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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만 : 인터넷 방송인, 자영업자이자 前 야구 선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시사맨 2024. 9. 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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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만은 1983년 10월 1일 대구직할시(현재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입니다. 안지만의 학력은 대구칠성초등학교, 경운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프로 입단은 2002년 2차 5라운드에서 전체 40번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습니다. 신체는 180cm, 83kg으로, 중간 계투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우투우타로 활동하였습니다. 안지만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2002년부터 2016년까지 활약하였으며, 안지만의 프로 경력 동안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안지만은 예술체육요원으로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에 참가하였고, 병역 의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야구 외에도 드렁큰 타이거의 'Monster'와 같은 곡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안지만의 세이버 매트릭스에서 나타나는 2차 스탯은 안지만의 야구 실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합니다. 안지만의 뛰어난 실력과 꾸준한 노력은 그를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중요한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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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만: 대한민국의 야구와 인터넷 방송계에서의 복잡한 여정

 

안지만은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자영업자이자 전직 야구 선수로, 안지만의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대구상고 재학 시절에는 내야수로 활동했으나, 선배들을 위해 언더핸드 스로로 공을 던지던 중 감독에게 투수로의 전향을 제안받아 투수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후 1년 동안 언더핸드 스로를 사용하였으나, 옆구리 통증으로 인해 정통파 투수로 변환하게 되었다.

 

안지만은 2005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중간계투로 자리잡으며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핵심 필승조의 일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리그 정상급 계투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는 'JOKKA 라인'의 일원으로 마무리 오승환과 함께 삼성 왕조의 통합 4연패에 크게 기여하였다. 안지만의 뛰어난 기량은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았으며, 무적의 불펜진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인해 안지만의 경력에 큰 오점이 남았다. 윤성환이나 오승환처럼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에는 성공했을지도 모르지만, 2016년 중반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개설 연루 혐의로 삼성과 계약 해지되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커리어가 급격히 종료되었으며, 리그 복귀는 가능하였으나 큰 공백과 부진한 성적 때문에 복귀를 포기했다. 현재는 강정호와 함께 이른 나이에 불미스러운 방식으로 커리어를 마감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안지만: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진화와 업적

 

 1. 초기 경력: 2003년 ~ 2009년

 

안지만은 2003년 4월 15일, 삼성 라이온즈에서 첫 등판을 하며 프로 야구에 발을 들였다.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할 당시, 안지만은 65kg의 초경량 투수였으나, 훈련을 통해 2009년까지 80kg로 체중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체중 증가는 안지만의 투구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중요한 투수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부터 안지만은 팀 내 중간계투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 해에는 8승 14홀드, 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하며 계투진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2006년에는 단 7경기 등판에 그쳤고,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봉이 삭감되는 불운을 겪었다.

 

2007년에는 선발 투수 훈련을 받았으나, 본격적인 선발 투수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2008년에는 정현욱과 권혁과 함께 안정권 트리오를 구축하며 강력한 계투진을 이루었고, 2009년에는 선발진의 붕괴로 인해 선발 투수로 등판했으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다. 이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

 2. 발전과 성공: 2010년 ~ 2011년

 

2010년 시즌에 들어서면서 안지만은 본격적으로 안지만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시즌 동안 안지만은 7월 성적이 5⅔이닝 4K 무실점, 9월에는 9승 3패, 9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2.65를 기록하며 삼성 불펜의 핵심 투수로 자리잡았다. 특히, KIA 타자들과의 연장 경기에서 무사 만루 상황에서 삼진을 잡아내며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팀의 중요한 계투로 활약하였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는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3⅔이닝 5피안타,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였고, 한국시리즈에서는 SK 와이번스와의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3⅔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시즌 동안 안지만은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7 ⅓이닝 6피안타, 1실점, 평균자책점 1.23을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우승에 기여했다.

