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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 유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No.11. 그에 대해 알아보자

시사맨 2024. 10. 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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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 유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현재는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No. 11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8월 16일에 오사카부 하비키노시에서 태어난 다르빗슈는 현재 38세이며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다. 도호쿠 고등학교 출신인 다르빗슈 유는 선발 투수로서 활동하며, 투타는 우투우타다. 2004년에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프로 야구 입단을 시작으로, 다르빗슈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005-2011), 텍사스 레인저스(2012-201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17), 시카고 컵스(2018-2020)를 거쳐 현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21~)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다르빗슈 유는 2023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108,000,000의 계약을 맺었으며, 2024년 현재 연봉은 $15,000,0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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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대회에서도 활약한 다르빗슈는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험이 있다.

 

다르빗슈 유는 일본 국적을 가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의 우완 선발 투수로, 뛰어난 야구 실력과 다재다능한 경력을 자랑한다. 다르빗슈는 고교 시절부터 고시엔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더욱 성장하여 7시즌 동안 167경기에서 1,268⅓이닝을 소화하며 93승 38패, 1,238탈삼진, 평균자책점 1.99, ERA+ 185, WHIP 0.98, WAR 45.3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이러한 경과를 바탕으로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6년 총액 1억 1,7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여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메이저리그에서 다르빗슈 유는 2013년 아메리칸 리그(AL) 탈삼진왕에 오르며 사이 영 상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2020년에는 트레버 바우어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아시아 출신 투수 중 최고의 점수(123점)와 최다 1위표(3표)를 기록하며 양대 리그 사이 영 상 2위라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아시아 출신 투수 중 가장 높은 통산 승리 기여도, 누적 연봉, 올스타 선정 횟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에 이어 아시아 투수로서는 세 번째로 빅리그 통산 100승을 달성한 바 있다. 더 나아가, 다르빗슈는 아시아 메이저리거 최초로 2000 탈삼진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국제 대회에서도 다르빗슈 유는 일본 대표팀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약하며 이와쿠마 히사시,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나카 마사히로와 함께 강력한 투수진을 이루었다. 다르빗슈는 한국과의 대결에서 자주 마운드에 서기도 했으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추신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류현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김하성과 함께 팀을 이끌며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인 야구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르빗슈 유의 경력은 일본 야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다르빗슈의 전반적인 성과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다르빗슈 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 우완 투수의 선수 경력

 

 1. 프로 입단 이전

 

다르빗슈 유(肘大樹)는 다르빗슈의 아버지인 파르사드 다르비시세파트(Farsad Darvishsefat)의 이란 출신 배경과 일본 어머니의 문화적 영향 속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이란 테헤란에서 관광회사를 운영하던 사업가로, 1977년 17세에 미국으로 유학해 매사추세츠주 버크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다르빗슈의 부모는 대학 시절 만나 결혼했으며, 아버지는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다. 다르빗슈는 일본에서 교육을 받으며 이란과 일본 문화의 공통점에 친숙함을 느꼈고, 이는 다르빗슈의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다르빗슈 유는 오사카부에서 태어나 부모의 영향을 받아 페르시아와 일본식 가치관을 동시에 습득하며 성장했다. 다르빗슈는 3세 때부터 야구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였다. 다르빗슈는 중학교 시절 팀을 세계대회 3위로 이끄는 저력을 보였고, 이후 센다이의 토호쿠 고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는 야구 명문으로, 다르빗슈는 190cm의 장신에서 평균 147km/h의 속구를 던지며 고교 시절 두각을 나타냈다.

 

다르빗슈의 고교 야구 경력 중 2004년 3학년 봄 고시엔에서 구마모토 공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여 고교 야구의 전설로 남았다. 그러나 팀은 8강에서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비록 개인 성적이 뛰어났지만, 당시 다르빗슈의 사생활 문제로 인한 성적 기대치는 낮았다.

 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2005년, 다르빗슈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다르빗슈의 첫 시즌은 5승 5패, 3.53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남겼지만, 신인상 투표에서는 단 1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후 다르빗슈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기량을 발전시키며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다르빗슈는 매 시즌 1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NPB에서 독보적인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7년에는 사와무라상, 골든 글러브, 퍼시픽 리그 MVP를 모두 수상하며 NPB의 절대자로 군림했다. 다르빗슈의 마지막 5년은 NPB 역사상 손꼽히는 임팩트를 남겼고, 다르빗슈는 완투를 자주 기록하며 이닝 이터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다.

 

그러나 다르빗슈는 팀의 타선이 다르빗슈의 성적에 비해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고통받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다르빗슈는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적은 승수로 인해 여러 차례 사와무라상을 놓치는 아쉬움을 겪었다.

 

 3. 메이저리그 진출

 

2011 시즌 종료 후,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였다. 다르빗슈는 시범경기에서 평균 150km/h의 구속을 선보였으나, 경기 중 반전이 있었고 결국 18승 6패, ERA 1.44, 276 탈삼진을 기록하였다. 다르빗슈의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다르빗슈의 높은 연봉 요구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국 다르빗슈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하게 된다.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다르빗슈의 선수 경력은 일본에서의 전설적인 이력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다르빗슈 유는 이제 단순한 투수가 아닌, 국제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6 시즌: 다르빗슈 유의 복귀와 투구 성과

 

2016년 시즌의 시작은 다르빗슈 유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부상을 극복하고 5월과 6월경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다르빗슈의 투구폼이 수정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첫 마이너 리그 재활 등판에서 다르빗슈는 97마일의 구속을 기록하였고, 이후 두 번째 마이너 재활 등판에서는 98마일의 공을 던지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이러한 기록은 다르빗슈가 수술 후에도 구속이 증가하는 드문 사례로, 팬들의 기대가 더욱 고조되었다.

