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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선 : 대한민국 제21·22대 국회의원.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4. 6. 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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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선 의원은 1958년 2월 12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나 연안 이씨 가문에 속한다. 학창 시절을 전남 여수와 광주에서 보낸 이용선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토목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군 복무를 육군 제15보병사단 병장으로 마친 후, 이용선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에서 활동하며 사회적 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한 이용선은 시민통합당 대표,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경력을 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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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선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2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어 2018년 6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재임했다. 이 기간 동안 이용선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고, 다양한 시민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며 외교 및 통일 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대외협력위원장과 전국대의원대회 부의장을 맡아 당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한 이용선 의원은 양천구 을 지역의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용선의 정치 철학은 시민과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용선 의원은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용선: 대한민국의 시민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용선은 1958년 2월 12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1970년 여수동국민학교, 1973년 여수중학교, 1976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5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용선의 학문적 배경은 이용선이 앞으로 펼칠 활동에 기초를 제공했다.

 

1980년 유신독재 시절, 이용선은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광주학살의 실상을 서울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돌리다 1980년 5월 23일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지만, 8월 공소 취소로 석방되었다. 이후 이용선은 1980년 9월 4일 강제징집되어 육군에 입대, 제15보병사단에서 포병으로 복무하였다. 1983년 5월 12일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후, 이용선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4년 대우자동차 인천공장에 취업한 이용선은 노동조합정상화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노조의 독재를 규탄하며 1984년 12월 27일 해고되었다. 해고노동자로서 이용선은 1986년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을 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 조직부장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대우자동차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중 한 명이 현재 정치인으로 활동 중인 홍영표였다.

 

1992년, 노동자와 민중을 대변하는 정당을 결성하기 위해 한국노동당건설추진위원회를 구성,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그 해 구속되었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이용선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합류,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에 들어가 대통령 선거 감시활동을 전개했다. 1996년에는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등과 함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결성, 북녘 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며 민간 교류협력사업으로 남북문제 해결에 기여했다.

 

이용선의 생애는 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의 역사를 대변하는 중요한 여정이었다. 다양한 사회운동과 정치적 활동을 통해 이용선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정의와 인도주의적 가치를 추구해왔다. 이러한 이용선의 헌신은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도 이용선의 활동이 주목받을 것이다.

 이용선: 정치 경력

 

이용선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을 보고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2010년에는 백낙청, 김상근, 청화 스님 등과 함께 ‘희망과 대안’을 창립하여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연합을 중재하고 조정하였다. 이를 통해 시민운동의 영역을 정치 변화로까지 확장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2011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원외 친노계가 주축이 된 '혁신과 통합(혁통)'을 결성하고 상임대표를 역임하였다. 이후 법적 합당을 위해 창당된 '시민통합당'의 당대표를 거쳐, 민주당과 시민, 노동계를 통합해 '민주통합당'을 출범시켰다. 민주통합당의 출범은 2011년 12월 16일에 이루어졌으며, 이용선은 공동대표로 활동하였다.

정치인으로서의 도전은 여러 차례의 낙선을 경험하게 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김용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다시 한 번 김용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8년 6월 26일, 이용선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수석 인선에 대해 “30여 년 간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 쌓아온 정책 경험과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 소통의 창을 더욱 확장시키고, 각계 시민사회의 혁신적 사고와 창의적 제안들을 정책화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 을 선거구는 민주당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으나, 이용선은 김용태의 개인기에 밀려 두 번의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용선은 미래통합당 손영택 후보를 약 16.3%의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마침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특히 홍보와 이미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국회의원 3수 도전 때는 당시 유행하던 아무노래 챌린지에도 참여하며 유권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였다. 이를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용선: 21대 국회

 

21대 국회에서의 이용선 의원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속하였으나, 임기가 시작된지 두 달 만인 7월에 이인영 의원의 통일부장관 내정으로 외교통일위원회로 이동하였다. 이용선 의원은 남북 교류협력 운동에 앞장서온 만큼 외교·통일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외통위 간사직에 대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선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겸임하며 코로나 긴급추경 등을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 긴급유동성 지원에 기여했고, 민생경제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간병비 지원과 지방에 회생법원 설치를 위한 법안을 대표발의하여 국민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였다.

 

양천구을 지역에서는 공항과 관련된 문제에 주목하며, 공항소음 피해 대책 입법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소음피해 대책비 국고 지원을 이끌어내고, 소음측정단위 변경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용선 의원은 외교통일 분야에서도 활약하며,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역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비판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주장하며 국익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 대사관을 항의 방문하고 서한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21대 국회에서 이용선 의원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용선은 정책 제안과 입법활동을 통해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특히 외교·통일 분야에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어 국가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용선: 국제사회와의 활발한 교류

 

이용선 의원은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뉴욕을 직접 방문하여 미국 하원의원을 면담하고, 미국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해양 투기에 반대하는 국제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해양투기를 저지할 수 있었던 런던의정서에서조차 아무 말도 못하며 일본 정부를 대변하고 있는 외교부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장에서 하태경 의원의 왜곡 발언을 바로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용선 의원은 군함도 강제징용 사실을 부정하는 일본에 제대로 항의하는 데 실패하며, 양금덕 할머니의 훈장 수여를 가로막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굴욕외교를 질타하고 한일 대륙붕 7광구 활용, 동해 표기 촉구,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사죄 촉구 등 3건의 결의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미얀마 사태 발생 이후에는 여야 국회의원 약 60명을 모아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하고 운영위원장을 맡아 미얀마에 대한 인도적 지원, 미얀마 유학생 장학금 지원 등을 이끌었습니다. 아프간 평화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거나 우크라이나와의 회복적 동행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도 결성하여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교류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책적으로는 남북교류협력재단 설치를 포함한 다양한 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정착 문제와 하나원에서의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등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용선 의원은 국제사회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국가의 안보와 발전에 기여하며 국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용선의 노력은 국제사회의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용선: 민생 해결사와 노동운동의 영웅

 

이용선 의원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이웃집 착한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용선의 역사는 군사독재시대의 서울대학교 민주화 운동 소위 학출출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김영호 서울시당 위원장은 이용선을 "민주당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 그 자체"라고 극찬하며, 최강욱 전 의원은 그를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이용선 의원은 민주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의원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한복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졌던 이용선은 어머니가 만든 파란색 마스크를 선거운동에서 착용했던 일화도 있습니다. 또한, 부인 현윤실 여사도 구로공단 학출출신 노동자로 출소한 이력이 있는 노동운동가이며, 이용선 대신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가족을 먹여 살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시민사회수석으로 활약한 이용선은 청와대에서 현장에 나가 살며 고공크레인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등 국정에 헌신적으로 일해왔습니다. 이용선은 문재인 대통령을 깊이 존경하며, 이용선의 인간미와 끈기를 칭찬했습니다. 이용선의 퇴임 시에는 직원들이 직접 감사패를 쓰고 수여한 것은 이용선이 받은 최초의 감사패라고 전해집니다.

 

정치적으로 계파가 없다고 말하는 이용선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깊은 우정으로 유명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용선을 특별하게 대우하여, 당시 간암 수술을 받은 이용선에게 국정 우선이 아니라 몸의 건강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라고 조언한 일화도 있습니다. 이용선은 초인적인 의지로 간 수치를 떨어뜨리고, 정상적인 수치를 회복하여 다시 국회로 복귀했습니다.

 

이용선 의원은 이용선의 뛰어난 인격과 정치적 역량으로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용선의 노력과 헌신은 국가와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용선의 활약은 민생을 위한 해결사로서의 역할과 노동운동의 영웅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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