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 : 배우, 그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5. 5. 3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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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李成民, Lee Sung-min)은 1968년 12월 4일에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면 도촌리에서 태어났으며, 대한민국 국적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본관은 우계 이씨(羽溪 李氏)이며, 신체 조건은 키 175cm, 몸무게 72kg, 발 사이즈 265mm, 혈액형은 B형이다. 가족으로는 배우자와 2001년생 딸이 있으며, 종교는 천주교로 알려져 있다. 학력은 도촌국민학교, 대영중학교, 영광고등학교를 거쳐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에서 전문학사를 취득했다. 병역은 전역한 상태이며, 현재 HB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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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7년 연극 《리투아니아》로 데뷔하여 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으며,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목받아왔다. 연극 무대에서의 꾸준한 활동과 함께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활약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년 배우로서의 깊이 있는 연기로 많은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MBTI는 ISTP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이성민의 신중하고 실용적인 성격을 반영한다.

이성민

이성민은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과 성실함으로 동료 배우들과 대중에게 사랑받는 배우이다. 또한 꾸준한 자기 관리와 다양한 배역에 대한 도전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져오고 있으며, 소속사인 HB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성민은 대한민국의 배우로, 다수의 작품에서 깊이 있고 폭넓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다작 배우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매우 넓으며,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이성민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배우를 넘어 연기의 깊이를 체험하게 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1968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면 도촌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인근 도시인 영주시에서 보냈다. 중학교까지는 영주에서 다녔으며,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연기자로서 소질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배우가 되리라는 생각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시민회관에서 단체 관람한 연극을 계기로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다. 당시 주변 사람들, 특히 선생님들은 그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배우가 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개망신’이라는 속된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그의 진로는 비상식적이라고 여겨졌다. 배우의 꿈을 반대한 것은 교사들뿐 아니라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버지는 배우의 꿈을 듣고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원서를 찢으며 “네가 연기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너는 아니다. 차라리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라고 강하게 만류했다. 이런 주변의 반대와 압박 속에서 어린 시절 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살 재수생이 되던 해, 소백산 철쭉제를 놀러 갔다가 정류장에서 연극단 모집 포스터를 우연히 발견한다. 규모가 작은 영주에 극단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공부와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극단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셰익스피어 4대 비극뿐 아니라 다양한 희곡과 새로운 연극 세계를 접하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때 생애 첫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첫 대사가 ‘루퍼트 부르크’의 작품 <리투아니아>에서 "잘 먹었습니다. 아주 잘 먹었어요."였다고 한다. 비밀리에 극단 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에게 들켜 결국 어머니와 고모까지 극단 활동을 만류하며 가정 내 큰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그 공연을 마지막으로 군대에 입대하고, 복무 후 다시 공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배우의 길을 잠시 접게 된다.

 

하지만 군대 생활 중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제대 후 일주일 만에 단돈 7만 원을 들고 대구로 향했다. 대구에서 연극단 한 연출가의 초대로 더 큰 무대에서 연극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 생활은 매우 고달팠다. 모기장 하나 없는 쪽방에서 대본과 커피포트만 의지하며 지냈고, 밥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라면으로 연명했다. 버스비도 없어 걸어 다녔으며, 배고픔과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 날도 많았다. 대구 앞산에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편안한 잠자리의 꿈을 키웠고, 배고픔에 마가린과 커피프림을 섞어 먹는 일도 있었다. 1,000원짜리 떡볶이를 사면서 국물을 더 달라고 부탁하고 그 국물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꺼지지 않아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연극 포스터를 붙였고, 손가락이 터질 정도로 수만 장의 포스터 작업을 해냈다.

대구 생활 중 그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아내는 당시 연극 <B언소>의 안무가가 필요해 알게 된 안무가의 제자였고, 결혼 생활 또한 형편이 어려워 웨딩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다. 2001년에는 ‘돼지사냥’이라는 작품으로 전국 연극제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이 시절의 노력이 훗날 드라마 ‘골든타임’의 주연으로서 인생의 골든타임이었던 20대 시절과 겹쳐 회자되곤 한다.

 

2002년, 서른다섯 살이던 그는 부인과 딸을 대구에 남겨둔 채 홀로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로가 대한민국 연극의 중심지였기에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고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가족에게는 3년만 서울에서 도전하고 안 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경제 상황은 여전히 어려워 도시가스비도 낼 돈이 없어 장인어른의 카드를 빌리기도 했고, 1주일에 한 번씩 대구로 내려가 아내에게 용돈을 받았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동대구역에서 당시 살던 시지동까지 걸어 다녔으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택시회사와 대리운전 회사의 전화번호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불안정한 생활을 견뎠다.


