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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인가? 국정 쇄신 위해 영입하려는 민주당 출신 박영선, 그녀의 이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인간의 사람 2024. 4. 1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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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7일, 윤 대통령은 총선에서의 패배 이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의 후임으로 박영선 전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임명하고, 또한 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를 정무특임장관으로 선임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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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당적을 떠나 대한민국을 위하는 일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며 박영선, 양정철, 김종민 세 사람의 임명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후임 총리로 검토되는 박 전 장관은 민주당에서 4선 의원을 지내고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역임한 중진급 정치인입니다. 후임 비서실장으로는 양 전 원장이 검토되고 있는데, 그는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원장을 지냈고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역임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를 정무특임장관으로 임명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종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으며, 정무특임장관으로 임명되면 대국민과 여야 간의 소통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무특임장관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현재 대통령은 이러한 조치를 검토 중에 있습니다.

 

박영선은 대한민국 제2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임명된 인물로, 그의 이력은 다채롭고 풍부합니다. 1960년 1월 22일에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반남 박씨 본관을 가지고 있으며, 부모는 아버지인 박정서씨와 어머니인 이영숙씨입니다. 또한 형제로는 남동생인 박찬형씨와 박찬우씨가 있습니다. 이원조씨와의 결혼을 통해 슬하라는 아이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계십니다.

 

학업적으로는 예일초등학교, 덕성여자중학교, 수도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상명여자사범대학과 경희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박영선씨는 정치뿐만 아니라 언론 분야에서도 활약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KBS 아나운서로서 출발하여 MBC의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였으며, 민주당에서 의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 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문재인 정부에서 활약하였습니다. 더불어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대전환위원회 위원장이나 세계경제포럼의 이사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업적을 토대로 박영선씨는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1960년 1월 22일,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신전리에서 부모님의 둘째 자로 태어난 박영선씨는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북한에서 피난 온 이민자 가족의 자손입니다. 어머니의 결연한 의지로 서울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어머니의 인내와 희생으로 가족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영선씨는 예일초등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했고, 그 후에는 덕성여자중학교로 진학하여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도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 박영선씨는 방송반에 입부하여 그녀의 열정과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녀의 열망은 무엇보다도 방송 분야에 있었으며, 이를 통해 현직 방송국 PD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 생활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학업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박영선씨는 대학 진학 후에도 꾸준한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상명여자사범대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경희대학교로 편입하여 지리학을 전공하였으며, 대학 시절에도 여전히 방송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노력과 열정은 학업 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박영선씨는 대학 시절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녀의 학창 시절은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로 기억되며, 그것이 그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1981년, KBS 아나운서로 합격한 박영선씨는 춘천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춘천에서의 업무 중 군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춘천에서 하숙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서울과 춘천 간을 오가며 열심히 일했고, 1982년 11월에는 지방 근무가 없는 MBC에 시험을 보고 아나운서로 입사했습니다. 그 후 보도국으로 발령을 받아 기자로 일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입사 5개월 만인 1983년부터는 MBC 뉴스데이트를 맡아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를 전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어 1984년 10월부터 1985년까지는 MBC의 주요 뉴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1985년에는 외교관과의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6개월 만에 이혼하고 1987년에 귀국하였습니다.

 

귀국 후에는 다시 MBC에서 아나운서와 기자로 활동하였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MBC 마감뉴스와 뉴스와이드의 앵커로 활약하였으나, 김문수 의원을 인터뷰하면서 발생한 논란으로 앵커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국제부로 발령을 받아 미국 LA 특파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헐리우드에서 다양한 유명인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미국의 영화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데 기여했습니다.

 

1997년에는 귀국하여 MBC 뉴스센터 500의 진행을 맡았으며, 그 후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주말에 활약하였습니다. 이어 MBC 아침 뉴스의 앵커로도 활동하였고, 2000년대 초반에는 경제매거진의 진행을 맡으면서 경제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녀는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뉴스 캐리어를 꾸려나갔습니다.

 

2004년 초, 직장 선배 정동영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박영선은 MBC를 떠나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습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죠. 이는 DY계나 정동영계라고 불리며, 당시 주류인 친노계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2007년 대선 때에는 민주신당의 최종 공격수 역할을 맡았고, BBK 관련 의혹 제기에도 앞장섰습니다. 이로 인해 이명박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는데,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공개적으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 선거구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와 박영선의 대중적 인지도로 이뤄진 결과였습니다.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박영선이지만,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여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지만,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으로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정계에서의 활동을 이어가며 초강경파에서 온건파로 성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에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고, 2015년에는 당권에서 내려왔습니다.

2017년 대선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활약했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에는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인사로 활동했습니다.

 

2018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박원순 시장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이후에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통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박영선은 정계에 입문한 이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친노계와의 관계 등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만큼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쌓아왔습니다.

 

2019년 3월에 문재인 정부 개편에서 박영선은 법무부장관 후보로 유력 후보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가 아닌 것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맡은 경력을 활용할 예정이었습니다. 법무부장관으로 취임하게 된다면 이전의 사개특위 위원장 자리는 물론 사퇴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2019년 3월 8일에는 대규모 개편에서 중소벤처기업부장관에 내정되었습니다. 비록 벤처기업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높았고, 지역구와의 관계도 있어 큰 문제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박영선은 과거 청문회에서 강도높은 발언으로 유명했고, 개편된 국무위원 후보자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인지되었습니다. 그녀는 특유의 역공으로 높은 인지도를 얻었으며, 여당 지지층에서는 지지를 보냈지만 야당 지지층에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박영선은 황교안을 따로 만나 CD의 존재를 알렸다고 주장했으며, 황교안은 이를 왜곡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녀가 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 논란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크게 상쇄시켰으며, 그녀의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선거법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박영선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연합회 등으로부터 조속한 임명을 촉구하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현직 국회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2019년 4월 8일에 공식적으로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녀는 장관으로서 뛰어난 평가를 받았습니다. 박영선은 정치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줬으며, 그녀의 흡수력과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해 극찬을 받았습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녀를 해외 순방에 자주 참여시키며 해외로도 커넥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박영선은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며 이를 최종 결심하기까지 여러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부와 모더나의 협력을 통해 국내에 백신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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