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설기현 : '설바우두'.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프리미어리거 선수 출신 감독. 그에 대해 알아보자

시사맨 2024. 9. 12. 13:20
반응형
728x170
설기현, 대한민국 축구 감독이자 전직 축구 선수로, 1979년 2월 4일 강원도 정선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87cm의 신장과 82kg의 체중을 지니고 있으며, 혈액형은 B형이다. 선수로서의 경력은 로열 앤트워프 FC를 시작으로 RSC 안데를레흐트,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레딩 FC, 풀럼 FC, 포항 스틸러스, 울산 현대, 인천 유나이티드 FC 등 다양한 팀에서 활약하였다. 은퇴 후에는 성균관대학교 축구부, 대한민국 대표팀, 경남 FC의 감독으로 활동하며 축구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300x250


설기현의 지도 스타일은 '설사커'라 불리는 간결하고 효율적인 축구에 중점을 두며, 4-2-2-2 전형을 통해 공격 시 중앙에 여섯 명의 선수를 배치하여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선호한다. 빌드업 과정에서는 중앙 밀집 배치를 통해 후방에서 패스 코스를 열어주는 전술을 구사하며, 2선에서는 공격적인 움직임을 통해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창출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빌드업에 의존하고, 골 결정력 부족과 선수 개개인의 타점에서의 밀림 현상이 나타나는 등 전술적 한계도 지적되었다.

행정가로서의 경력도 주목할 만하다. 2019년에는 성남 FC의 전력 강화부장으로 부임하였으며, 유소년 스카우트와 코칭스태프와의 소통 업무를 총괄하였다. 이후에는 경남 FC의 감독으로 이직하여 팀을 이끌었으며, 성남 FC와의 짧은 인연을 마무리한 뒤 다양한 지도 경력을 쌓아갔다. 설기현의 지도력은 축구 팬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전술적 접근과 선수 선발에서의 한계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설기현: 한국 축구의 자랑스러운 유럽 진출 첫걸음

 

설기현, 한국 축구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설기현은 유럽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구자적 선수다. 설기현의 프로 경력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쓴 사례로 평가받는다. 본 칼럼에서는 설기현의 클럽 경력 전반을 조망하며 설기현의 업적과 도전을 조명한다.

 

 1. 프로 데뷔 이전

 

설기현은 학창 시절부터 유망한 축구 선수로 주목받았다. 강릉상고 2학년 시절 16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강릉상고의 주요 대회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결국 명문대학 대신 광운대에 진학하였다. 광운대에서도 그리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설기현은 재능을 인정받아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1998 AFC 청소년 선수권대회 예선에서 4골을 기록하며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하였고, 1999 청소년 월드컵에서는 말리와의 조별리그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주목받았다.

 2. 로열 앤트워프 FC (2000-2001)

 

설기현은 2000-01 시즌 벨기에 주필러 리설기현의 로열 앤트워프 FC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설기현은 계약금 25만 달러, 연봉 10만 달러의 조건으로 계약하였고, 시즌 동안 27경기 11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 설기현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 허리부상으로 3개월간 결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2000 시드니 올림픽 출전도 좌절되었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 후 시즌 막판 6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3. RSC 안데를레흐트 (2001-2004)

 

로열 앤트워프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설기현은 벨기에 명문 팀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했다. 2001-02 시즌에는 벨기에 슈퍼컵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한국인 최초로 득점을 기록하였다. 2002-03 시즌에는 리그 12골 6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고, 발롱도르 후보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2003-04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부진을 겪었다.

 

 4.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2004-2006)

 

2004년 여름, 설기현은 잉글랜드 EFL 챔피언십의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설기현은 2004-05 시즌 동안 40경기 6골 8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5년 1월 8일 밀월 FC와의 FA컵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폴란드 공격수의 영입과 부상으로 인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05-06 시즌에는 36경기 4골 4도움을 기록하였고, 후반기에는 폴란드 공격수의 영입과 부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5. 레딩 FC (2006-2007)

 

2006년 7월, 설기현은 프리미어리그 승격팀 레딩 FC로 이적하였다. 설기현은 레딩에서 좋은 출발을 보였으며, 데뷔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특히, 7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 기록한 결승골은 설기현의 EPL 적응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러나 시즌 중반부터는 스티브 코펠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해 부진을 겪었다.

 

 6. 풀럼 FC (2007-2008)

 

레딩에서의 부진 이후, 설기현은 2007-08 시즌 초반에 풀럼 FC로 이적하였다. 레딩에서의 불안정한 모습이 이어지며, 풀럼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만 활약하였다. 이적 초기에는 풀럼과의 계약을 통해 EPL 무대에서의 경험을 이어갔으나, 팀에서의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설기현의 유럽 클럽 경력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설기현이 남긴 발자취는 후배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설기현의 유럽 진출과 성공은 한국 축구의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유럽 축구 무대에서 한국 선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설기현: 플레이 스타일과 경력 분석

 

설기현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로 평가받는다. 설기현의 축구적 특성은 빠른 스피드, 유럽 선수들과 대등한 몸싸움이 가능한 피지컬, 그리고 정교한 크로스 능력의 3박자를 모두 갖춘 양발잡이 측면 공격수로 요약된다. 이러한 특성은 한국 축구에서 보기 드문 조합이며, 설기현의 플레이는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많은 축구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플레이 스타일과 장점

 

설기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설기현의 전방위적 능력이다. 설기현은 양발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스피드와 피지컬이 뛰어난 선수였다. 이로 인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공격포인트를 쌓을 수 있었고, 이는 동양인으로서 유럽 축구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설기현의 크로스는 특히 정교하고 빠르며, 각도가 예리했다. 설기현의 러닝 크로스는 한국 축구에서 독보적인 수준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을 위한 크로스는 설기현의 크로스 능력을 잘 보여주는 예다.