서울에서는 극단 차이무 소속으로 ‘비언소’, ‘돼지사냥’, ‘거기’ 등의 연극에 출연하며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쌓았다. 2004년 영화 <맹부삼천지교>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이때 연기를 눈여겨 본 손현주가 단막극 출연을 추천하기도 했다. 드라마 <오 필승 봉순영>에서 박 검품장 역할을 맡을 때 연극과 일정이 겹쳐 어려움을 겪자 주연 배우 안재욱이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해가며 그가 연극과 드라마를 병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가족과의 약속대로 3년이 지난 뒤에도 무명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는 대구 출신 배우도 실력만 있다면 전국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선례가 되고자 서울에 남기로 결심했다. 결국 가족들도 그의 뜻을 믿고 서울로 함께 이주했다. 당시 어린 딸이 고기를 좋아했으나 형편이 어려워 천 원대 대패삼겹살밖에 사줄 수 없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그를 아프게 한다고 한다.

 

2005년 영화 <말아톤> 등 여러 작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으나 편집되어 아쉬움을 남겼고, 2006년에는 차이무 출신 배우들이 모여 만든 영화 <비단구두>에서 ‘성철’이라는 조폭 역을 맡으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저예산 작품이라 대중적 인지도는 제한적이었다.

 

그 이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동했는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역사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집현전 학사 최만리 역할, 영화 <고고70>의 팝 칼럼니스트, 영화 <부당거래>의 부장검사 역 등이 있다. 영화 <박쥐>에서는 송강호가 추천했으나 오디션에서 낙방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계기는 2010년 MBC 드라마 <파스타>에서 ‘라스페라’ 레스토랑의 바지사장 설준석 역이었다. 그는 도통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며 연기력에 주목받았다.

이후 드라마 <글로리아>, <내 마음이 들리니>, 영화 <작은 연못>,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 등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영역을 넓혔다. 2011년 KBS 2TV 드라마 <브레인>에서는 권력욕에 찌든 의사 고재학 역을 맡아 신하균과 함께 뛰어난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같은 해 MBC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자기 잇속만 챙기는 대통령 이영찬 역할로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2년 방영된 MBC 드라마 <더 킹 투 하츠>에서는 주인공 형이자 전임 국왕 이재강 역을 맡아 인간미 넘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줬다.

 

2012년 7~9월 방송된 MBC 월화 드라마 <골든타임>에서는 사실상 주연급인 외상전문의 최인혁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고재학과 완전히 다른 의사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해 '역대급 연기 변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성민은 "처음으로 주연에 가까운 역할을 맡아 책임감이 컸다. 긴 호흡의 드라마에서 인물 내면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업이 배우로서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 <골든타임>은 그에게 인지도 상승뿐 아니라 주연 배우로서 입지를 확고히 한 작품이었다.

영화 쪽에서는 2012년 개봉한 <26년>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암울한 현실을 그리는 과정 속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로 이성민은 기존 이미지와 달리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무게감 있는 배우로도 자리 잡았다.

 

2013년에는 영화 <감시자들>에서 조직의 두목 ‘장철수’ 역을 맡아 선 굵은 악역 연기를 펼쳤다.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며 그의 필모그래피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 같은 해 KBS 드라마 <굿닥터>에서 감정이 서툰 천재 의사 오재혁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서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줬다.

 

2015년에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권력과 부패를 주제로 한 드라마틱한 작품에 출연해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 이어 영화 <곡성>에서는 미스터리한 마을 경찰 역할을 맡아 공포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기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들로 인해 그는 '대체불가 중견 배우'라는 호칭을 얻었고, 한국영화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이성민은 뛰어난 연기력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배우로서, 코미디부터 스릴러, 사극, 현대극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화해내는 점이 강점이다. 또한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몰입과 연구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관객과 평단 모두의 신뢰를 받고 있다.

 

그의 성격은 매우 겸손하며, 후배 배우들에게도 따뜻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는 배우들 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동료 및 제작진과의 협업에서도 모범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는 여러 인터뷰와 현장 에피소드에서 자주 언급된다.

사생활에서는 가족을 무척 소중히 여기며, 아내와 딸과의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번 인터뷰에서는 “가족이 없었다면 배우 생활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히며, 힘들 때마다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이성민은 연극 무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연기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무대에서 느낀 긴장감과 에너지가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연극과 영화를 병행하며 활동해 온 점이 그의 연기 깊이에 크게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연기력 향상과 작품성 확보에 힘써왔다.

그의 연기 인생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수많은 단역과 조연을 거쳐야 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절이 많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기를 연마하고 노력하며 자신의 자리를 굳혀왔다. 이성민은 “배우는 연기뿐 아니라 삶 자체가 연기”라며, 어떤 환경에서도 진심으로 살아가는 경험이 연기에도 진실을 더한다고 말한다.

 

최근에도 그는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대중성과 작품성의 균형을 중시한다. 또한 후배 배우들을 위한 멘토 역할도 자처하며 연극과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성민의 삶과 경력은 한국 연극과 영화, 드라마계에서 성실함과 실력을 겸비한 대표적인 중견 배우로서, 앞으로도 깊이 있는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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