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9-22대 국회의원 안철수는 1962년 2월 26일에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출생하였으며,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해군 군의무사령부 대위로 군 복무를 했으며, 종교는 천주교이다. 안철수는 국민의힘으로 제19대, 제20대, 제21대, 그리고 제22대 국회의원에 연임되었다. 그의 지역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이다. 현재는 외교통일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안철수의 어린 시절은 그가 부산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의사인 아버지와 섬세한 어머니, 그리고 두 형제와 함께 병원 건물 안에서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동식물을 키우는 것을 즐겼으며, 병아리를 키우고 화초를 심는 등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안철수의 재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에도 흥미를 느꼈고, 가족과 친척들이 놀랄 만한 솜씨로 기계를 다루었습니다. 그가 어릴 적 친척집의 괘종시계를 망가뜨린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들이 그의 기계에 대한 호기심을 더 자극했습니다.
그의 학창 시절은 성적으로는 그리 우수하지 않았지만, 독서에 대한 열정은 돋보였습니다.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안철수의 모습은 사서와 교사들의 눈길을 끌었으며, 그의 독서는 나중에 학업 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안철수는 대학 시절에 김미경과 결혼하여 딸을 두었습니다. 그녀는 병리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안철수와 함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안정된 가정환경은 안철수의 정치적인 경력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1991년 4월 20일, 안철수는 대한민국 해군의 군의관으로 임관하였습니다. 그는 1994년 4월 30일까지 국군의무사령부에서 복무하며 대위로 전역하였습니다. 해군 의무병과 인원들의 특성상 해병부대에서도 근무하였으며, 이를 통해 해병대와의 인연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 중에는 일부 논란도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근무지인 진해와 서울을 왕래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육군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오해였으며, 해군의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해군 관계자들도 열불날 정도로 이 문제를 해명하였습니다.
또한 해군에서의 복귀 기준은 육군과 다르게 지역이 아닌 시간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해공군 영외거주자는 일과 시간 외에 국내 어디를 가든 문제가 없었으며, 휴가자의 경우에도 특별한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해군의 특성은 안철수가 군 복무 중 경험한 것으로, 그의 군 생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철수는 본래 의사로서의 직업을 택했지만, 컴퓨터에 대한 흥미는 끝내주었습니다. 대학원생으로서 기초의학 연구를 진행하던 중 컴퓨터를 구입한 그는 컴퓨터의 기초를 습득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컴퓨터의 가격은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결국 최소한의 부품만으로 겨우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컴퓨터에 몰두하며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사건은 그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와 백신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의사의 길을 떠나 안랩까지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에서 컴퓨터를 고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안철수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백신인 V3은 1988년에 배포되었으며, 이는 세계 최초의 백신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다양한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여 한국의 컴퓨터 바이러스 방어에 기여하였습니다.
그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창업하고 초반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열정 덕분에 회사는 성장해나갔고, 안랩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는 모범적인 경영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였으며,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안철수는 항상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였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학력, 외모, 성별 등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한 문화였습니다. 또한 그는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노력하였으며, 이를 위해 무상으로 주식을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동관에 대한 일부 발언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회사를 접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인해 노동관에 대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부인하며 노동 분야에서의 노력과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안티 바이러스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V3는 안철수의 재직 기간 동안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안티 바이러스인 'Vaccine'이 V3로 발전하면서 더욱 강력한 기능과 효과를 제공했습니다. V3는 바이러스 퇴치 능력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면서 한국의 컴퓨터 보안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안철수가 회사를 떠난 후에도 V3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회사는 일부 논란을 겪었습니다. 유료 백신을 도입하면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으며, 무료 버전의 V3+Neo가 출시되었지만 일부 사용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또한 무료 백신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V3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재는 윈도우용 무료 백신 V3 Lite를 배포하여 많은 사용자들로부터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는 해외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어, 안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V3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효과와 성능을 계속해서 향상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안철수는 교육 분야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된 그는 단국대를 휴직하고 군 복무에 들어간 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EMTM(Engineering Management for Technology Managers)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는 제조업이나 IT산업을 경영하는 방법에 대한 기술과 경영의 융합 석사 학위입니다.
2005년에는 회사 대표를 사임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워튼비즈니스스쿨에서 MBA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2008년에는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석좌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는 주로 학부 및 대학원생들을 가르치며, 특히 <기업가적인 사고방식> 수업은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안철수는 이 과정에서 자비로 모든 저작권료를 지불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로 이적하여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맡았으며,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교육자로서의 길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안철수는 의대 교수 생활을 떠나 창업을 시도하고 성공한 후, 다시 교수 생활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교육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그의 이야기는 학문과 비즈니스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서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