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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 게으른 천재 前축구선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시사맨 2024. 9.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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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李天秀),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적인 선수로, 1981년 7월 9일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거주하고 있다. 이천수는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 뿐만 아니라 행정가, 심판으로도 활약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이천수는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을 중퇴하고 축구 선수로 데뷔하여, 뛰어난 스피드와 기술을 바탕으로 윙어로서 주목받았다. 이천수의 경력은 국내외 다양한 클럽에서의 활약을 거듭하며 길어졌다. 울산 현대 호랑이를 시작으로 레알 소시에다드, CD 누만시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알 나스르 FC, 오미야 아르디자, 인천 유나이티드 FC 등 다양한 팀에서 경험을 쌓았다. 특히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로서 78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하며 국내외에서 이천수의 이름을 알렸다. 퇴역 이후 이천수는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전력 강화실장으로 활동하였고, 이후에는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천수는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넘어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축구계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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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경력

 

이천수는 한국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이천수의 클럽 경력은 이천수의 뛰어난 재능과 독특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고등학교 시절, 이천수는 이미 전국구 선수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당시 부평고등학교는 한국 고교 축구계에서 명실상부한 최강자로, 이천수, 최태욱, 박용호 세 선수를 일컫어 '부평고 귀각 3인중'이라 불리웠다. 이천수는 3학년 시절 교육감배 대회에서 다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 출전하려 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천수는 결승골을 넣어 팀을 1:0으로 이끌며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2000년 1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4개국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며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이는 유럽 프로팀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천수는 고려대학교 재학 중 유럽 여러 프로구단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이천수는 프로 선수로서의 꿈을 위해 해외 진출을 원했으며, 그 결과 유벤투스의 계약 제안을 받았으나 이적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이천수는 브레시아 칼초와 파리 생제르맹 FC에서도 테스트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한 뒤 2003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게 된다. 유럽 진출은 무산되었으나, 이천수는 히딩크 감독의 지도로 좋은 성과를 거두며 눈도장을 받았다.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한 이천수는 첫 시즌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천수는 K리그에서 18경기 7골, FA컵에서 3경기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성과로 이천수는 K리그 신인왕과 도움왕을 차지하며, AFC 올해의 신인상에도 선정되었다. 2003년에도 이천수는 K리그에서 18경기 8골 6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시즌 중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면서 이천수의 경력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천수는 2003년 7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당시 팀은 2002-2003 시즌 준우승을 차지한 팀으로, 이천수의 영입을 통해 더 큰 성과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의 첫 시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천수는 데뷔전에서 도움을 기록했지만, 이후 경기력이 저조해지며 출전 기회를 잃었다. 이로 인해 이천수는 CD 누만시아로 임대되어 새로운 기회를 찾게 된다.

 

CD 누만시아에서의 임대 생활은 이전과는 달리 더 많은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이천수는 여전히 득점과 도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이천수는 2005년 울산 현대에 복귀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복귀 첫 해인 2005년, 이천수는 K리그 MVP를 수상하며 자신의 재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17경기에서 10골 7도움을 기록한 이천수는 팀의 공격을 이끌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천수는 이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뛰며 총 80경기에서 33골과 13도움을 기록했다. 이천수는 팀의 중심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다시 한 번 한국 축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천수의 클럽 경력은 이천수의 축구 인생에서 여러 도전과 성공을 담고 있으며, 이천수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팬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 K리그와 해외리그를 넘나든 축구인의 삶

 

이천수는 2008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의 임대를 통해 프로 경력을 재정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울산 현대에서의 성공적인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이천수는 수원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며 부상의 악재까지 겹쳐 팀 전력에서 제외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많은 축구 팬들은 이천수의 경기가 부진한 이유가 네덜란드 진출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판단했으나, 이천수가 다시금 전성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천수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수원의 코칭 스태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이천수는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였고, 삼성 스포츠과학 지원실의 재활 훈련 지시조차 거부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결국 차범근 감독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천수는 임의 탈퇴의 처분을 받게 되었다. 2008 시즌 동안 이천수는 4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2009년, 이천수는 전남 드래곤즈로 임대 이적하였고, 박항서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금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천수의 불안정한 행동은 계속되었고, 결국 계약 관련 소동과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등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남에서의 성적은 괜찮았고, 이천수는 9경기에서 4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천수의 이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이천수는 알 나스르 FC로의 이적을 확정짓게 된다.

 

알 나스르에서는 2009-10 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며 15경기에서 3골 1도움을 기록하였으나, 임금 체불 문제로 다시 무단 이탈하여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천수는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 선수들이 금식하는 틈을 타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회상하며, 그 시기의 경험을 자산으로 삼았다.

2010년, 이천수는 오미야 아르디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J리그에서 다시 뛰게 된다. 이곳에서도 이천수는 46경기에서 10골 5도움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2011 시즌에는 팀과 재계약을 체결하고 28경기에서 6골 4도움을 기록하며, 중위권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천수의 계약이 만료된 후, 이천수는 2013년 초까지 무적 상태로 남아야 했다.

