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한덕수 : 제38·48대 국무총리,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5. 5. 11. 18:42
반응형
728x170
한덕수는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제38대와 제48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1949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그는 경제기획원, 상공부,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통상 및 산업정책 관련 업무를 두루 거친 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주OECD 특명전권대사,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하며 정부의 경제 정책과 대외 통상 전략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반응형

그의 정치 경력 중 가장 주목받는 시기는 참여정부 시절 제38대 국무총리로 재임한 시기이며, 이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제48대 국무총리로 다시 임명되어 전례 없는 재기용 사례를 만들었다. 특히 2024년 말과 2025년 초 두 차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헌정사적으로도 이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그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미대사, 무역협회 회장 등 다방면에서 중책을 맡으며 행정·외교·경제 분야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쳤다.

한덕수는 청조근정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다수의 서훈을 받았고, 개신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소신 있는 정책 결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경력은 외교통상과 경제정책을 아우르는 전문성과 함께, 위기 상황에서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상징하며, 전통적인 관료형 리더십의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덕수

[칼럼] 한덕수, ‘국가의 시간’을 살아낸 마지막 관료정치인의 자화상

 

한덕수는 한국 현대 정치사와 행정사의 거대한 궤적을 관통하는 이름이다. 그의 삶은 단지 한 인물의 이력서를 넘어, 경제개발기부터 정치 양극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흐름과 응축된 동선을 공유한다. 그가 1970년대 초반,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첫발을 디딘 공직 사회는 1인당 국민소득이 254달러에 불과하던 대한민국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는 두 차례의 국무총리직과 두 차례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한 ‘시대의 종착역’ 같은 인물이 되어, 마침내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주자로까지 이름을 올렸다.

한덕수는 단순한 ‘올드보이’가 아니다. 그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식상할 만큼, 다양한 정권에서 그 존재감을 증명해 온 보기 드문 국가관리자다. 문민정부의 통상산업비서관에서 시작해, 참여정부의 국무총리, 이명박 정부의 주미대사,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그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을 모두 거쳤다. 이는 단순한 인사 적응력이 아닌, 이념에 휘둘리지 않는 정책 중심적 기조와 정치적 무색성의 산물이다. 누구보다 ‘전문 관료’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그는, 자신의 역할을 늘 ‘국가적 필요’라는 키워드로 해석해왔다.

 

그는 자신의 공직생활을 “254달러의 경제에서 2만 달러 시대를 연 목격자”로 정의했다. 그리고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관세청 사무관, 상공부 국장, 통상교섭본부장, 재정경제부 장관 등 경제 관련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그는, 외환위기 이후의 산업정책, FTA 협상, 금융 시스템 구축 등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잡아온 주역이었다. 산업국가에서 통상국가로 이행하는 대한민국의 경제 패러다임은 그의 손끝에서 조율됐다. 그리고 그 경제관료는 이후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위기 관리형 총리’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한다.

윤석열 정부 시절의 국무총리직은 그에게 또 하나의 시험대였다. 2023년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엔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중차대한 책임을 떠안았다. 직무정지와 탄핵소추, 복귀라는 정치적 진흙탕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조정자’로서의 본능으로 증명했다. 그는 담화문에서 “좌나 우가 아닌 위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분열과 극단의 정치를 넘어선 ‘실용 정치’를 제시했다. 88일간의 직무 정지 기간에도 그는 “국민은 어느 진영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위로 나아가기를 바랐다”고 담담히 밝혔다.

 

2025년 5월,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평생 관료로 살아온 인물이 처음으로 선거판에 몸을 던지는 이 전환은 단지 개인의 정치적 야망이라기보다는, 불안정한 정국과 무너진 행정 시스템 속에서 ‘안정’과 ‘전문성’을 내세운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다. 출마 선언문에서 그는 “저의 이념은 단 하나, 여기서 기적이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관료 출신답게 ‘기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그는, 결국 또 한 번 ‘국가의 시간’에 자신을 봉헌한 셈이다.

그러나 한덕수를 둘러싼 비판 역시 적지 않다. 장기 공직 생활의 산물로 그가 보이는 관료적 사고는 변화의 시대에 낡은 패러다임으로 읽히기도 하고, 정무적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평도 따른다. 윤석열 정부 내내 야당과의 갈등 속에서 총리의 중립성보다는 대통령의 ‘책임총리’에 더 가까운 역할을 수행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또 국민의힘과의 거리를 두지 못한 점은 ‘중도 통합’을 내세운 그의 대권 행보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덕수는 여전히 ‘기능하는 행정’의 상징이다. 정치가 무너질 때 행정이 국가의 동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고,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지금의 정치가 너무나 감정적이고, 진영화되어 있으며, 정책보다는 구호가 앞선 시대이기에, 한덕수라는 인물의 ‘기계적인 안정감’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그는 결코 대중의 열광을 받는 스타 정치인은 아니다. 하지만 혼란한 시기, 기댈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어른의 모습으로 남았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대선 무대에서, 그는 기적을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의 기적이 아니라 ‘제도와 상식, 협치와 통합’이라는 평범한 단어들이 제자리를 찾는 기적이다. 한덕수는 여전히 행정가의 언어를 쓰지만, 그 언어 속에는 더 나은 정치를 위한 절실함이 스며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한 ‘위로 가는 정치’—그 단어는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이 가장 절실히 들어야 할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정치가 국민을 이기지 못하고, 행정이 혼란을 정리할 수 없는 시대. 그 경계에 선 한 사람의 노정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거울이 될 수 있을까.

 

그의 마지막 도전이 주는 질문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한덕수, 한덕수 고향, 한덕수 대선, 한덕수 출생지, 한덕수 재산신고, 한덕수 공약, 한덕수 대선공약, 한덕수 당, 한덕수 팬카페, 한덕수손두부, 한덕수순두부, 총리, 출마, 관련주, 자녀, 지지율, 가족, 당, 테마주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