 

5월 28일, 다르빗슈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5이닝 동안 7개의 탈삼진과 1자책점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가장 빠른 공은 98마일에 달했다. 그러나 7월 1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4⅓이닝 동안 2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7월 22일 캔자스시티 로얄스와의 경기에서는 6이닝 동안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지만, 3실점을 하며 또 다시 패전의 고배를 마셨다.

 

다르빗슈의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은 8월 24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터졌다. 이 홈런은 센터필드를 넘어가는 400피트 이상의 대형 홈런으로, 프로 데뷔 이후 첫 홈런이자 메이저리그 통산 3번째 안타이기도 하였다.

 

10월 7일, 다르빗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2016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 출전하였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으나, 5회에는 케빈 필라, 에제키엘 카레라, 에드윈 엔카나시온에게 연속으로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5이닝 동안 5실점, 4피홈런, 4탈삼진, 1볼넷의 성적을 남기고 강판되었다. 팀은 13개의 안타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3점밖에 얻지 못해 2연패를 당하며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2017 시즌: 변화와 도전

 

2017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할 기회를 받았지만, 부상으로 인한 부담으로 대표팀 합류를 거절하였다. 시즌 시작 전, 도널드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이란 국적자인 아버지가 텍사스 경기 관람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르빗슈 본인은 일본 국적을 선택했기 때문에 큰 지장은 없었다.

 

6월 23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다나카 마사히로와의 맞대결이 화제가 되었다. 다르빗슈는 7이닝 동안 2피안타, 0볼넷, 10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를 보였고, 다나카 역시 무실점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잊지 못할 투수전을 선보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승운이 따르지 않았고, 기복 있는 투구로 인해 트레이드 전까지 6승 9패, 방어율 4.01의 기록을 남겼다. 특히 마이애미전에서는 3⅔이닝 동안 10실점으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결국 다르빗슈는 트레이드 마감일인 7월 3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후 첫 등판에서는 뉴욕 메츠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펼쳤고, 이후에도 차츰 안정감을 되찾았다. 그러나 월드 시리즈에서의 두 차례 등판은 그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특히 3차전에서는 1⅔이닝 동안 4실점을 허용하며 조기 강판되는 굴욕을 겪었다. 다르빗슈의 실망스러운 성적은 결국 FA 계약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2019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 사건이 폭로되면서 다르빗슈는 다시금 주목받았다. 다르빗슈는 월드 시리즈에서의 부진이 사인 훔치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많은 팬들로부터 재평가를 받았다. 이 사건은 다르빗슈가 대처해야 할 또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

다르빗슈 유는 이제 FA로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다르빗슈의 향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2024년 다르빗슈 유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지만, 시즌 전반은 그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3월 11일, 다르빗슈는 서울에서 열리는 개막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서며 2년 만에 개막전 선발 등판의 기회를 얻었다. 오타니 쇼헤이와의 투타 대결이 성사되었으나, 다르빗슈는 3⅔이닝 동안 2피안타 3탈삼진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후 4월에 다르빗슈는 3월 2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이닝 7피안타 1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으나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4월 2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는 7이닝 3실점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팀은 2-5로 패했다. 다르빗슈는 4월 8일 친정팀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3이닝 4실점으로 고전했으나 팀이 역전승을 거두며 패전은 면했다. 이후 4월 14일 다저스와의 리매치에서도 5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승리 없이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결국 4월 17일에는 목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4월 30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복귀, 5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4월을 마무리했다.

 

5월에 들어서며 다르빗슈는 상승세를 탔다. 5월 6일 컵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2승을 달성한 데 이어, 5월 12일 다저스와의 경기에서는 7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3승을 기록했다. 특히 5월 1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는 7이닝 9탈삼진 무실점의 경이로운 피칭으로 시즌 4승을 거두었으며, 미일 통산 20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5월 24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5⅔이닝 동안 7실점을 내주며 시즌 첫 부진을 경험했다. 이어진 5월 29일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도 3이닝 3실점(2자책)으로 고전하며 연패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을 3승 2패, 평균자책점 2.93으로 마무리하며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6월 들어서는 사타구니 부상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었고, 복귀가 지연되면서 팀 전력에서 이탈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팔꿈치 염증으로 등판이 취소되었다. 이후 개인 가정사로 인해 7월 6일 제한 선수 명단에 오르며 복귀 시점이 불확실해졌다. 결국 8월 23일에 제한선수 명단에서 해제되었으나, 왼쪽 사타구니 부상이 재발하며 다시 한 번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9월 4일, 다르빗슈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가졌지만, 2⅔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러나 9월 10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2실점으로 복귀 후 첫 승을 거두었고, 9월 1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미일 통산 202승을 달성했다. 이어 9월 2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는 아시아 투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2,000탈삼진을 기록하며 의미 있는 경기를 만들었다. 9월 27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는 다르빗슈의 정규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고, 5⅓이닝 3실점으로 꾸역꾸역 경기를 이어갔으나 팀이 승리하면서 정규 시즌을 7승 3패로 마무리했다.

 

다르빗슈의 2024 시즌은 부상과 재기, 그리고 꾸준한 성과가 반복되는 시즌이었다. 16경기에 등판해 81⅔이닝을 소화하며 7승 3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다. 특히 9월에는 5경기에서 3승 무패를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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