 

2011년 시즌 초에는 선발 투수로도 출전했으나, 이후 중계 투수로 돌아가면서 31경기에서 64⅓이닝, 10승 4패, 10홀드, 방어율 3.08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SK 와이번스와의 5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4⅓이닝 무실점, 4홀드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3. 정점과 갈림길: 2012년 ~ 2015년

 

2012년 시즌에는 등번호를 11번으로 변경하고, 1승 2패, 28홀드, 평균자책점 1.71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는 6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5이닝 5피안타, 4자책점, 2홀드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013년과 2014년 시즌 동안에도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하며 삼성 불펜의 중요한 자원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는 대만과의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에 등판하여 팀의 승리에 기여하며 '안순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시즌 후에는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4년 65억 원에 계약을 체결하였다.

 4. 선수 경력의 종료와 이후

 

그러나 2015년에는 원정 도박 사건이 발생하며 선수 경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2016년 중반에는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개설 연루 혐의로 인해 삼성과 계약 해지되었으며, 이후 리그 복귀를 포기하였다. 안지만의 빠른 선수 경력 종료는 안지만의 과오로 인해 커리어에 큰 결점을 남기게 되었다.

 

안지만은 삼성 라이온즈 시절, 뛰어난 계투진의 일원으로서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후에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안지만의 야구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다.

 

 안지만: 방출 이후의 여정

 

 1. 2017년: 법적 처벌과 야구계 복귀의 어려움

 

안지만은 2017년 1심 재판에서 도박 사이트 개설 자금 지원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12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그를 공범으로 판단했지만, 재판부는 안지만이 사이트 운영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그동안 언론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집행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안지만은 항소하였고, 이로 인해 재판이 장기화되었으며, 야구계 복귀에 대한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2. 2018년: 징계와 경제적 어려움

 

2018년 4월 20일, 대구지방법원은 원심의 판결을 깨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하였다. 이로 인해 안지만은 아시안 게임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이미 받은 연금도 환수되었다. 또한 5월 24일, KBO는 안지만에게 1년 유기실격 징계를 내렸고, 8월 24일에는 삼성 라이온즈 측이 FA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하여, 안지만은 21억 2000만원의 계약금을 반환해야 했다.

 

 3. 2019년: 복귀 시도와 사회적 영향

 

2019년 2월, 안지만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도박 사건에 대한 해명을 했다. 안지만은 사회봉사와 운동을 하며 자숙하고 있으며, 야구 레슨장 운영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도박 관련 의혹과 관련된 악성 댓글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며, 우울증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해 6월 11일, 한국야구위원회는 안지만의 복귀 신청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는 복귀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으며, 투수진으로 허덕이는 하위권 팀들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복귀는 미지수로 남았다.

 

 4. 2020년: 사회인 야구로의 전환

 

2020년 4월 29일, 안지만은 사회인 야구 팀 '리오파이터스'에 입단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안지만은 투수 외에도 타자로서 활약하며, 여전히 야구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5. 2021년 이후: 방송 활동과 개인적 변화

 

2021년 5월 17일, 안지만은 라이브 방송에서 최고 구속 147.7km/h을 기록하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6월 2일 윤성환과 관련된 도박 문제로 인해 자신이 의심받았으나, 이를 해명하였다. 안지만은 프로 야구 복귀 의향이 있다고 밝혔지만, 선수생활로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는 팬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2021년에는 LG 트윈스의 준플레이오프 탈락을 이유로 바다에 입수하는 공약을 실천하였고, 대구에 유소년 레슨장을 열었다. 또한, 개인 방송을 통해 정치 도네이션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6. 개인 방송과 현재 활동

 

2023년 6월 25일, 아프리카 TV 방송을 종료하고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과 팝콘TV에서 방송을 이어갔다. 이후 10월에는 아프리카 TV로 복귀하여 방송을 재개하였다. 현재는 야구 경기 시작 전 한·일 야구 경기 승부 예측을 해주는 토토 픽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안지만의 복귀 여정은 여러 법적 문제와 사회적 논란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안지만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지만의 피칭 스타일과 논란

 

피칭 스타일

 

