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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 제20-22대 국회의원, 제52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인간의 사람 2024. 6. 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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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의원은 대한민국의 제52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제20대부터 제22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다. 1967년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난 황희는 현재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고 있다. 학력으로는 숭실대학교 경제학 학사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도시공학 박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정치 경력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비서에서 시작하여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대통령비서실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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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의원은 제52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2021년 2월 11일부터 2022년 5월 13일까지 문화, 체육, 관광 분야에서의 정책을 주도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문화예술계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제22대 국회의원으로서 더불어민주당 양천구 갑 지역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국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한, 황희 의원은 여러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주거복지, 교육,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방향을 이끌었다. 황희의 지속적인 정치적 활동은 지역구인 서울 양천구 갑 주민들에게 큰 신뢰를 받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황희의 종교는 천주교로,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이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황희 의원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황희: 대한민국의 제52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자 제21대 국회의원

 

황희 의원은 대한민국의 제52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고 현재 제21대 국회의원으로 서울특별시 양천구 갑을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부동산 및 도시 분야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황희는, 해당 분야에서의 깊은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황희 의원의 경력은 그를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생애

 

황희 의원은 1967년 7월 28일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강원도 삼척군 황지읍(현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황지동)으로 이주하여 황지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3학년까지 다녔다. 이후 서울특별시 양천구로 이주하여 서울목동초등학교, 장훈중학교, 강서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 진학 후에는 숭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공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통해 도시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8년 4월 18일, 황희 의원은 육군에 독자 사유로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육군본부에서 소총수로 복무하였고, 1988년 10월 17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어 병역을 마쳤다. 이러한 군 복무 경험은 황희의 인생과 정치 경력에 있어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정치 경력

 

황희 의원의 정치 경력은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서로 시작되었다. 2002년에는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행정관을 지냈으며,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정무, 홍보 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민주당 중앙당 상근 부대변인으로 활동하였고,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선대위 정책특보를 맡아 활동하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그 후,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대선 선대위 민주캠프 기획조정팀장으로 참여하였다. 2015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였다. 황희 의원의 이러한 정치적 여정은 그를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으며, 황희의 전문성과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황희: 제20-21대 국회의원

 

황희 의원은 제20대와 제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서울특별시 양천구 갑 선거구를 대표했다. 황희의 당선은 여러모로 주목받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새누리당 이기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는 민주당계 후보로서 양천구 갑 지역에서 1988년 이후 처음으로 당선된 사례로, 황희 의원의 정치 경력에서 중요한 이정표였다. 목동 행복주택 사업에 대한 주민 반감과 황희의 지역 토박이 및 도시공학 박사 출신이라는 점이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황희 의원은 대미 특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협력을 통해 목동아파트 1~3단지를 2종 일반주거구역에서 3종 일반주거구역으로 변경, 용적률을 200%에서 250%로 상향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보수적인 지역 정치 성향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황희 의원은 지난 4년간의 지역 현안 해결 노력으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21대 국회의원으로서 황희 의원은 국방위 여당 간사로 활동하였다. 2020년 6월 목동아파트 6단지의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는 황희의 지역구에 큰 호재였으나, 이후 9단지와 11단지의 안전진단 탈락으로 인해 주민들의 실망이 컸다. 2021년 재보궐선거와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양천구에서 승리하였고, 이는 황희 의원의 정치적 도전에 큰 부담을 주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 후보들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승리하였다. 황희 의원의 향후 정치적 행보는 이와 같은 지역구의 보수적 표심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달려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 의원은 2021년 1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후, 황희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강한 비판을 받았지만, 2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보고서가 통과되면서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되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29번째 사례였다. 그리하여 황희 의원은 2월 11일부터 공식적으로 장관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황희 장관은 재임 중 2020 도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며 대한민국의 스포츠 외교를 이끌었다. 2022년 석가탄신일에는 조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며 문화 행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황희의 장관 재임 기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는 여러 국제 행사와 국가 주요 문화 행사를 주도하며 국내외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황희 의원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양천 갑에 출마하였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공천된 황희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구자룡 후보와 맞붙게 되었다. 선거 초반에는 황희 의원의 우세가 예상되었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출구조사에서는 57대 42로 황희 의원이 우세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개표 중후반까지 구자룡 후보가 앞서 나갔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표 차이가 점점 좁혀졌고, 개표율이 84%에 도달했을 때는 두 후보 간의 표 차이가 60여 표로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황희 의원이 후반에 역전하여 최종적으로 약 2000여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로써 황희는 정치적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며, 양천구 갑 지역구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황희 의원의 이번 당선은 황희의 정치적 역량과 지역구 주민들의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희: 조선시대 명재상과 동명이인, 현대 정치에서의 발자취

 

황희 의원은 조선시대 명재상인 황희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선거 출마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황희는 이 이름 덕분에 고령층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언급하며, 이름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부정부패를 철저히 경계하며 열심히 지역구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후 여러 의혹이 제기되며, 명재상 황희와는 다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정치적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그에게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황희 의원은 국민학교 저학년 때 잠시 강원도 태백시에서 생활한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목동초등학교, 장훈중학교, 강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황희는 모교인 강서고등학교에서 초빙 강연을 하며 청와대 근무 시절의 일화를 학생들에게 소개한 바 있다. 특히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건널 것을 제안한 이야기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제안은 실제로 받아들여져 노 전 대통령은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건넜다. 이로 인해 실무진들은 포상을 받았으나, 황희 의원 본인은 청와대를 떠난 이후라 포상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정치적 경력 중, 황희 의원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또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자신의 출마지를 두고 고심할 때, 황희 의원은 그를 비판하면서도 반기는 입장을 보였다. 황희는 황교안을 향해 "당선 가능성이 있는 험지를 고른다는 것은 뜨거운 아이스 커피 같은 소리"라고 비판하며, 자신이 양천구 갑을 보수 정당의 험지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황희 의원은 도시공학 박사 출신으로, 목동아파트가 있는 지역구에서 재건축 문제와 부동산 현안에 대해 정부 여당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황희는 재건축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종부세 인하와 서울에 80층짜리 아파트 건설을 주장했다. 또한 공공임대주택 의무를 강조하는 등 정부 기조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 중, 황희 의원은 김규철을 게임물관리위원회장으로 임명하며 게임계의 다양한 논란에 직면했다. 특히 게임 질병화 논란과 관련된 인물들을 위원 자리에 위임하며,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황희 의원의 이러한 결정들은 황희가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정책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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