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감독은 1967년 5월 5일 강원도 삼척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이자 전직 축구 선수입니다. 그는 주로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1990년부터 1999년까지 현대 호랑이(울산 현대)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이후 상무 축구단을 거쳐 일본 베르디 가와사키와 다시 울산 현대에서 활동했습니다. 김 감독은 또한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 5골을 기록하며 국제적인 경험을 쌓았습니다.
축구 선수 은퇴 후, 김현석은 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울산 현대에서 플레잉 코치와 2군 코치를 맡았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수석 코치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강릉중앙고등학교, 울산대학교와 같은 다양한 팀에서 지도자로서 경력을 이어갔으며, 2024년부터는 충남 아산 FC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풍부한 경험은 현재 전남 드래곤즈 감독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김현석 감독은 또한 축구 경영인으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이어왔습니다. 울산 현대에서 유소년 강화부장을 맡았고, 충남 아산 FC에서는 사무국장으로서 팀의 행정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의 다양한 경험은 축구의 현장과 경영을 모두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제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팀을 이끌며 K리그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김현석: 대한민국 축구계의 전설적 인물, K리그의 아이콘, 그리고 현재 K리그2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인 김현석은 오랜 세월 K리그의 중심에서 활약한 선수 출신 지도자로서 축구계에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그의 선수 시절과 그 후의 경영인, 감독 경력까지 모두 합쳐, 그는 한국 축구에서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1. 김현석 - 선수 경력
김현석은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축구의 꿈을 키운다. 삼척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그는 강릉중학교로 진학하며 축구 실력을 보였고, 이후 강릉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학교를 거쳐 1990년, 울산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의 울산 현대에서의 첫 시즌은 신인답지 않은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1991년, 당시 차범근 감독의 지도 아래, 김현석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28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 9위에 오르는 등 많은 기대를 받았다. 1992년과 1993년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되었고, 이 시기에는 공격수로 완전히 자리잡으면서 팀의 중요한 득점원으로 활약했다. 김현석은 울산 현대에서 꾸준히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팀을 이끌었고, K리그에서 그의 기록은 압도적이었다.
2. K리그에서의 위상
김현석은 K리그1에서 총 373경기에서 111골 54도움을 기록하며, 그의 뛰어난 공격력과 경기 내 영향력을 입증했다. 특히 울산 현대에서의 기록은 그가 이 팀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소였다. 울산 현대에서의 통산 기록은 그를 K리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베스트 11 선정 횟수는 6회로, 이는 K리그 필드 플레이어 중 두 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김현석은 '미스터 울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울산 현대의 모든 기록에서 최다 출장, 득점, 도움을 기록한 인물로 K리그와 울산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가 1996년에 울산의 첫 K리그 우승을 이끈 것은 그의 선수로서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로, 이때 울산은 김현석을 중심으로 한 공격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98년 아디다스코리아컵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고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기술과 탁월한 축구 IQ, 그리고 탁월한 프리킥 능력은 많은 팬들에게 기억된다.
3. 국가대표 경력
김현석의 국가대표 경력은 K리그에서의 위상에 비해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1994년과 1998년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일이 많았다. 그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황선홍, 김도훈, 최용수와 같은 뛰어난 공격수들 사이에서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국가대표로서의 경기를 충분히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가대표로서의 기록은 23경기 5골에 불과하지만, K리그에서의 역대급 기록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기회만을 가진 셈이다.
4. 지도자 경력
김현석은 은퇴 후에도 축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지도자로서의 경로를 걸었다. 2004년 울산 현대에서 코치로 시작하여, 2012년에는 유소년 강화 부장으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이후 2013년 창단된 울산WFC 여자축구단의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강릉중앙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부임해,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의 성과를 이루어내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2018년에는 울산대학교 축구부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구단의 가치와 문화를 잘 이해하는 지도자로서 팀을 이끌었다.
그의 지도 철학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에만 집중하지 않고, 선수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2023년, 김현석은 K리그2의 충남 아산 FC 감독으로 부임하며 프로팀 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57세의 나이로 프로팀 감독직에 오른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팀을 이끌고 있으며,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과 함께 체력을 바탕으로 한 경기 운영을 중요시한다고 밝혔다. 축구계에서 그의 지도력과 경험은 큰 기대를 모은다.
5. 김현석의 축구 철학과 스타일
김현석은 선수 시절, 피지컬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뛰어난 기술과 창의적인 플레이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대표적인 특징은 뛰어난 퍼스트 터치와 슈팅 능력, 그리고 정교한 프리킥이었다. 김현석은 전방에서의 위협적인 존재감과 함께, 프리킥과 패스를 통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였다. 또한, 그의 승부욕과 열정적인 성격은 경기장에서 잘 드러나며, 때로는 강한 성격이 부정적인 사건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는 그가 얼마나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한지를 보여준다.
6. 결론
김현석은 단순히 K리그의 전설적인 선수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선수로서의 업적은 단연 압도적이며, 현재 지도자로서도 그의 경력은 축구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0년대 한국 축구의 전성기를 함께한 김현석은 그 자체로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며, 앞으로도 그의 발자취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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