안지만은 KBO 리그에서 강력한 파워 피처로 이름을 알렸다. 안지만의 주요 특징은 패스트볼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동료 오승환과 유사한 점이다. 2011년 기준으로 안지만은 평균 구속 144.3km/h의 패스트볼을 던졌으며, 최고 속도는 153km/h에 달했다. 안지만이 은퇴 직전까지도 폭망한 2016 시즌 초에는 구속이 다소 떨어졌지만, 패스트볼의 구위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변화구로는 주로 슬라이더를 사용했으며,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비율은 약 7:3 정도였다. 이는 전성기의 오승환보다 변화구를 조금 더 자주 구사했음을 나타낸다. 안지만의 체력 또한 강점 중 하나였다. 안지만은 부상으로 시즌을 날린 경우가 거의 없었고, 스스로는 아픈 상태에서도 참고 던졌다고 주장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안지만의 투구폼은 다소 특이한데, 1980년대 이전의 올드 스쿨 투구폼을 보여준다. 몸을 뒤로 기울이면서 몸의 회전력을 활용해 공을 던지는 방식으로, 상체에 힘을 실어 정교한 컨트롤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공에 힘이 잘 실리도록 했다. 이 유형의 투구폼은 구속이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부상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안지만의 와인드업은 매우 느린데, 왼발을 바닥에서 뗀 후, 왼발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느리게 진행되다가 발이 땅에 닿을 즈음 속도가 빨라지며 투구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안지만의 와인드업 포지션과 세트 포지션의 폼이 거의 같고, 속도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트 포지션에서는 동작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지만, 안지만은 와인드업과 세트 포지션을 자유롭게 섞어가며 투구했다. 이로 인해 안지만은 이중동작 의혹을 받기도 했으며, 2013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벤치의 항의를 받았다. 이러한 투구 방식은 류중일 감독의 항의를 받아들인 후 사용하게 되었다.

논란 및 사건 사고

 

안지만은 프로 야구 선수로서 여러 논란에 휘말렸다. 첫 번째로,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 사건에서 안지만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2016년 이전에 도박 혐의로 두 차례 처벌된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두 번째로, 2021년에는 팬 서비스와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 안지만은 유튜브에서 "선수가 없으면 중계하는 사람도 필요 없고, 기자도 필요 없고, 팬도 필요 없다"는 발언을 하였고, "팬이 없다고 해서 야구 경기가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며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많은 야구 팬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특히, 안지만은 KBO 선수들이 팬 서비스를 받을 때 돈을 받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주장하며 팬 서비스를 부족하게 하는 선수들을 옹호했다. 이 발언은 한국 프로 스포츠의 특수한 시장 구조와 팬과의 관계를 간과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세 번째로, 2022년에는 임금 체불 의혹이 제기되었다. 유튜버 구제역은 안지만이 편집자에게 4달치 미납된 월급 600만 원을 요구하자, 안지만이 자신이 주기 싫다고 하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답한 대화 내역을 폭로했다. 그러나 실제로 안지만은 편집자에게 과도한 보수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편집자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이에 대한 노동청의 판결도 안지만의 승소로 귀결되었다.

네 번째로, 안지만은 세금 체납 문제로 논란에 휘말렸다. 대구 수성세무서에 따르면, 안지만은 2020년 사업 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으며,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았던 소득에 대해 체납세액이 발생했다. 안지만은 세금 체납에 대한 납부 독촉에 응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공시 송달 절차가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안지만은 명예 훼손 사건에 연루되었다. 안지만은 BJ와의 윷놀이 내기에서 진 후 별풍선을 쏘려고 했으나, 은행 점검 시간에 걸려 BJ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이 과정에서 욕설이 오갔다. 결과적으로, 안지만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약식 기소되어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고, 이후 정식 재판을 청구하여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종합적으로, 안지만은 안지만의 피칭 스타일과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러 논란에 휘말리며 프로 야구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안지만이 가진 성과와 인기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야구 팬들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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