 

이 시점에서 이천수는 K리그로 복귀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지만, 전남 드래곤즈와의 임의 탈퇴 조치로 인해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차례의 논란과 갈등 끝에, 2013년 2월 K리이천수가 그를 다시 받아주기로 결정하고, 이천수는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인천 유나이티드에서의 첫 시즌은 이천수의 각오가 남다른 시점이었다. 이천수는 가족과 축구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였다. 2013년 3월 31일, K리그 클래식에서의 복귀전은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천수의 활동량과 근성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이천수는 이후 여러 경기를 통해 점차 자신의 기량을 회복하며, 2013년 5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첫 골과 1도움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이천수는 다시 한 번 부상과의 싸움에 직면하게 되지만, 이천수는 끊임없이 팀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2013년 8월 3일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는 경기 후 심판에 항의하다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이는 이천수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천수는 축구인으로서의 삶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여전히 이천수의 여정을 주목하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힘쓰고 있다.

: 플레이 스타일 분석

 

이천수는 한국 축구 역사에서 독특한 존재로, 이천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여러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한 이천수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스피드와 민첩성을 지닌 선수로 평가받았다. 특히 공을 잡고 방향을 전환할 때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능력이 뛰어나, 2002년 월드컵에서 차두리와 박지성과 비교될 만큼 빠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천수의 공격 포지션은 다양했으나, 가장 파괴적이었던 위치는 처진 스트라이커였다. 이후 국가대표로서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 되었고, 고종수와 나카무라 슌스케와 함께 아시아 최고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았다.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에서 손꼽힐 만큼 뛰어났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상대적으로 평범했다.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돌파 장면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이천수는 스피드와 방향전환 능력을 바탕으로 수비수들에게 상당한 위협을 주었다.

이천수의 플레이 스타일에는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인한 문제도 존재했다. PK와 프리킥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차려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이는 때때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천수의 킥 능력은 탁월하여 국내 선수 중에서 프리킥을 잘 차는 선수로 손꼽혔다.

 

이천수의 유럽 진출은 두 차례 있었으나,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울산 현대 시절에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며, MVP로 선정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멘탈적으로 이천수는 강력한 선수였으나, 사건 사고에 연루되기도 했고, 이러한 행동은 해외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PK 자청이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투혼은 많은 팬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천수는 박지성과의 비교에서 '게으른 천재'라는 인식을 받기도 했다. 두 선수는 비슷한 시기에 해외 진출을 하였으나, 이천수는 유럽 축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커리어가 꼬였다. 반면 박지성은 성실한 노력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천수는 자신의 노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게으른 천재'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으며, 이는 이천수의 재능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천수의 플레이 스타일과 경력은 이천수가 가진 재능과 노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천수의 축구 인생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모두 지닌 복잡한 여정을 나타내며, 이는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대변하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있다.

 

이천수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 방송 활동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천수의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주로 윙어 포지션에서 뛰며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이천수는 수많은 경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며 국내 리이천수는 물론, 해외 리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K리그에서의 활약은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으며, 이천수의 플레이는 팀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은퇴 이후, 이천수는 연예계로의 진출을 선택했다. 이천수의 첫 발걸음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그중에서도 MBC의 '복면가왕'에 출연한 것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천수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보여주며, 단순한 축구 선수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력을 드러냈다. 이는 이천수가 방송 활동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후, 이천수는 '무한도전', '아육대' 등 여러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그를 둘러싼 관심은 더욱 커졌다. 특히 '아육대'에서는 이천수의 뛰어난 체력과 유머러스한 성격이 잘 드러났고, 상대편 팀의 감독이 그를 이기고 싶다고 언급할 정도로 이천수의 존재감은 뚜렷하였다. 이러한 출연은 이천수가 단순한 축구 선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천수의 방송 활동은 항상 긍정적인 반응만을 이끌어내지 않았다. 가끔씩 이천수의 발언이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이천수의 솔직한 성격과도 연결되며, 많은 팬들에게는 이천수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이러한 인간적인 매력은 이천수가 방송 활동을 하면서 쌓아온 신뢰와 팬들과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켰다.

축구 해설자로서의 활동 또한 그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천수는 K리그 해설가로서 경기 전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해설 능력에 대한 비판도 받았다. 특히 경기 분석에서의 부족함과 함께 개인적인 매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지만, 해설자로서의 평가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수는 자신의 열정과 사랑으로 축구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해설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이천수는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전력 강화실장으로서 팀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 역할을 통해 고향팀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천수는 인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천수의 복귀는 팬들에게는 환영받는 소식이 되었다. 이천수는 팀의 전반적인 전략 수립에 참여하며, 후배 선수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천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방송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이는 이천수의 방송 활동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다양화된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이천수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일상과 축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천수는 더욱 많은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천수의 개인적인 매력과 유머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천수는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뿐만 아니라, 방송 활동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공적인 행보를 통해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다. 이천수의 진정성과 매력은 앞으로도 다양한 플랫폼에서 더욱 빛날 것이며, 많은 이들이 이천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고 있다. 이천수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이천수가 보여줄 미래의 모습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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