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은 1980년 1월 1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2대 국회의원이다. 본관은 김녕 김씨이며, 현재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동 문수로2차 아이파크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전문석사를,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병역은 제주지방경찰청 의무경찰 수경으로 복무 후 만기 전역했다. 종교는 원불교이며, 법명은 김법해다.
그는 대구대동국민학교, 대구북중학교, 영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무법인 더정성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청렴시민감사관, 울산광역시 지방토지수용위원, 남구청 법률고문변호사 등을 역임하며 공공 영역에서 다양한 법률 자문과 감사 업무를 수행했다.
정계 진출 이후에는 국민의힘 울산광역시당 법률자문위원장, 원내부대표, 울산광역시당위원장을 지냈으며, 제22대 국회에서는 울산광역시 남구 갑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전반기에는 여성가족위원회 간사로도 일했다. 현재는 무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갈림길에서: 김상욱, 보수의 이름으로 반기를 든 사내
2024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다시 한 번 깊은 혼돈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단순한 헌정 중단의 위기만이 아니라, 정치 본연의 가치를 다시 묻는 거대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 앞에서, 다수는 침묵했고, 일부는 동조했으며, 극소수는 반기를 들었다. 그 극소수 가운데 김상욱이라는 이름은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다.
김상욱, 변호사 출신의 초선 정치인. 1980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그는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현대해상과 우리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울산이라는 낯선 지역에서 법률가로 뿌리를 내렸고, 법무법인 설립과 방송 활동, 자문 변호사 등으로 지역사회에 천착했다. 그는 말 그대로 "울산의 변호사"였다. 그러나 이 인물의 진짜 등장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다. 국민추천제로 울산 남구 갑에 공천되어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국회에 입성했다.
처음 그는 국민의힘 내에서 충직한 신인 정치인으로 출발했다. 울산시당위원장, 당협위원장에 연달아 선출되며 당내 입지를 다졌고, 제복공무원 처우개선법을 대표 발의하는 등 초선답지 않은 입법 활동도 돋보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4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령이 발동되자 김상욱은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해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여권 내에서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는 사태의 본질을 “정치적 반대 세력 척결을 위한 반헌법적 행위”로 규정했고, 내란의 공범으로 추경호 원내대표를 지목했다.
그리고 12월 7일, 그는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린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에 여당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참여하고, 직접 반대표를 던졌음을 고백했다. 형식은 반대였지만, 실질은 지지였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박수로 맞이했고, 그의 용기에 많은 국민이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여당 내부에서의 고립과 정치적 배제의 신호탄이었다.
김상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의 수호가 보수의 핵심 가치”임을 외쳤고, 대통령의 사퇴와 당의 참회를 촉구했다. 그가 울산이라는 지역에서 잃은 지지자, 그의 사무실 앞을 가득 메운 규탄 시위, 심지어 살해 협박과 따돌림도 그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동료 의원들에게 호소했고, SBS 라디오 출연도 마다하며 오직 정치 본연의 책무를 다하려 했다.
2025년 2월, 그는 결국 울산시당위원장에서 자진 사퇴했다. 5월에는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무소속이 되었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당적과 이념을 넘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되물으며 새로운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김상욱의 행보는 단순한 배신도, 변절도 아니다. 그것은 시대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려는 한 정치인의 결단이자, 진영 논리와 보복 정치에 대한 명백한 거부 선언이다. 그는 보수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고, 보수의 가치를 근거로 헌정 질서를 되살리려 했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도 진영의 극단 속에서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김상욱이라는 정치인은, 적어도 이 혼돈의 시기에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양심과 가치에 충실한 선택을 했다.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니면 너무 이른 도전이었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나라 정치사에 남을 ‘단독자’의 발자취가 하나 새겨졌다는 사실이다.
그 이름, 김상욱. 그는 오늘도 묻고 있다. 당신이 믿는 보수는 과연 무엇인가?
김상욱, 보수의 경계에서 외롭게 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이후, 정치권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 중심에서 김상욱 의원은 어느 편에도 온전히 발을 담그지 못한 채,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를 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4월 4일 파면 당일, 김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과 미소로 일관했고, 이후 당내에서 그에 대한 징계와 탈당 요구가 빗발쳤다. 친윤계는 "비통함과 책임감이 우선이었다"며 그를 성토했고, 중진 의원들까지 탈당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 의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보수의 회복을 주장하며 '행동하는 보수주의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웠다. 그는 비상계엄 해제를 지지하고, 당이 극우주의로 기울고 있는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의 행보에 우려를 표하는가 하면, 당 지도부의 변칙적인 경선 운영과 특정 인사의 비정상적인 공천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는 단순한 이탈이 아닌, 그가 보수 안에서 보수의 본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고군분투로 읽힌다.
그러나 당은 그의 요구를 묵살했다. 윤 전 대통령의 제명 요구는 '정치적 의도'라며 기각됐고, 당협위원장직에서도 사퇴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당의 중심은 점차 강성 친윤으로 쏠리고 있으며, 김 의원은 이에 끝내 "경선이 마무리되는 5월 3일까지가 시한"이라며 탈당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김상욱은 보수의 본령을 지키려다 보수 내부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외로움은 오히려 보수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지금의 보수 정치는 그에게 말한다. "함께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되묻는다. "우리가 지키려는 보수는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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