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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짐짝 취급", 국민의 힘과 날을 세우고 있는 정청래, 그의 프로필과 인생사

인간의 사람 2024. 4. 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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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4월 10일 총선 당일, 서울 마포을 후보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한 비판을 펼쳤습니다. 이 비판은 정 후보가 노인들을 "짐짝 취급"했다는 주장에 근거합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은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여 "본투표 당일에도 선량한 국민들을 비하하고 폄훼하는 민주당의 발언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민주당의 선거 활동에 대한 깊은 우려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정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투표소로 노인을 실어 나르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공보단은 인천 강화군의 한 노인보호센터 대표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차량을 이용해 투표소로 이동을 도와드린 사례를 언급하며 반박했습니다.

 

또한,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정 후보가 선거 운동 중 노인들을 비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발언이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을 부족하게 하며, 노인들을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으로 해석되며, 이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공보단은 지난 해에도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 대 1 표결을 하느냐"라는 발언을 했다고 언급하며, 이는 어르신들을 짐짝 취급하고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정 후보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을 자극하고, 선거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존중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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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 19, 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정청래(鄭淸來)는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마포구 을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로 선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1965년 4월 18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58세입니다. 거주지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의 성산월드타운대림아파트에 계시고, 하동 정씨(河東 鄭氏) 본관을 갖고 있습니다.

 

정청래 국회의원은 현재 제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마포을 지역위원장과 수석최고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정통한 정치 경력과 꾸준한 지역사회 활동을 바탕으로, 그는 지역주의를 중시하면서도 국가적 이익과 발전을 추구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정청래 의원은 다양한 정책과 사회 문제에 대한 토론과 법안 제안을 통해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서, 정청래의 역량과 정의로운 정치 성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청래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7대, 19대, 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65년 음력 4월 18일(양력 5월 18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태어나 아버지 정해일과 어머니 박순분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 진학을 이루었으며, 대전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정청래는 대학 시절 운동권 활동에 투심하였으며,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9년 10월 13일, 정청래는 주한미국대사 관저를 점거하여 폭탄 투척 및 방화 미수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며, 그 후에도 다양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완전히 사면복권되었습니다. 이후 정청래는 학원업을 시작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미 대사관저 폭탄 테러 사건은 그의 정치 경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작용하였습니다.

 

출소 후에는 1992년에 학원을 창업하여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이후 경쟁력 있는 학원들의 등장과 체벌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폐업하였습니다. 이후 정청래는 정계에 집중하여 현재까지 꾸준한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2년경 노사모에 가입하여 활동한 정청래는 인터넷상에서 '싸리비'라는 닉네임으로 활발한 글쓰기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이후에는 명계남, 문성근 등과 함께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을 준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지역구 전환이 가능한 정당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근자 30여 명과 함께 철저한 준비를 진행했습니다.

 

이후에도 정청래는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유권자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 내 부재자 투표함 설치운동을 통해 활동하며,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는 뱃지를 제작하여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이후, 정청래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습니다. 이후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발한 정치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에서의 정치적 입장이 변화하면서 여러 계파의 갈등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생애

 

 학창 시절: 정청래는 1965년 음력 4월 18일(양력 5월 18일)에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태어났다. 가장이 석막초등학교와 진산중학교를 나오고 대전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학생회 활동을 했으며, 활발한 운동권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대학생 시절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미 대사관저 점거 사건 및 투옥: 1989년에는 서울 정동의 주한미국대사 관저를 점거하여 폭탄 투척 및 방화 미수 사건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1990년에는 다양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사면되었다. 이 경험은 그의 정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후 정계 진출의 발판이 되었다.

 

 학원 운영: 출소 후에는 학원을 창업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 학원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보습학원으로, 그의 교육 철학과 경영 능력을 발휘하여 빠르게 성장했다.

 

 정계 진출: 정청래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지지단체 '국민의 힘'에 가입하고 활동했으며, 이후에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여 정계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정치 활동을 펼치며 국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정청래 의원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서 새누리당의 김성동 후보와 무소속 강용석 후보를 상대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의 당선은 단순히 승리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내 특별위원회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파워풀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선거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어 최고위원에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당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특히, 그의 슬로건인 '당 대포'가 되어 당의 최전방 공격수로서 활약하겠다는 의지는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는 국회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기간 동안 총 170건의 법안을 발의했고, 그 중 45건이 본회의에서 가결되었습니다. 이는 상당히 높은 성과로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국회 상임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는 등, 그의 능력과 열정이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련의 막말 논란과 컷오프 파장은 그의 정치 경력에 그늘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20대 총선에서 컷오프되면서 그의 정치 생활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의 결정을 수용하고 당내에서의 역할을 다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컷오프 이후에도 정청래 의원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방송 활동을 통해 정책 논의에 참여하고, 지역사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손혜원 의원의 지원을 통해 지역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의 행보는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의 정치적인 욕망과 열정은 여전히 그의 행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마포구 을 더불어민주당의 지역구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과반수를 넘어서 미래통합당의 김성동 후보에게 큰 차이로 승리하여 21대 국회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선 직후에는 국회사무처를 첫 번째로 찾아가 금배지를 전달받았습니다.

 

21대 국회에 진입하자마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법안을 첫 번째로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불법 주차로 인한 차량 견인에 관한 법안도 페이스북 댓글에서 출발하여 제안되었습니다. 더불어 사설 구급차를 방해한 사건을 계기로 응급환자 이송 차량 운행 방해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는 법안을 대표적으로 발의하였습니다.

 

이어서, 언론의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 법안을 제안하고, 법조 경력이 5년인 사람도 판사로 임명될 수 있도록 법원조직법을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2021년 12월,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으나, 이로 인해 불교계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해당 사태는 사과 없이 지나갔습니다.

 

2022년 8월, 전당대회에서 친이재명을 선언하고 수석최고위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8년 전에 주승용 전 국회부의장에게 밀려 수석최고위원 자리를 놓친 아픔을 갚은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2023년 2월,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 발언하며 논란을 빚었습니다. 또한, 과방위원장을 사퇴하고자 했으나 행안위원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2023년 9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킨 민주당 의원들을 비난하였으나, 이후 유인태 등 당의 원로들의 메시지에 따라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2024년 2월, 제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문 - 친명, 친명 - 비명 갈라치기에 대한 비판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20년간의 정당사를 바탕으로 한 결정적인 발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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