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정세균 전 의장이 총리로 임명되었다.

 

민주당 원내대표 재직 시절, 김진표는 노영민을 원내부대표, 홍영표를 원내대변인으로 임명하여 그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게 신뢰받는 인물로, 정세균, 홍영표, 노영민, 유시민 등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반대 성향으로 보일 수 있는 추미애도 당대표 시절 김진표를 당 정책위원회의 의장으로 임명했으며, 이해찬 역시 그를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임명했다. 2012년에는 김진표를 격렬하게 비판한 인사들에 대해 이해찬이 김진표 의원을 엄호하며 개혁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진표는 대한민국의 경제정책과 정치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물로, 그의 업적과 정치적 신뢰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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