 

설기현의 피지컬 또한 큰 장점이다. 187cm의 장신과 뛰어난 헤더 능력 덕분에 공중볼 경합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신체 조건은 특히 약팀을 상대할 때 유리하게 작용했으며, 설기현의 스피드와 피지컬 덕분에 윙포워드뿐만 아니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도 활용되었다.

단점과 한계

 

반면, 설기현의 단점으로는 둔탁한 볼터치와 축구 지능의 부족이 지적된다. 설기현의 볼 터치가 부드럽지 못해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거나 공중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골 결정력과 패스 정확도가 부족해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단점은 2002년 월드컵에서의 아쉬운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축구 지능 또한 박지성과 같은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는 공간 창출 능력의 부족과 다른 공격수들과의 연계 플레이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또한, 큰 키와 체격에도 불구하고 골문 앞에서의 민첩성 부족은 최종 마무리의 섬세함을 떨어뜨렸다.

 

경력과 경영의 문제점

 

설기현의 경력에서 가장 큰 논란은 설기현의 포지션 고집과 팀 선택에서 나타났다. 설기현은 중앙 공격수로 뛰고자 하는 고집을 부렸고, 이로 인해 지도자들과의 갈등을 겪었다. 또한, 본인의 능력에 비해 낮은 수준의 팀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는 설기현의 전성기와 기회를 약팀에서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RSC 안데를레흐트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이적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적으로, 설기현은 빠른 스피드와 양발에서 나오는 정교한 크로스, 그리고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였다. 그러나 볼 터치의 둔탁함과 축구 지능의 부족, 그리고 포지션 고집과 낮은 수준의 팀 선택은 설기현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장점과 단점은 설기현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의하며, 축구 역사에서 그를 특별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

 

설기현: 지도 스타일 및 행정가 경력 분석

 

지도 스타일

 

설기현은 감독으로서 독특한 스타일을 고수하며, 설기현의 축구 철학은 '설사커'와 빌드업 축구를 중심으로 한다. 설기현의 전술적 접근 방식은 볼을 빠르게 돌리기보다는 간결한 마무리를 지향하는 특유의 '설사커'를 기반으로 한다. 공격 시에는 주로 4-2-2-2 포메이션을 사용하며, 이로 인해 여섯 명의 선수를 중앙에 밀집시켜 수적 우위를 형성하고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술을 취한다. 이러한 전술적 배치는 상대 팀의 수비를 분산시키고, 후방에서의 패스 코스를 열어주는 등의 역할을 한다.

 

설기현의 빌드업 축구는 중앙 밀집 배치된 1, 2선의 움직임을 통해 후방에서의 패스 경로를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다. 2선에서는 상대 수비 사이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볼을 받을 수 있도록 주문하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창출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한계와 비판

 

그러나 설기현의 전술적 접근에는 몇 가지 한계점이 존재한다. 설기현의 지도 스타일은 때때로 지나치게 빌드업에 의존하며, 경기 중 골 결정력 부족과 선수 개개인의 전술적 타점 부족이 문제가 된다. 특히 경남 FC 감독 재직 당시, 팀의 공격력 부족과 전반적인 결정력 부족으로 인해 공격적인 전술을 채택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전환이 빠른 팀에 대해서는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비판은 설기현의 팀 구성 및 선수 선정에 대한 안목 부족으로 이어지며, 이는 전술적 접근 방식이 실제 경기에서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데 실패하는 경우를 낳았다.

 

많은 축구 팬들은 설기현이 선진적인 축구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실행력 부족이 문제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설기현의 전술이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일 수 있으나, 이를 실제 경기에서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많다.

 

행정가 경력

 

설기현의 축구 행정가로서의 경력은 2019년 7월, 성남 FC의 전력 강화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직책에서 설기현은 프로 및 유소년 스카우트 업무를 총괄하며, 우수 유소년 발굴을 위한 유스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다. 이로 인해 성남 FC의 전력 강화 및 유소년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2019 시즌 종료 후, 남기일 감독의 사퇴와 함께 후임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실제로는 김남일이 후임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이직하게 되었다. 이후 설기현은 경남 FC의 감독으로 이동하며 성남 FC와의 짧은 인연을 마무리했다.

 

 

 

설기현은 축구 감독으로서 독특한 전술적 접근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설기현의 '설사커'와 빌드업 축구는 이론적으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설기현의 전술이 실제 경기에서 효과적으로 실행되지 못한 부분과 선수 구성에서의 문제점은 설기현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행정가로서의 경력에서도 유소년 발굴 및 전력 강화에 기여했지만, 감독직에서의 경과는 짧았다. 설기현의 축구적 능력과 경영적 역량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때, 앞으로의 행보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과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