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은 1969년 7월 10일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대구남도초등학교, 경운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영남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뛰어난 신체 조건(188cm, 120kg)과 좌투좌타라는 특징을 가진 그는 1992년 쌍방울에 프로 입단하여 야구선수로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프로 선수로서 양준혁은 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 등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다양한 포지션(지명타자, 우익수, 좌익수, 1루수)을 소화했습니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장기간 활동하며 팀의 중요한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해설 위원으로 전향하여 SBS ESPN, MBC SPORTS+ 등에서 야구 해설을 담당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현재 그는 양준혁 야구재단의 이사장으로서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이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박현선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며, 최근에는 딸도 얻었습니다. 그의 경력과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No.10은 대한민국 야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야구 인생은 대구에서 시작되었으며, 대구남도초등학교, 경운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1992년 쌍방울에서 프로 야구에 입문한 후 1993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의 신체 조건(188cm, 120kg)과 좌투좌타라는 특성은 그의 커리어에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양준혁은 은퇴 시점에서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들 중 KBO 리그 통산 wRC+ 1위, 야수 WAR(스탯티즈, KBreport) 1위를 기록했다. 그는 슬럼프를 겪었던 2002년과 2005년, 말년의 노쇠화로 기량이 저하되었던 2008년과 2010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즌에서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해 "배트를 거꾸로 들고 쳐도 3할"이라는 비유까지 만들어냈다. 타격과 관련된 많은 누적 기록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특히 볼넷 기록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그의 선구안은 KBO 리그에서 최고로 평가받았다. 또한, 특유의 타격 폼인 "만세 타법"과 항상 1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은퇴 후 양준혁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야구 해설가, 인기 강사, 예능인, 사업가, 유튜버로 활발히 활동하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양준혁 야구재단의 이사장으로서 후배 양성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야구소프트볼협회의 이사로서도 활동 중이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야구장 건립을 꿈꾸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많은 팬들과 후배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그의 야구 인생은 단순히 선수로서의 성취를 넘어서, 후배 양성과 야구 발전에 기여하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